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음악은 내 존재 이유, 동양의 클라라로 남을래요”

피아니스트 서혜경

by 끌로이


bre1.jpg


“음악은 내 존재 이유, 동양의 클라라로 남을래요” 피아니스트 서혜경


완전히 가을 냄새가 돌기 전, 아직은 따끈한 열기가 남아있는 오후에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다시 보는 건 김명민의 독설과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음악 때문이다. 사뭇 무겁고 진중한 클래식 오케스트라 이야기에 서혜경은 혼을 실어 드라마 완성도를 높였다. 오합지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뚱땅뚱땅 합을 맞춰가는 가운데, 건반 위를 유유히 질주하는 그의 연기는 유난히 빛이 났다. 서혜경은 카메오로 깜짝 출연하는 것이라 대사가 너무 적어 연기력을 한껏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면서 넉살 좋게 웃는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1세대 피아니스트로 부조니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 이 수식어만으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대가가 친근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서혜경, 클라라 슈만 탄생 200주년을 기념 공연

서혜경이 다시 한 번 우리 곁에서 호흡한다. 10월 20일 대구에서, 21일은 서울에서 연주회를 연다. 공연 주제는 '서혜경 & 클라라 in 슈만/브람스 협주곡'. 클라라 슈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공연이다. 클라라가 활동할 당시, 유럽에서 여자는 사람대접도 받지 못했고 전문직 자체도 인정받지 못했던 시절이다.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클라라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의 역사를 만든 여성이다. 서혜경은 클라라의 인생에 자신이 겹쳐 보인다면서 동양의 클라라가 되고 싶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오래전부터 우상이었고, 클라라처럼 되고 싶었죠. 그분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노력했어요. 우리나라에서 55년 동안 계속 연주가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 없어요. 클라라가 유럽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라면 저는 동양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로 남고 싶어요.”


공연을 앞두고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서혜경은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고 복합적인 심경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1부 슈만 협주곡과 2부 브람스 협주곡이 협연으로 진행되기 때문. 게다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본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작곡됐다. 이를 교향곡으로 편곡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자 이내 피아노 협주곡으로 개작하게 되면서 규모와 구조를 확장한 것이다. 피아니스트에게는 쉽지 않은 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경이 클라라 슈만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클라라 슈만의 인생 여정을 되짚어보자. 클라라는 음악적 동지로서 교감을 나눈 남편 로베르트 슈만과 함께 러시아, 빈 등을 여행하며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로베르트와 클라라가 신혼일 때 작곡한 협주곡을 클라라가 늘 연주했다. 그의 생애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으로, 낭만 시대를 관통하는 걸작으로 불리는 명곡이다. 두 부부의 수제자였던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협주곡이 되기 전에 브람스가 클라라와 피아노 두 대로 연주했고, 2악장은 로베르트가 첫 번째 자살시도 후 종교적 음악같이 작곡한 곡이다. 브람스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슈만이 보여주었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대화라는 형식을 더욱 발전시킨 작품으로서 작품 내에 분명한 드라마의 흐름이 두드러진다. 이전 시대의 협주곡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오케스트라의 장대한 울림에 의한 교향악적인 효과와 낭만적이면서도 서사적인 감수성,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의 연소작용이 조화를 이룬다.


황금빛 '그랜드 로맨틱 스타일' 구사

이들의 작품이 서혜경의 연주법과 잘 어울린다. 서혜경은 색채가 풍부하고 섬세함과 웅장함이 겸비된 자신의 소리를 낸다. 서혜경은 선이 굵고 노래하는 듯한 연음의 사운드가 일품이다. 황금빛 피아노 톤과 다채로운 음색으로 알려진 그의 연주법을 ‘로맨틱 스타일 연주법’으로 부른다. 오늘날까지 그 계보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피아니스트는 거의 없다. 노래하듯 부드럽게 이어지는 음들을 위해 적절한 루바토를 사용하고, 자연스러운 화음 변화 같은 고난도 기술을 선보인다. 이 연주법은 리스트를 시작으로 안톤 루빈시테인, 라흐마니노프, 호로비츠 등 러시아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로 이어졌고, 서혜경은 나디아 라이젠버그와 줄리어드음악원 재학 시절 사샤 고로드니츠키 교수에게 사사 받아 자신만의 그랜드 로맨틱 스타일로 발전시켰다. 클라라 슈만을 향한 아름다운 사랑의 음악, 슈만과 브람스의 피아노 콘체르토를 서혜경표 로맨틱 스타일 연주법으로 채색한다니. 검은 건반, 흰 건반. 모두 합쳐 88개의 자음과 모음을 두드려 그가 쓰고 싶은 시는 무엇일지 기대를 모은다. 서혜경은 200년을 거슬러 올라가 그 때의 진정성이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이다.


“클라라와 로베르트 모두 낭만주의자지만 음악이 절대 화려하지 않아요. 오히려 내밀하고 복잡하죠. 브람스 곡은 더합니다. 정열과 사랑 등이 뒤엉킨 다양한 심경이 표현돼 있어서 그 감정을 살리기 위해 집중할 거예요.”


