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othy Hwang
'정치와 AI의 산뜻한 랑데부' 피스컬노트 창업자 티모시 황
기계와 사람의 대결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바둑프로그램 알파고(AlphaGo).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했다해도 아무렴 사람만 할까 세간은 의심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 4 대 1로 가뿐하게 승리했다. 지난 몇 년 사이 AI는 '세상을 바꿀 4차 산업혁명'으로 급부상하면서 백과사전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고 있다. 구글은 알파고를 통해 알고리즘을 직접 설계하고, 삼성은 시스템 반도체 생산에 사활을 걸어 미래 가치에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 AI와 법을 엮어 잭팟을 터뜨린 한국계 청년 티모시 황(Timothy Hwang)이 있다.
27세 청년, 세상을 움직이다
이 발칙한 상상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을까? 한국이름 황태일, 간단하게 팀 황(Tim Hwang)으로 불리는 이 청년은 1992년생이다. 누군가의 성장과 성과를 이야기할 때 '적절한 때'라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줄 알면서도 자꾸 그의 앳된 나이에 눈이 간다. 올해 나이 스물일곱. 2013년에 회사를 차렸으니까 스물한 살에 창업자가 된 셈이다. 이 나이는 보통 술과 연애, 친구에 홀딱 빠져있지 않나?
"정치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세상을 바꾸는 힘은 기술이 훨씬 강하고 빠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정치인이 돼서 헬스케어 관련 법안을 개정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을 때, 제 친구는 텔레독(TELEDOC)이라는 모바일 앱을 만들어 1년 만에 수만 명의 의사와 환자를 직접 연결했죠.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컴퓨터공학을 복수 전공했죠. 공부를 하다 보니 제 눈에는 두 학문의 교차점이 보였어요. 친구 두 명을 꼬드겨 무작정 실리콘밸리로 갔죠.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이었어요. 돈이 없어서 허름한 모텔에서 10개월 동안 밤새 코딩하면서 지냈어요.”
2억 3천만 달러 투자 유치..우버, 맥도날드가 고객
정치와 기술의 교차점. 그의 선견지명은 정확하게 통했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제라드 야오, 조나단 첸과 함께 시작한 피스컬노트(FiscalNote)는 현재 연매출 1억 300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고 지금까지 2억 3,000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마이크로 소프트, 우버, 맥도날드, 익스피디아, 사우스웨스트, 존슨앤드존슨 등 5천여 고객이 피스컬노트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2014년에는 CNN이 발표한 '세상을 바꿀 10대 스타트업'으로 선정됐고, 2016년 경제전문지 포브스지는 티모시 황을 '30대 이하 30인의 창업가'에 포함시켰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국제회의로 꼽히는 세계경제포럼은 그를 '기술 선구자(Technology Pioneer)’로 지목했다. 이 타이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 선구자는 에너지 생명공학, 정보기술 분야 등에서 지극히 혁신적 기술을 개발해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회사에게만 주는 까다로운 상장이다. 2001년에는 구글, 2007년 페이스북, 2009년 트위터, 2013년에는 에어비앤비가 받은 타이틀이다. 모두 하나같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기업들이다. 이쯤 되면 피스컬노트가 도대체 뭐하는 회사이길래? AI가 재판을 하는 프로그램이라도 만든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피스컬노트가 해낸 것은 미국의회와 정부 데이터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 시킨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연방과 50개 주 정부·의회·법원이 공개한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끌어와서 인공지능으로 분석한 정보를 각종 기업들의 정책 담당자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현재 의회에 올라온 법안의 세부 내용과 후원자, 상·하원 의원의 과거 투표 성향을 분석해 이들이 찬성 혹은 반대할 것인지, 실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얼마인지까지 예측하는데, 정확도가 무려 94%에 달한다.
세계경제포럼에서 기술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풀비아 몬트렌서는 “피스컬노트가 4차 산업혁명을 이루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법안이 통과될지 말지를 알아맞히는 일'이 뭐가 그렇게 대단할까? 당장 우리 주변만 살펴봐도 시행령 하나에 없던 도로가 생기고, 개정안에 문구 하나 삭제했을 뿐인데 정부가 지원하던 지원 정책이 사라지면서 기업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 하루에 쏟아져 나오는 법률안은 수만 건. 법률안이 단지 발의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상정, 통과, 시행까지 갈지 아니면 휴지조각으로 사라질지에 기업의 생존이 걸려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팀 황이 만든 피스컬노트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법안이 발의되는 순간부터 그 법안이 내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와 50개 주가 모두 다른 법률을 적용하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는 그야말로 혁신이다.
오바마 선거운동 돕던 소년, 정치 혁명 이룩하다
팀 황의 똘똘한 재능은 일찌감치 발현됐다. 빅데이터 선거시대의 서막이 올랐던 2008년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 선거 캠프. 그가 맡은 일은 미국 동북부 지역 선거운동원을 모으고 유권자 데이터를 수집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전략을 짜는 것이었다. 선거 현장에서 정치와 홍보, 컴퓨터 데이터의 연결고리를 목도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죠. 16살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와 대통령인수위원회에서 일했어요. 지지율 꼴찌였던 오바마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젊은이를 모으고 지지를 이끌어냈기 때문이었어요. 그 중심에 SNS 데이터가 큰 역할을 했죠. 정치와 컴퓨터 알고리즘의 상관관계가 흥미로웠어요.”
팀은 미국 청소년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로비 단체인 내셔널유스어소시에이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카운티의 학생 교육위원에 선출됐다. 2만 2천명의 공무원이 사용하는 40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감독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때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고 말한다. 정부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국민들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그는 법률, 규제, 공공정책과 같은 정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꿈꿨다. 피스컬노트는 어린 소년의 꿈과 고민이 낳은 산물이다.
