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음악, 너디 보이가 만들다!
미디어 아티스트 디폴(DPOLE)
JTBC ‘슈퍼밴드’의 '혼반도' 동영상이 유튜브 조회 수 4만뷰에 이르면서 디폴 이름이 알려졌다. 슈퍼밴드는 재야에 음악 고수들을 찾아 최고의 조합과 음악으로 만들어질 슈퍼밴드를 결성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여기서 디폴은 국악리듬에 디폴만의 펑키한 스타일을 더한 신선한 자작곡 ‘혼반도(HONBANDO)’를 선보였다. 그의 실험은 통했다. 지금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
국악 리듬에 펑키함을 더한 자작곡 '혼반도' 호평
펑키, 레트로, 글리치가 어우러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찔한 민요 사운드에 세계는 깜짝 놀랐다. 국악이 이렇게 섹시한 음악이었나? 반핵하게 만든다. 영화감독,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꾸다 음악에 빠진 디폴은 경계를 구분 짓지 않고 넘나드는 종합 예술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 예술세계 안에서 갈색 뽀글머리 휘날리며 천진하게 노는 미디어 아티스트 디폴을 만나본다.
이름이 디폴이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본명은 김홍주. 물깊을 홍(泓, DEEP), 기둥 주(柱, POLE)를 합쳐 디폴(DPOLE)이라 스스로 지었다. 홍주로 살아온 지난날이 여러 분야를 배우고 발전시키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아티스트 디폴로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증폭시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디폴의 레퍼토리는 다양하다. 흥과 한을 버무린 한국적인 가락과 현대 기술로 대표되는 기계음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음악은 귀로 듣는 예술이라고? 디폴의 음악은 눈도 즐겁다. 장단에 맞춰 색이 변하는 패드 컨트롤러, 두둠칫 흔드는 리드미컬한 몸짓, 그리고 그 위를 활주하는 빠른 손가락 패드 플레이. 이 모든 것이 볼거리가 된다.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를 음악에 접목시키는 미디어 아트가 그의 가장 두드러진 장기이다. 디폴은 어떤 작업을 하든지 구상단계에서부터 소리(sound)와 보여지는 것(visual)을 동시에 기획한다. 공연에서 연주하는 노트에 영상이 반응하는 오디오 비주얼(Audio Visual) 또한 직접 제작한다.
“외로워서 나왔습니다”
디폴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첫 무대는 '슈퍼밴드' 프로그램이다.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잡아끌었다. 심사를 맡은 윤종신은 “녹음된 것을 핸드플레이 했나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고 말했고, 윤상은 “마술처럼 엮어지는 사운드 메이킹이 멋졌고, 즉석에서 80% 이상을 연주하는 생생한 라이브가 인상 깊었다”고 평했다. 감각적인 비트메이커 디폴은 어디서 왔을까? 디폴이 주로 악기로 쓰는 기구는 휴대용 게임기와 조이스틱. 미디 컨트롤러로 특정 소리가 나도록 일일이 코딩했다. 조이스틱이 연주용 리모컨이 되는 격이다. 테트리스나 보글보글 같은 익숙한 게임음악에 디폴의 손길을 더해 한층 익살스러운 음악을 만든다. 게임기로 음악을 연주하는 신세계를 보여준다. '슈퍼밴드'에 왜 나왔냐 묻자 디폴은 천연덕스럽게 “외로워서”라고 답한다. 전자음악 특성 상 혼자 컴퓨터와 단둘이 씨름하는 시간이 많다. 컴퓨터로 만든 음을 덧입혀 변환하면서 연주까지 할 정도로 연습하는 동안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숱한 외로운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이렇게 화려한 퍼포먼스와 음악이 탄생했다. 이제는 음습한 지하 작업실에서 나와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
“제가 관객과 함께 소통하며 공연하는 과정은 함수로 비유할 수 있는데요. 어떤 동작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그 행동에 따라 나오는 결과값 즉, 영상이나 사운드가 실시간으로 바뀌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관객들에게도 이를 체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매번 공연에서 관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인터렉티브 아트’의 요소를 더한 콘텐츠를 진행합니다. 관객과 함께 하면 재미있는 것은 행동을 가하는 입력값 즉, 사람이 바뀌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값 또한 다르다는 거죠. 공연자 입장에서 아주 짜릿합니다.”
