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한국 기후와 꼭닮은 미국 동북부. 사계절 변화가 뚜렷해 봄, 여름, 가을, 겨울별로 색다른 정취를 풍긴다. 계절의 시계는 참 오묘하다. 뜨거운 열기에 땀 흘렸던 때가 언제인가 싶게 서늘해지더니 이제는 제법 코가 시리다. 계절의 황제 가을, 동북부 연안 뉴잉글랜드를 따라 황제 기행을 떠나보는건 어떨까.
뉴잉글랜드(New England)는 미국 독립 초기 13개 주 중에서도 북동부의 6개 주를 일컫는다.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메인, 뉴햄프셔로 이루어져있다. 북쪽으로 캐나다, 서쪽으로 뉴욕 주와 맞닿은 동부 최북단 지역이다. 뉴욕 주와 뉴저지 주, 펜실베이니아 주는 본래 뉴잉글랜드에 속하지 않지만 문화 역사적으로 동질적인 요소가 많아 뉴잉글랜드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독립 혁명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매사추세츠
뉴잉글랜드라는 명칭은 1614년에 뉴잉글랜드 지방의해안선을 탐험했던 존 스미스 대위가 명명했다. 미국 독립 혁명의 불씨를 지핀 곳, 미국 문학이 꽃핀 곳, 미국 최초의 대학인 하버드가 문을 연 곳. 모두 매사추세츠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역사적인 유산과 더불어 아름다운 해안 절경이 장관이다. 만으로 이루어진 주(Bay State)라는 별명에 걸맞게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새하얀 모래사장이 자랑이다.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쪽빛 자연에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보자. 서쪽으로는 동부 단풍의 상징과도 같은 버크셔 힐스가 있다. 7번 국도를 따라 57마일 길이의 자줏빛 단풍 터널이 가장 아름답다.
상류층 고급문화를 엿볼 수 있는 코네티컷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남쪽에 자리 잡아 첫 관문으로 통하는 코네티컷 주는 뉴욕과 가까워 도시적 세련미와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동시에 느껴지는 신비한 곳이다. 코네티컷 브리지포트-스탬포드-노윅 일대는 수년째 미국 최고의 고소득자 밀집 지역 1위로 조사되는데, 이곳에 미국 최상류층들의 고급스러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볼거리가 많다. 특히 62개의 방이 딸린 대저택 '락우드-매튜스 박물관'은 부유하고 목가적인 전원도시의 정취를 감상하기 안성맞춤이다.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부는 놀랍도록 견고해 여러 영화 배경지로 사용됐다. 현재는 미국 사적지로 등록돼 박물관이 됐다. 가을에는 에식스역에서 출발하는 증기 기관차 단풍 코스를 추천한다. 두 시간 반 동안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코네티컷 리버 밸리의 가을 산을 감상할 수 있다.
화이트 산맥 하이킹이 필수인 뉴햄프셔
뉴햄프셔 주는 지도상으로는 작아 보여도 계곡부터 북동부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이르기까지 보물 같은 여행 명소가 가득하다. 우뚝 솟은 워싱턴 산과 화이트 산맥이 장관을 이루는 뉴햄프셔는 시원하게 뻗은 산봉우리와 그 봉우리를 비추는 수백 개의 호수가 어우러져 낙원을 연출한다. 전통 뉴잉글랜드 마을까지 이어지는 돌담길과 그림 같은 전원 풍경에서 다양한 아웃도어 레저 활동을 즐겨보자. 워싱턴산은 미국 동북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꼽히는데, 흙을 밟고 낙엽을 만지며 정상까지 등산할 수 있다. 밤에는 천문대에서 밤하늘 별자리를 관측한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Granite State)라는 별명에 걸맞게 마운트 리버티 기슭을 따라 솟은 243미터 높이의 플럼 고지 협곡이 화강암으로 잔뜩 둘러싸여 있어 신비한 매력을 뽐낸다.
식민지 시대 건축 양식이 보존된 로드아일랜드
미국에서 가장 크기가 작은 로드아일랜드 주. 하지만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문화유산이 많아 ‘리틀 로디(Little Rhody)’, 최고의 것들만 모아 놓은 작은 패키지로 불린다. 건축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로드아일랜드의 유서 깊은 건축 기행 일정을 짜보자. 식민지 시대의 삶을 볼 수 있는 베네핏 스트리트 마일 오브 히스토리(Benefit Street’s Mile of History)를 비롯해 1824년경에 지어진 요새,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여름 별장이 최고 볼거리이다. 또 북미를 통틀어 가장 오래된 교회당인 투로 유대교회당 국립사적지와 가장 오래된 침례교회 교단인 프로비던스의 미국침례교단도 빼놓을 수 없다.
메이플의 제왕 버몬트
버몬트는 한 마디로 백 년 전 시계가 멈춘 것만 같은 고즈넉한 산골마을이다. 자전거나 도보로 시골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버몬트는 메이플의 제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미국 전체 메이플 시럽 생산량의 35%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 이곳을 찾는다면 꼭 현지에서 만든 신선한 메이플 시럽을 맛보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하면 오스트리아의 드넓은 초원이 생각나지만 놀랍게도 실제 주인공인 폰 트랩 가족은 미국 버몬트에서 살았다. 이들 가족이 195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후 오스트리아와 가장 지형이 비슷한 버몬트 스토우에 정착한 것. 가족들은 현재까지 고급 호텔 트랩 패밀리 랏지를 운영하고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그리워하는 팬들을 위해 저녁마다 공연을 한다.
랍스터의 고장 메인
뉴잉글랜드의 나머지 다섯 개 주를 모두 합친 면적만큼 넓은 메인 주는 긴 해안과 바위섬이 장엄하게 펼쳐져있다. 아카디아 국립공원의 캐딜락산은 해발 467미터로 미국 동부 해안에서 가장 높다. 일 년 내내 등산과 하이킹, 스키, 야생동물 관찰을 할 수 있다. 광활한 대자연의 웅장함을 충분히 눈에 담았다면 이제 입을 즐겁게 할 차례. 메인은 랍스터가 유명하다. 160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에서 소비하는 랍스터 90% 이상을 메인에서 공급한다. 쫄깃 촉촉한 랍스터 속살을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뉴잉글랜드 여행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