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념 아파트호텔이 뜨고 있다', 도미오 창업자 재이 로버츠
“이 돈 내고 이런데서 자야 한다고?” 숙소에 만만치 않은 돈을 투자했는데도 막상 방문을 열고 보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오성급 호텔은 가격이 지나치게 부담스럽고, 눈높이를 낮춰 민박에 머물자니 여러모로 실망스럽다. 과연 대안은 없을까? 모두가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때, 한발 더 나아가 이 불만을 직접 해결한 청년이 있다. 여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8할은 호텔, 깨끗하고 편안한 숙소는 여행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된다. 아파트와 호텔의 장점만을 뽑아 신개념 아파트 호텔 서비스를 선보이는 도미오(Domio) 대표 재이 로버츠(Jay Roberts)이다. 열의와 패기로 젊은 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로버츠 대표를 뉴욕 도미오 본사에서 만나본다.
공유 숙박 업계에 '젊은 경영' 바람 일으켜
흰 셔츠에 깔끔한 회색 블레이저를 걸친 모습에서 스타트업 CEO 특유의 신선한 냄새가 났다. 틀에 박힌 권위나 갑갑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공손하되 거만하지는 않고, 적극적이되 요란하지는 않다. 스스로 정해 놓은 정직한 선을 지키면서 올곧게 달려온 그의 과거가 한눈에 읽혔다. 도미오는 그가 출장과 여행을 다니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아쉬웠던 점을 보완하기 위해 직접 설계한 아이디어다.
이 참신한 생각은 어떻게 고안했을까? 여행을 가든, 출장을 가든 집밖 생활은 누구에게나 부담이다. 내 집이 아니어서 겪는 불편함은 둘째 치고 만만치 않은 가격과 청결 때문에 잔뜩 기분만 상한 채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재이 역시 그랬다. 주인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지저분한 숙소, 생각지도 못한 호텔 서비스료에 질려버렸다. 도미오는 저렴한 가격에 넓고 깨끗한 숙소를 통째로 빌릴 수 있는 대안이다. 일반적인 호텔 방에 비해 5배 큰 공간을 25% 저렴하게 대여하고 있다.
굴지의 투자가들로부터 1억 달러 유치 성공
재이 로버츠 대표가 도미오를 세운지 이제 삼년 반이 지났다. 번뜩이는 신개념 스타트업 사업 아이템에 세계 투자가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벤처 캐피탈인 GGV 캐피탈과 테나야 캐피탈, 소프트뱅크 뉴욕 등으로부터 1억 달러 투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트라이베카 벤처 파트너, 앨드리지 인더스트리, 어퍼 90 등 저명한 투자가들이 대거 포함됐다. 투자액 1억 달러에 주목해보자.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으면 시리즈A, 시리즈B, 시리즈C로 구분하는데, 최초 투자금이 되는 시드머니를 A,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품화되는 단계의 투자를 B, 시장을 늘릴 단계의 투자를 C로 본다. 도미오는 기업을 빌드업 하는 단계인 시리즈B 투자를 받았다.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기업의 시장 진출을 돕고 기반을 넓히는 활동을 한다. 업계에서는 이미 상당 수준의 사용자를 확보했으며, 큰 성공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여행경비는 한정돼 있죠.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항공과 숙박입니다. 타협이 불가능한 항공료를 제외하면 결국 숙박비를 조절할 수밖에 없어요. 모든 여행자들은 싸고 좋은 숙소를 원해요.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저는 바로 그 점에 착안했죠. 다행히 제 생각이 많은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더 크게 성장하는 발판이 됐습니다.”
에어비앤비와 호텔의 장점 결합
도미오는 공유 숙박 업계 중에서도 후발 주자에 속한다. 하지만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의 미국 법인이 투자에 참여하는 등 설립 초기부터 관심을 받았다. 기존의 경쟁 업체들이 집주인의 빈방을 빌려 재임대하는 것과는 달리 도미오는 아파트나 건물을 통째로 빌려 하나의 호텔 브랜드로 만들어 차별화했다. 도미오를 에어비앤비 서비스와 곧잘 비교한다. 똑같이 숙박공유 형태이지만 에어비앤비가 단순히 집주인과 투숙객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에 그친다면 도미오는 직접 경영에 뛰어들어 수준 높은 전문 서비스를 실현한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집 상태가 복불복인 에어비앤비를 선택하느니 보다 안전한 도미오를 믿을 수밖에 없다. 예약 방식은 똑같은데 여기에 넓고 싼값이 추가되는 셈이다.
도미오라는 회사 이름도 그가 직접 지었다. 라틴어로 집을 의미하는 'dom'과 1인칭 소유격 'mio'가 더해져 'Domio'가 탄생했다. 합쳐서 '나의 집'을 뜻한다. 어디에 머물든 내 집처럼 편안하고 쾌적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그의 진심이 엿보인다.
