우아한 카리스마, 발레리나 이은원
“작품에 흠뻑 빠져 관객과 교감할 때가 가장 짜릿해요”
우아한 카리스마, 발레리나 이은원
이은원이 미국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건 발빠른 지역 언론에서였다. 세계 주요 발레단에서 한국인 무용수 얼굴을 찾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은 요즘이지만 진입장벽이 높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해외 발레단이 한국인 무용수를 무대에 세운다는 것은 기술과 체력, 스타성 삼박자를 두루 갖춘 검증된 무용수라는 방증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한국에서 온 슈퍼스타 발레리나'라고 그의 입단 소식을 전한데 이어,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 대해서는 '순수함과 정열을 동시에 지닌 신예', '수준 높은 연기와 전달력, 기술을 가진 무용수’라고 극찬했다.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이은원이 워싱턴발레단에 입단한지 삼년이 꽉 찼다. 그동안 그의 춤은 농익었다. 기술적인 정교함은 물론 춤에 감성을 얹는 연기까지 늘었다. 그야말로 '절정'이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다.
대체 이 발레 요정은 어디서 왔나?
은원을 워싱턴D.C. 한 카페에서 만났다. 봄 시즌 공연을 마치자마자 한국으로 건너가 재활을 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발레리나의 걸음으로 사뿐사뿐 들어서는 모습이 영락없는 20대 낭창한 아가씨였다. 먼저 워싱턴발레단 생활에 대해 묻자 “적응기를 무사히 마치고, 호기심이 늘어가는 시기에요. 이번 시즌에는 또 어떤 새로운 작품들을 접할까 기대돼요.” 말한다.
은원은 6년 동안 몸담았던 국립발레단을 떠나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첫 발판으로 워싱턴발레단을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워싱턴발레단은 1980년대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1990년대 조주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주역 무용수로 활동한 명문 무용단이다. 창단 40해를 맞아 2016년에 뉴욕의 아메리카발레시어터(ABT) 수석 무용수 출신의 줄리 켄트(Julie Kent)가 예술 감독으로 부임했다. 은퇴 후 첫 지도자 자리를 은원과 함께 시작하게 된 셈이다.
“국립발레단은 제 첫 직장 같은 곳이어서 애착이 남다르죠. 하지만 한 번 쯤은 해외활동을 경험해보고 싶은 목마름이 있었어요. 고민하던 중에 줄리 켄트 감독님이 새로운 무용수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뉴욕에서 오디션을 봤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죠.”
은원은 순수 국내파다. 국립발레단 부설 발레 아카데미에서 시작해 예원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를 거쳐 고등학생 나이에 한예종에 입학했다. 그는 발레 영재였다. 졸업 후 19살에 국립발레단에 들어갔다. 입단한 해에 '호두까기 인형' 주역으로 첫 무대에 섰고, 입단 2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발탁되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한국 간판 무용수로 한창 명성을 높이던 시기에 돌연 미국으로 눈길을 돌리는 일이 은원에게는 대단한 도전이었다.
같은 '지젤'이라 해도 발레단마다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국립발레단 작품들은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훤하게 안무를 꿰고 있지만, 워싱턴발레단으로 옮긴 후 처음부터 다시 춤을 외워야했다. 오랜 시간 몸에 익었던 동작을 내려놓고 워싱턴발레단의 동작을 몸에 다시 새겼다. 은원은 스트레스 받는 대신 자신과 줄리 켄트 감독을 믿어보기로 했다.
은원은 7살 때 '호두까기 인형'을 보고 홀딱 반해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다. 아버지가 반대하자 삼일 동안 밥을 굶어가며 결국 발레학원 등록을 쟁취해냈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서 은원은 꼬마 때부터 고집이 대단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대로 추진했다. 이런 그의 외골수 성향이 무용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 발레가 좋아 발레를 시작하고, 발레로 큰 칭찬도 받았지만 발레가 지긋지긋해진 순간도 있었다.
“18살 때 무릎 쓸개골 뼈가 부러져서 통깁스를 한 적이 있었어요. 핑계 삼아 처음으로 장기간 춤을 쉬었나봐요. 재활하는 1년 동안 갖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요. 이대로 무용수 생명이 끝인 것만 같은 위기의식도 들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가 슬럼프였나봐요. 지금까지 내가 안 해본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 커피숍 아르바이트도 하고, 유럽 여행도 다녀왔어요. 그런데 쉽게 질리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내가 꾸준히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은 발레뿐이라는 걸.”