가족을 이해시키는 것이 첫 번째 목표
디폴은 항상 조이스틱 배틀이라는 콘텐츠를 진행한다. 이 콘텐츠는 공연자와 관객사이의 제 4의 벽을 허물고 관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인터렉티브 아트의 요소를 더한 공연 연출이다. 디폴은 대학에서 ‘디지털아트-인터렉티브 아트’를 전공했다. 이름마저 생소한 이 학문은 뭘까? 전공에 관해 묻자 디폴은 대뜸 과거 이야기부터 한다. 중학교 때에는 미술을 전공했다. 화실까지 아버지가 종종 태워주셨는데 차 안에서 듣던 아버지의 플레이리스트를 잊을 수가 없다. 로큰롤, 라틴 재즈, 힙합, 펑키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면서 꾸물꾸물 본능이 깨어났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재즈 피아노를 배웠다. 타고난 리듬감에 후천적 피아노 연습이 더해진 덕분에 어지간한 곡은 피아노로 변환해 소화한다. 그런데 도저히 변환할 수 없는 새로운 주법이 있었다. 패드 컨트롤러 연주였다. 한 아티스트가 패드 컨트롤러로 연주한 전자음악곡을 듣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한창 공부해서 대학가야 할 시기에 방구석에서 비트나 만들고 있다고 부모님께 핀잔 아닌 핀잔도 들었다. 디폴의 목표는 단순하다.
“게임기로 음악을 만든다? 부모님은 전혀 이해를 못하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패드 컨트롤러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었어요. 덕분에 돈도 벌고, 장비 공부도 꼼꼼하게 제대로 했죠. 그렇게 스스로 준비하면서 조금씩 결과물을 보여드렸어요. 저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과연 아티스트로서 대중의 호응을 어떻게 얻어내겠어요.”
그의 첫 번째 바람은 이뤄졌다. 부모님은 이제 아들 홍주를 아티스트 디폴로 인정한다. '슈퍼밴드'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부모님께 아들이 어떤 음악을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이제는 혼자서가 아닌 다양한 음악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싶어 지원했다고 말한다.
실험적인 무대로 한국음악의 새 지평 열어
방송에서 디폴은 그야말로 연일 빵빵 화제를 터뜨리며 크게 주목받았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의 주제곡을 가져와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를 믹싱해 기본 가락은 어디서 한번쯤 들어봄직한데 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또 와인 잔에 물을 채우고 전류를 흐르게 하고 손가락을 담글 때마다 소리를 내는 신비한 음악을 선보이는가하면, 빛을 인식하는 센서가 들어있어 빛을 전자음으로 변환하는 기계적 장치로 익살스러운 소리를 낸다. DJ의 스크래칭 기술에 영상을 접목한 실험적인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디폴은 메인 보컬 없이 자신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음악적 실험들만으로도 무대를 가득 메울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지금까지 한국에 이런 음악은 없었다.
내 음악은 펑키(Funky), 레트로(Retro), 글리치(Glitch)!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디폴은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노는 힘'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하든 재미가 없으면 몸이 굳어버린다. 디폴이 어렸을 때부터 미술과 재즈 피아노, 힙합, 미디어 아트로 꾸준히 발전시킬 수 있었던 기반에는 '무엇인가 만들겠다'는 목표 의식과 지독한 노력이 있었다. 밥도 잠도 거르고 방구석에서 몇십 시간씩 사운드를 만지는 일은 스스로 미치지 않는 이상 할 수 없다. 그 미침 또한 재미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재미의 요소가 저 혼자만이 아닌 대중에게도 나타날지가 늘 의문이었어요. 왜냐하면 혼자만의 재미에서 끝난다면 소통에서 오는 더 큰 재미를 놓치니까요. 제가 작업을 하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요소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혼자만 알고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고 외로워요.”
대단히 실험적인 첨단 전자음악을 하면서 정작 풀어내는 방식은 아날로그이다. 디폴은 게임기를 이용하여 작곡을 하기도한다. 자체에서 나오는 8비트의 아날로그스런 사운드와 그가 직접 제작한 영상들로 관객이 플러그를 꼽았다 뺏다하는 행위에 따라 출력되는 사운드와 영상이 달라진다. 플러그를 꼽고 뽑는 행위에서 느낄 수 있는 촉각적인 ‘재미’는 디폴이 추구하는 레트로 감성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한술 더 떠 64개짜리 화려한 런치패드 대신 디폴은 16패드를 고집한다. 차이를 설명하자면 런치패드는 버튼만 누르면 자동 플레잉되는 반주기에 가깝고, 16패드는 손가락을 눌렀다 뗐다하는 방식으로 즉석에서 음악을 만드는 장치이다. 만약 오늘 기분이 우울하다면 16패드로는 우울한 감정을 연주곡에 담을 수 있다. 라이브의 미학이 아닐 수 없다. 디폴은 자신 있게 말한다. “16패드 연주는 퍼포먼스를 하는 아티스트로서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펑키한 리듬감, 옛 것과 미래의 것을 구분 짓지 않고 무엇이든 예술로 포용하는 자세, 전자음악의 특징으로 대표되는 글리치 음악 실현. 이것이 현재 미디어 아티스트 디폴을 감싸고 있는 단어들이다.
