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고 나면?’ 솔직히 여기까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는 동안이 중요하지 죽은 뒤까지 계획하기는 벅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묘지에 묻히거나 화장되는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사체를 기증하기도 한다. 새생명이 필요한 환자에게 장기를 이식해주는 방법 말고 해부실험용으로 온전히 내 몸을 바치는 일 말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메리 로치가 쓴 <인체재활용>(사진)은 인간이 죽은 다음 사체가 다뤄지는천태만상을 다룬 책이다. 한국에 <인체재활용>으로 소개된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시체의 사후강직을 의미하는 ‘stiff’이다.그 강렬한 제목만큼이나 책의 내용은 자극적이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책장을 계속넘기게 되는 것은 궁금하지만 누구에게도 쉽게 물어볼 수 없는 주제들을 담담하고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 앞으로얼마나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풀어낼지 암시하는 부분이 머리말인데, 메리 로치 작가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당시 장면으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염을 마친 어머니 시신 앞에서 신문 십자퍼즐 문제를 읽으며 장례식이 시작할 때까지 시간을 때운다. 그러면서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가 남긴 시신’이라고 표현한다. 이 부분을 보면 메리 로치가 시신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읽을 수 있다.
이후 본문에서는본격적으로 시신을 연구용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나온다. 머리만 잘려 성형수술 실습용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부패 정도를 실험하기 위해 땅바닥에 가만히 눕혀지기도 한다.잘라낸 다리는 총알 관통 실험에 쓰이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자동차 충돌 실험에사체가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보통은 인체모형을 제작해 실험에 사용해도 충분할 텐데 굳이 죽은 사람의 몸에 총알을 박고 머리를 부딪혀 깨뜨리는 이유가 뭘까?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사람의 관절과 피부질감을 고스란히 복원해 모형 하나를 만드는 데는 5000달러가들지만 시체 한 구는 500달러면 살 수 있다. 모형 한 개를 만들돈으로 시체를 열 구나 살 수 있는 셈이다. ‘망자의 존엄성 훼손’이라는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체 실험이 계속되는 이면에는 돈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체 실험들을 통해얻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미래를 설계하고 대비책을 찾는 일에 모형보다 경제적으로 효율성이 높은사람 시체가 사용된다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재활용이 어디 있겠는가.
고문서의기록과 함께 메리 로치 작가가 저널리스트로서 발로 뛴 취재의 기록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로이터 통신에 소개된 인육만두에 관한 기사를읽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곧바로 중국행을 감행한다. 그 곳에서 담당 국장을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사람 고기를만두에 넣었느냐고 캐묻는가 하면 세계 유일의 시체부패 연구소가 있는 테네시 대학교 메디컬센터를 찾아가 시체 배꼽에서 꿈틀거리는 파리 유충까지 기어이확인하고 만다.
“궁금하십니까? 그래서 제가 해봤습니다.” 같은 메리 로치식글쓰기법은 지나치게 직설적이어서 때로는 숨이 막혀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책 아랫면에 달린 각주가 이야기의흐름을 묘하게 바꿔준다. 각주만 따로 읽어도 한 권의 무협만화를 독파한 것처럼 충분히 재미있다.전문적인 이야기 같지만 일반인의 시점으로 쉽게 쓰는 것이 메리 로치 작가의 매력이다.
이렇게 책이이끄는 대로 정신 없이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메리 로치 작가가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사람이 사는 동안의 모습이 제 각각이었듯죽고 난 다음 누군가는 재로 사라지고 누군가는 실험용으로 과학실에 뉘어진다. 또한 퇴비가 되어 땅으로 돌아가는방법도 있다. 메리 로치 작가는 마지막까지 시체를 어떻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 동안 했던 모든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자신의 인생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나는 나를 해부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약력을 첨부할 것이다. 신체 기증자는 이렇게 할 수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못쓰게 된 내 껍질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야 이것 좀 봐. 이 여자는 시체에 관한 책을 한 권 썼어.”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내 시체가 윙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메리 로치 작가의 <인체 재활용>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