경험을 통한 깨달음이 가장 진솔한 법. 그 뒤로 은원은 힘들고 지칠 때에도 발레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발레요, 가장 잘하는 것 또한 발레라는 것을 알기에. 은원은 지금도 주기적으로 발레와 밀당 중이다.
'지젤'에 애착 깊어..앞으로 '오네긴' 해보고파
은원은 지금까지 맡았던 배역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역할로 망설임 없이 '지젤'을 꼽았다. 국립발레단에 들어가서 '호두까기 인형'을 제외하고 처음 전막 정기공연 무대에 선 작품이 '지젤'이었다. 공교롭게도 워싱턴발레단으로 옮긴 후에도 처음 맡은 전막 공연이 '지젤'이었다. 춤을 좋아하는 순수한 시골 아가씨 지젤과 사슴처럼 초롱한 눈망울로 예술을 이야기하는 은원의 모습이 닮았다. 그동안 지젤로 수많은 무대에 올랐지만 매번 다른 감정으로 빠져든다면서 그때만큼은 진짜 지젤이 된 듯 행복하다고 말한다.
무용수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무대에서 만족스러운 연기를 마친 뒤, 관객들과 충분히 교감하는 순간이 아닐까. 은원은 특히 몰입감이 높은 무용수다. 무대를 장악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최대 강점으로 꼽는다. 이것은 무용수 혼자만의 일방적인 감정이 아니다. 은원이 음악과 역할, 춤에 흠뻑 빠져 무대를 즐기고 있을 때 관객도 동시에 같은 감정으로 즐긴다.
“물론 매번 공연이 완벽할 수는 없죠. 사람인지라 컨디션이나 그날 감정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지는데, 제가 역할에 완전히 녹아들었을 때 신기하게 관객들도 같이 집중해줘요. 제가 괴롭게 연기하면 관객들도 그대로 느끼죠. 그런 교감이 재미있어요.”
은원에게 바람이 있다면 드라마 발레 '오네긴'을 꼭 연기하고 싶다. '오네긴'은 러시아 문호 푸시킨의 운문 서사시를 원작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맞춰 존 크랭코가 안무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다이애나 비쉬네바(Diana Vishneva)가 연기한 공연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아 '오네긴'과 사랑에 빠졌다.
춤은 내 일상이자 전부이죠.
은원에게 “춤은 당신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은원은 “춤이란...” 하면서 한참을 곱씹다가 입을 뗐다. 모든 질문에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질문을 한번 따라 읽은 뒤에 대답을 했다. 대단히 신중하고 정확한 성격인 게다. 그동안 동영상에서 봐온 공연 모습과 딱 맞아 떨어졌다. 반복된 연습을 통한 기계화된 동작이라도 무대 위에서는 어쩔 수 없이 평소 습관이 나오기 마련인데 은원은 깨끗하고 우아한 연기로 높은 평가를 받는 발레리나다. 정확한 성격이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춤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은원은 '일상'이라고 짧게 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하고 밥 먹듯 그의 일상이라는 게다. 무용수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에 비해 수명이 짧기 때문에 현역에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고 일을 하는 동안 최대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무용수의 수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자연스럽게 은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 실력을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하느냐가 더 중요해요. 관리를 열심히 잘 해서 오랫동안 춤을 추는 게 목표예요. 제 기량이 기대에 못 미치면 무대에서 내려와야겠죠. 언제까지라고 못 박지 않고 제 몸이 춤을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춤출래요.”
최고의 자리는 버티는 힘으로 완성
보다 완벽하게 연기하기 위해 은원은 꾸준히 몸과 마음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무대에서 지젤이나 오데뜨로 분해 연기하더라도 결국 이은원이 연기하는 지젤이기 때문에 일상에서도 정돈되고 차분한 마음가짐을 유지한다.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나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 일쑤인데, 그럴 때에는 책을 잃으면서 자신을 채워나간다. 매일 일기를 쓰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이쯤 되면 올림픽을 앞둔 운동선수의 자기관리 못지않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고된 발레리나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수많은 무용수들이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진다. 성공했다고 부를 수 있는 위치의 무용가들은 결국 오래 버틴자들 뿐이다. 버티는 힘이 곧 실력이다.