“예술에는 경계가 없어”
'슈퍼밴드'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이후 부쩍 디폴을 찾는 곳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기업 마케팅 담당자와 디지털 마케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페이스북 마케팅 서밋 서울 2019 (Facebook Marketing Summit Seoul 2019)’ 행사에 크리에이터로 초청돼 2,000명 앞에서 퍼포먼스를 펼쳤다. 또 제주에서 열린 '지식융합콘서트 테크플러스(tech+)'에서는 옛날 오락기, 제주 감귤 등으로 만든 색다른 디지털 악기를 이용한 '이어도사나' 믹싱곡을 선보였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1960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를 소스로 새로운 리믹스를 선보이는 등 크고 작은 행사 축하 공연도 한창이다. 디폴은 이제 다음 행보를 향해 정진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IN & OUT’ 과 ‘OPEN & CLOSE’라는 상반된 주제로 설치미술 시리즈를 구상해 전시회를 열었다. 시리즈를 발전시켜 해외에서도 전시를 계속할 예정이다. 매년 뉴욕에서 개최하는 국제 비트 배틀 대회(Goldie Awards) 참가를 준비하고 있다.
“무한한 발전이 가능한 창작작활동을 위해 분야와 장르의 경계를 구분짓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라이브 퍼포먼스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개척자의 역할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영원히 너디 보이(Nerdy Boy) 할래요”
디폴,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디폴은 주저 없이 내 정체성은 '너디 보이(Nerdy Boy)'라고 대답한다. 옛날 사람들 말로는 방구석에서 컴퓨터나 두드리는 공돌이, 요즘 사람들 말로는 시대를 선도하는 기계 능력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디폴은 요즘의 칭찬과 관심이 믿기지 않는지 연신 환하게 웃으며 손마디를 풀었다. 모든 일출과 일몰 앞에서 지독히 외로웠던 야전 생활은 이제 끝이다. 새로움을 쫓아 달리는 젊은이의 도약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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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DPOLE)
1992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예원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며 ’JANGDAN(장단)’이라는 창작예술 크루를 결성하여 실험적인 프로젝트들을 제작했다. 서울예술대학교 디지털아트과에 진학하여 프로젝션맵핑과 오디오비주얼코딩 등을 공부했다. 음악을 중심으로 동시에 영상작업을 하며 Vjing, 미디어아트가 융합된 작업을 한다. 필드레코딩을 하여 직접 샘플팩 만드는 것을 선호하며 ’GAMEBOY’와 같은 기기를 이용하여 ‘Tracker(트래커)’방식의 시퀀싱을 통해 chiptune(칩튠)사운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라이브에서는 주로 시퀀스를 사용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16PAD/MPD를 두드려 리듬을 만든다. 동시에 비디오 스크래치로 실시간 영상플레잉을 하는 독특한 LIVE스타일을 자랑한다.
- 2019, ‘국제 아시아나 단편영화제’ 초청공연 / 1960년 김기영 감독 영화 ‘하녀’ X DPOLE 비디오 리믹스 @ 시네큐브
- 2019, instagram X DPOLE 콜라보 프로젝트 ’SPINNER TIME’ on ‘Facebook Marketing Summit Seoul 2019’ / ’ONE APAC’ @ 동대문 DDP / Art Science Museum, Singapore
- 2019, On Air ‘LG’ CF model on ‘LG ultraWide Heroes’ @ LG
- 2019, SBS스페셜 ‘사운드 오브 뮤직 - 음악의 탄생’ 출연 @ SBS
- 2019, ‘PULG & PLAY’ Exhibition (team. DeepVapors) on <RAN DEZ VOUS> @ 남산아트센터 (문화예술산업융합센터, 심재순관)
- 2019, JTBC ‘슈퍼밴드’ 출연 및 팀’애프터문’ 준결승 진출 @ JTBC
- 2017, ‘은화오환’ stori X DPOLE Exhibition(조명희 디자이너 / 프로젝션맵핑 콜라보 전시) @ 학동, 로얄갤러리
- 2016, Awarded Grand Prize for International Youth Video Contest ‘HUMAN NATURE’
- 2014, Finalist for Serato DJ Flip Instagram competition(세라토DJ 플립 콘테스트 파이널리 스트 TOP5)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202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