싼 값으로 넓은 공간 빌릴 수 있어 인기
삼년 만에 회사는 눈에 띄게 커졌다. 직원 수는 150명, 뉴욕 본사 외에 토론토와 마이애미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애미에 첫 도미오 호텔을 열었고 샌디에이고에도 전체 건물을 임대한 도미오 호텔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샌디에고, 필라델피아 텍사스 오스틴 등 12개 도시에서 운영되며, 이번 투자금을 바탕으로 전 세계 25개 지역으로 시장을 확대할 방침이다. 투숙객들의 반응은 뜨겁다. 관리인이 따로 있어 호텔 못지않은 서비스를 누리면서도, 넓은 아파트형 구조가 내 집과도 같은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헬스장과 수영장 등 각종 편의시설은 당연하다. 게다가 도미오는 주방 시설과 도구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현지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가족 단위의 단체 여행객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어떻게 그렇게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냐고요? 비법 같은 건 없습니다. 고객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했고, 어떻게 하면 만족할 수 있을지 연구했어요.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숙소이다보니 참고할만한 모델이 없었어요. 그래서 스스로 시장조사를 하고 하나하나 부딪혀가며 체득했죠.”
로버츠 대표의 실험은 통했다. 리더십을 타고난 천생 사업가처럼 보인다. 여기에 대해 묻자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현재 도미오 대표가 되기까지의 긴 인생 여정을 꼼꼼하게 들려줬다.
생후 3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
그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작고 가는 눈을 가진 동양인 남자이다.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곧바로 고아원에 보내졌다가 생후 3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됐다. 이후 아버지 없이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형편은 어려웠어도 가족은 화목했다. 엄마와 두 명의 누나들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예쁨 받으며 컸다. 한없이 따뜻한 사랑을 줬지만 그는 늘 마음 한편이 아쉬웠다. 같이 축구를 하고, 차를 고치고, 낚시를 가줄 남자 어른이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TV를 보면서 따라하고 싶은 남성상을 찾았다.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워렌 버핏, 빌 게이츠 같은 명사 몇몇을 머릿속에 줄지어 세웠다. 나도 커서 저런 어른이 돼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닮고 싶은 점을 되뇄다.
경제학 전공 살려 월가 금융회사에서 일하기도
운동선수를 롤 모델로 삼아서일까. 로스 알라미토스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풋볼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공부도 곧잘 하는 학생이었다.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 주립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뉴욕대 경영대학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전공을 살려 뉴욕 뱅크오브 아메리카 메릴린치 인베스트먼트 뱅커로 취직해 부동산 합병이나 거래를 담당했다. 2016년 퇴사하기 직전까지 부동산 업계 최대 금액인 12억 달러에 달하는 엠지엠 그로스 프라퍼티의 주식공개상장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미국 최대 부동산 투자 신탁(REITs)인 파라마운트 그룹의 26억 달러 주식공개상장도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이렇게 승승가도를 달리는 그가 돌연 회사를 나와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소위 말하는 흙수저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열악한 환경이 저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5살 때 신문 배달을 했고, 고등학교 때는 피자 배달을 했어요. 대학교 때는 텔레마케터로 일했어요. 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현실은 암담했죠. 하지만 어려서부터 쌓은 사회경험이 저에게 큰 자양분이 됐습니다.”
불우한 환경은 오히려 축복이었다
대학 졸업반 시절에 양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지금 남은 가족은 두 누나들뿐이다. 고생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길을 그는 기꺼이 축복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찍이 아르바이트로 다져놓은 덕분에 사회와 경제를 보는 안목이 생겼다고 호방하게 말한다. 남들보다 조금 불우한 환경이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이른 사회경험이었던 셈이다. 그는 도미오를 창업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자신을 '사장님'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도미오에 속한 한 명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스타트업으로 성공 궤도에 오른 도미오 재이 로버츠 대표의 성공에 열광하지만 그에게 미국은 관용 있는 열린사회, 한국은 가난한 미지의 모국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 실제로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서른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한국에 가본 적이 없다. 2014년 방문이 처음이었다. 그에게 첫 한국은 어땠을까?
“세련된 문화와 사람들에 놀랐어요. 저는 미국에서 자랐지만 제 안에 한국적인 문화가 있다고 믿어요. 그건 제게 무척 소중해요.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지어준 한글이름 '석정현'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그는 두 나라에 걸친 자신의 정체성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지극히 사적이고, 민감하고, 가슴 아플 수도 있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꺼내면서 낳아주신 부모님, 길러주신 부모님, 그리고 자신을 믿어준 가족 모두 감사하다고 오히려 위로의 인사말을 전했다.
스타트업은 아이디어 전쟁, 자신을 믿어야
그러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온 마음을 담아 조언을 건넸다. 스타트업은 아이디어 전쟁과 같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확신과 자신감이 부족한 탓이다. 로버츠는 성공을 하려면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누구에게나 기회가 오기 마련인데 언제 어디서 불쑥 나타날지 모르니 제때 꽉 붙들려면 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하고 근면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강조한 말도 '열심히(Work hard)'였다.
도미오는 이제 전 세계로 뻗어가기 위한 도약대에 섰다. 지금까지 미국에 한정됐던 서비스를 올해부터 세계 지사로 확대할 예정이다. 그가 말한 것처럼 여행으로 세상을 연결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2020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