피스컬노트, 인공지능으로 법안 통과 가능성 예측
한 마디로 정부 자료와 의회 규정, 법원 판례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고객 맞춤형 정보를 안겨주는 일. 이론으로는 장밋빛 청사진이지만 당장 기술을 개발하려면 돈이 든다. 어린 학생 세 명이 감당하기에는 자본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에 나섰다. 무엇이든 더 간절한 사람이 이뤄내는 법이다. 마침 모텔 TV에는 한 억만장자의 사연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이메일 주소로 수소문해서 덥석 투자제안서를 넣었다. 젊은이의 이글거리는 열정과 진심이 닿아서일까. 일주일 만에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당시 팀의 회사에 투자한 사람은 프로농구 NBA 댈러스 매버릭스의 억만장자 구단주인 마크 큐번. 팀은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거물인 마크 큐번이 직접 이메일을 읽고 답장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만나기 쉬운 억만장자 투자가이지 않겠느냐고 여유 있는 농담을 던진다. 이후 야후 창업자인 제리 양,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손정의 소프트뱅크회장의 동생인 손태장 겅호온라인엔터테인먼트 전 회장 등 굵직한 자본가들이 피스컬노트에 배팅을 했다.
피스컬노트는 지난해 여름, 영국의 유력 언론사인 이코노미스트 그룹과 1억8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었다. 이코노미스트가 보유한 '시큐 롤 콜(CQ Roll Call)'을 인수한 것이다. 시큐 롤 콜은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전문지로 미국 백악관·의회 소식을 다루는 정치 전문 매체이다. 이로서 팀은 20대에 언론사의 사주가 됐다. 정보를 재판매하는 일이 피스컬노트의 본래 업무이니 이제 고객들에게 데이터 분석과 질 좋은 실시간 콘텐츠를 동시에 제공하는 셈이다.
창업 6년 만에 직원 450명으로 성장
창업 6년 동안 회사는 무럭무럭 자랐다. 하지만 뜻밖의 암초를 만나 좌초위기를 겪기도 했다. 창업한지 갓 일 년이 지났을 무렵, 한 벤처캐피털에서 6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계약서 사인을 하루 앞두고 돌연 계약을 엎었다. 당장 직원들 월급조차 줄 수 없는 깜깜한 상황이었다. 팀은 직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회사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믿어달라고 부탁했다. 직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달 치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로 허리띠 졸라매가며 아슬아슬하게 키워온 회사가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아 순항하고 있다. 직원 수는 450명으로 불어났고, 워싱턴디시 본사를 비롯해 뉴욕과 루이지애나, 벨기에 브뤼셀, 인도 구르가온, 서울에 사무실이 있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올바른 일을 하려면 올바른 사람을 뽑는 게 우선이지요. 훌륭한 인재를 채용한 덕분에 함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투자 파트너를 찾고 회사 규모를 불려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피스컬노트 가족들이 있었기에 회사가 혁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피스컬노트의 혁신은 단순히 웹상에 떠도는 법률 정보를 긁어모아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의안에 대한 예측도 가능하기 때문에 대응 방안까지 준비할 수 있게 된다. 현재까지 피스컬노트는 입법부 업무까지만 가능하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60국의 공공 데이터를 분석해 제공한다. 피스컬노트는 앞으로 사법부, 행정부까지 차례로 진출할 예정이다. 판사 정보를 프로파일링해 소송이나 판결 관련한 예측 시스템을 제공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뉴욕에 있는 변호사가 앉은 자리에서 전 세계의 법률 변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할 수 있게 된다. 자료를 찾는데 드는 시간을 아껴 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새로운 변호 전략을 짤 수 있다.
투명과 공평이 창립 모토
미국 의회에 잠자고 있는 법안들이 통과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운이 좋아 상정, 회의, 투표, 가결의 단계까지 올라왔다 해도 최종 통과될 확률은 6%가 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이것들을 합리적으로 예측하는 시스템이 팀의 손을 거쳐 이제 막 세상에 인사하고 있다. 팀 황이 말하는 피스컬노트 창업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두 단어로 요약된다. '투명'과 '공평'이다. 이 회사를 처음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목표는 하나였다.
“정치는 온갖 뒷거래가 이뤄지고 있잖아요. 수백만 달러를 받아서 극소수의 부자들한테만 정보를 팔아넘기는 단체들이 있는가하면 조각 정보조차 주워듣지 못한 채 규제에 가로막혀 뜻을 접는 사람들도 많죠. 결국 정치와 법이 불투명하게 굴러가는 것이 문제인데, 우리가 그걸 해결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포춘 500대 기업에 선정되길
팀의 꿈은 크다. 한국 정치 시스템에도 관심이 많아 선거에 출마한 후보를 찾아서 보여주는 '우리동네후보' 앱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또 피스컬노트 한국 지사를 늘리기 위해 지난 가을, 한국을 다녀가기도 했다. 원조 IT강국과 팀 황이 만나 어떤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전 세계 200여개 나라의 법과 규정을 디지털 플랫폼에 담아 집대성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를 사장(CEO)이 아닌 기업가(entrepreneur)라고 칭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가치를 더하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물론 어렵죠. 가치 있는 모든 일은 힘들기 마련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흐름을 읽고 한발 앞서 움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2의 팀 황을 꿈꾸는 한국 젊은이들을 향해 피스컬노트 창업자 팀 황이 전하는 말이다. 정치와 법을 논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제불능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면서도 오랜 시간 외면 받아왔다. 이 젊은이의 노력으로 '내 손안의 법률, '투명한 정치' 시대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 세상은 쉴 새 없이 변하고 있고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하나씩 실현되고 있다. 그 중심의 한 점에 팀 황이 있어 든든하다.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