서혜경의 최근 행보를 보면 부쩍 음반 녹음과 해외 공연 횟수가 폭발적이다. 20여 년 동안 재직해 온 교수직을 내려놓고 4년 전부터는 본격적인 전문 연주가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직에 있는 동안 지식을 나누는 보람을 충분히 맛봤다면서 이제는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연주에만 투자한다고 말한다. 그동안은 시간과 신경이 분산돼 원하는 만큼 연주를 하지 못해 힘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제 옷을 입은 듯 편안하다. 55년을 피아노 외길 인생으로 살아온 그는 천상 피아니스트인가보다.


12095053_1552337391679554_2870317099154135165_o.jpg
13263754_1625156781064281_27956671824148483_n.jpg


재능에 노력을 더해 오늘날 '정상' 자리 올라

서혜경은 일찍이 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5살 때 유치원에서 피아노 앞에 처음 앉았다. 이후 매일 바닥을 건반 삼아 두드렸다. 어머니는 종이에 건반을 그려줬는데, 종이 피아노가 해어질 때마다 새로 그려주셨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유치원 선생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교대 콩쿠르'에 첫 출전해 1등을 거머쥔다. 콩쿠르 준비 과정은 혹독했다. 손톱 밑에는 피가 배고, 손이 찢어지기도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8시간씩 연습했다.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 벅찬 연습량이었지만 피아노가 좋아 견딜만했다.


서혜경을 흔히 피아노 신동이라 칭한다. 거기에 대해 서혜경은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 지금의 '서혜경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피아노를 일찍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부모님의 뒷받침이 있었고, 재능을 일찍 알아봐준 선생님을 만났고, 선량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친구도 만나 함께 성장했다. 재능만으로도, 노력만으로도 결코 이뤄낼 수 없는 예술이다.



근육파열·유방암 진단 시련 딛고 재기에 성공

그런 음악 천재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부조니에서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로 우승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온지 한 달 째. 피아노를 치지 못할 정도로 팔이 아팠다. 검사 결과 근육파열이었다. 활화산처럼 폭발적인 소리를 내는 연주법이 손목과 어깨에 무리를 준 것이다. 한창 기량을 뿜어내는 시기에 느닷없이 찾아온 비보였다. 재활을 하는데 수년이 걸렸다.


두 번째 시련은 유방암 3기 진단이었다. 이번에도 예기치 못한 순간 불쑥 찾아왔다. 만나는 의사마다 회의적인 대답만 했다. 피아노를 포기해야 한다고. 서혜경은 피아노를 놓을 수 없었다. 수술에 앞서 항암을 먼저 시작해 암 덩어리 크기를 최대한 줄였다. 신경과 근육조직은 남긴 채 암세포만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여덟 번의 항암과 한 번의 수술, 서른세 번의 방사선 치료를 견뎌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수치였다.


수술한지 사흘 만에 퇴원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아직 움직일 수 없는 오른팔을 놔두고 왼손만을 사용하는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치면서 재기 의지를 다졌다. 그런 그의 강인한 정신력 덕분이었을까. 수술 5개월 만에 예술의 전당 무대로 돌아왔다. 너무 이른 복귀 아니냐는 주변의 걱정을 통쾌하게 뒤집고 대곡인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과 3번을 한 번에 연주하는 재기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피아노가 없는 서혜경은 없어요. 음악은 저에게 존재의 이유에요.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고,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어요. 그런 경험이 음악을 해석하는데 묻어나올 것이고 청중에게 심도있는 연주를 들려줄 수 있겠지요.”



삶의 마지막까지 음악과 함께 하고파

닮고 싶은 예술가가 있냐고 묻자 서혜경이 네빌 마리너 경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영국의 지휘자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네빌 마리너 경은 오후에 공연 일정을 마친 뒤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고인은 9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아흔 살 생일을 축하하는 기념 콘서트를 직접 지휘했으며, 죽기 5개월 전에는 서혜경과 협연한 모차르트 앨범을 발매했다. 이처럼 아름답고 고결한 죽음이 어디 있을까. 서혜경 역시 삶의 마지막까지 음악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음악과 한바탕 신명나게 놀면서 팬들과 교류할 예정이다.


당장 올 가을, 서울에서 '클라라 슈만, 브람스 협주곡' 공연을 하는데 이어 내년 봄에는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 오케스트라 협연 앨범을 계획 중이다. 이후 예술의 전당에서 앨범 발매 콘서트를 하고 세계 투어 공연을 한다. 그의 계획표는 빼곡하게 피아노로 채워져있다. 음악과 삶을 향한 그의 진지한 열정에 마음 속 깊이 ’브라보’를 외친다.


Mgz_Sub_INT_20160513144755.jpg
서혜경 포스터.jpg


============================================

서혜경

미국 메네스 음악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 라이젠버그를 사사했고 이어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 권위의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함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로서 서혜경은 역대 최연소 피아니스트로 대한민국 정부에서 수여한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 서혜경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리사이틀, 협연 활동을 이어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9 제12회 효령상 문화부문

2000 팜비치 국제 콩쿠르 입상자 초청 콩쿠르 우승

1988 카네기홀 선정 올해의 세계3대 피아니스트

1985 윌리암 퍼첵상

1983 뮌헨 콩쿠르 2위

1981 대한민국 문화훈장

1980 부조니 국제콩쿠르 우승

1979 매노그 국제콩쿠르 우승

1972, 73 5.16 민족상 연속 수상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10월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작품에 흠뻑 빠져 관객과 교감할 때가 가장 짜릿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