요즘 은원이 가장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은 워싱턴발레단 줄리 켄트 감독이다. 아무래도 현재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인데다 평소 닮고 싶었던 선배인지라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줄리 켄트 감독이 단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대목이 건강한 정신과 몸의 균형이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싱그러운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그저 마르기만한 몸에서는 힘이나 탄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은원은 건강한 사람이어야 예술을 잘 한다고 생각해서 건강한 몸을 만드는데 모든 정신을 집중한다. 애써 다이어트를 하지도 않는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은 김치찌개. 이슬과 샐러드만 먹을 것 같다는 세간의 편견을 보기 좋게 뒤엎는다.
은원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정말 말랐다!'였다. 저렇게 마른 몸으로 어떻게 매일 뛰고, 돌고, 찢을까 싶다. 그러다 조금만 더 자세히 보면 그 몸이 그냥 마른 몸이 아님을 알게 된다. 20년이 넘도록 꾸준히 노력해온 수련의 역사가 몸 곳곳에 박제돼있다. 은원이 20대 중반이니까 지금까지 20년이지 48살이면 40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발레리나로서 기술적인 뛰어남은 말할 것도 없고 참 제대로 잘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몸과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마저 갖췄다할까.
한국 팬들이 발레 공연에 많이 찾아와주길
워싱턴발레단은 이번 가을시즌, 세 명의 새로운 안무가들과 함께 색다른 컨템포러리 공연을 준비한다. 아나벨 로페즈 오초아(Annabelle Lopez Ochoa), 존 헤긴보담(John Heginbotham), 제시카 랭(Jessica Lang)이 이번 시즌 워싱턴발레단을 찾는다. 이 중 은원은 존과 제시카가 꾸민 무대에 선다. 새로운 각본 속에 은원이 어떤 모습으로 분하게 될지 기대된다. 앞으로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같은 고전 작품에도 꾸준히 출연한다.
현재 은원을 가장 가까이서 응원하는 팬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쉐리 할머니 부부다. 종종 공연장을 찾아 은원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때에는 식사 자리에 초대해 작은 선물을 건네기도 한다. 가족, 친구와 떨어져 지내는 은원에게 포근한 위안이 되고있다.
“미국에 와보니 알겠어요. 지나가는 동양인만 봐도 혹시 한국 사람일까 궁금해서 다시 한 번 보게 돼요. 무심코 끌리는 거죠. 저는 제 공연에 한국인 팬들이 많이 와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워싱턴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무용수거든요. 객석에서 응원해주는 한국 팬들을 만나면 힘이 나요.”
발레리나로서의 이은원 외에 사람 이은원으로서의 새로운 매력이 보였다. 지금 절정에 달한 그의 발레가 앞으로 꽤 오랫동안 절정을 지킬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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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원 약력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현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입학해 영재과정을 밟은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 재학시절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2010년 졸업과 동시에 국립발레단 연수단원으로 입단하였다. 그해 <백조의 호수>에서 파드 트루와 세 마리 백조, 스페인 공주 등 주요 역할을 맡았고, 연수단원임에도 불구하고 <호두까기 인형>에서 마리 역할을 맡아 주역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2011년 <지젤>에서도 지젤 역할에 캐스팅되어 어린 나이답지 않은 뛰어난 테크닉과 연기력으로 가관객을 사로잡았다. 2012년 <스파르타쿠스>의 예기나 역을 맡으며 다양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였고, 2012년 수석무용수로 승급되었다.
이후 2016년, 미국 워싱턴발레단에 입단해 <지젤>, <백조의 호수> 등에서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며 테크닉뿐 아니라 예술성까지 갖춘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2014년 한국발레협회 프리마발레리나상
2012년 한국발레협회 신인상
2011년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 은상, 프리마발레리나상
2008년 불가리아 바르나국제발레콩쿠르 3등
2007년 중국 상하이국제발레콩쿠르 2등
2006년 서울국제무용콩쿠르 그랑프리
2006년 러시아 바가노바국제발레콩쿠르 엘레강스상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