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계기돼” 문호선 음악감독
올 초, 느닷없이 들이닥친 바이러스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많은 사람이 밀폐된 공간에 모이는 기회부터 당장 차단됐다. 공연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문화 예술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예술인들은 잠시 일터를 떠나있어야 했다. 모두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예술인만 특히 더 어렵다고 앓는 소리할 수도 없다. 빈곤도 문제이지만 예술인들을 더 괴롭게 만드는 건 문화 예술의 존재 이유를 묻는 근본적인 물음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리는 음악과 영화, 뮤지컬은 늘 액세서리 취급당한다.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좋은 장신구처럼, 디저트처럼 여겨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놈의 예술, 당신들이 제조업처럼 마스크를 찍어내냐. 의료인처럼 사람을 살리냐. 개발자처럼 코로나 맵을 만드냐'고. 생과 사가 오가는 재난 앞에서 예술인들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 예술이, 예술인이 해야 할 일은 뭘까.
개인 페이스북에 피아노 연주 올려 음악으로 위로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음악감독 문호선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요 묵상(Sunday Meditation)이라는 제목으로 피아노 연주를 올리기 시작했다. 예술이 주는 힘은 위대하다. 꼭 돈이 되는 무언가를 해야만 사회에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자신이 가진 재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그것만한 보탬이 어디 있을까. 이렇게 전 세계가 잿빛으로 시들어갈 때 예술이 주는 활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문호선의 연주에도 그런 힘이 있다. 금세 수많은 페이스북 댓글이 달렸다. 당신의 연주에 '치유'가 됐다고.
“직업으로서 음악은 굉장히 사치스럽죠. 생계가 막막한데 사람들이 어떻게 뮤지컬을 보러 가겠어요? 그래서 지금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배우들, 뮤지션들입니다. 이번 기회에 온라인을 통해 함께 나눌 수 있는 음악에 대한 고민이 절실합니다. 제가 올린 영상에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뜨겁게 반응할지 몰랐어요. 뷰 수가 올라가고 댓글이 많이 달렸어요. 메시지가 오기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위로가 됐다고 말해주니까 저 또한 힘이 났어요.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건데 이제는 매주 하나씩 주기적으로 업로드하고 있죠. ”
뉴욕 공연계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문호선
뉴욕에서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호선. 코로나가 발발하기 직전까지 '오페라의 유령' 투어 공연을 다녀오는 등 활발하게 명성을 쌓아갔다. 롱아일랜드 파이브타운스 칼리지에서 오랜 시간 학생들을 지도하다 2017년, 뉴욕 롱아일랜드의 유서 깊은 패처그 씨어터(Patchogue Theatre)에서 성탄시즌에 올려지는 ‘크리스마스 스토리(A Christmas Story)’에 뮤직디렉터로 발탁됐다. 당시 언론은 '한인여성이 뉴욕의 주류 뮤지컬작품에서 처음 음악감독으로 나선다'고 보도했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이기에 그의 활약이 더욱 눈에 띈다.
매번 도전하는 과정 즐겨..신뢰받는 지휘자 되고파
문호선 감독은 그 뒤로 코러스 라인(A Chorus Line), 카바레(Cabaret),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등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며 명성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파격을 만들어 냈다. 문호선의 삶은 도전과 노력의 삼투압 과정이고, 그는 매번 이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의 협업으로 완성되는 뮤지컬에서 중요 파트를 담당하는 음악 감독으로서 연출자에게 실력과 믿음을 보여주는 일, 그것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번 인터뷰에서 문호선이 가장 많이 뱉은 단어가 약속과 신뢰이다.
“저는 음악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실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제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이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프리랜서 뮤지션에게 신뢰는 아주 중요하거든요. 문호선에게 일을 맡기면 중간에 사고가 나는 일은 없겠구나 하고 믿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왔어요. 제 실력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약속을 지킬 수는 있잖아요. 일을 맡으면 어떻게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에요.”
뮤지컬은 생물, 모든 과정에 음악감독 손길 미쳐
문호선에게 음악감독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공연에서 쓰이는 음악을 총괄하는 디렉터 역할 정도의 답을 예상했다. 문호선은 '뮤지컬 파트에서 유일하게 공연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연출, 감독, 안무가들은 연습 과정에 적극 개입할 뿐 막상 공연이 시작되면 할 일이 없지만 음악 감독들은 지휘자로 공연에 참여를 하기 때문에 마지막 공연이 막을 내릴 때까지 배우들과 함께 하게 된다. 오디션에서 배역에 맞는 배우들을 뽑는데 참여하기도 하고, 배우들의 노래를 가르치고 연습을 함께 하기도 한다. 댄스 연습에 참여하고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한다. 극의 흐름에 맞게 배경음악(Underscore)이나 삽입음악 (Scene Change Music)을 연주하고, 서곡에서부터 공연 후 관객들이 극장에서 나갈 때 까지 모든 음악을 담당한다. 그러고 보니 음악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뮤지컬을 흔히 생물이라 표현한다. 수많은 연출진과 배우, 그리고 관객이 결합해 늘 예측 불가능한 폭발력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문호선의 매일은 항상 다르다. 사람들이 말하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그날이 그날'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타성에 젖을 틈 없이 생기 있게 흘러가는 매일의 긴장감을 즐긴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책상 앞에 앉아 근무하다 퇴근하는 그날이 그날인 순간이 제게는 한 번도 없었어요. 매번 다른 작품을 공연하는데다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무대에 올리더라도 신기하게도 매일 달라요. 라이브 공연만의 특성이지요. 그날의 컨디션이나 감정에 따라 결과물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에 한 번도 그날이 그날인 적이 없었어요.”
대학에서 학생들 지도하며 값진 보람 느끼기도
뮤지컬 음악감독이기 전에 문호선은 교수였다. 롱아일랜드 파이브타운스 칼리지 교수로 14년 동안 재직하면서 매 학기마다 뮤지컬 작품을 두 개씩 무대에 올렸다. 수업과 공연은 별개라서 하루 종일 수업한 뒤 저녁에는 공연 리허설을 하고 주말에는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밤낮없이 학교에 매여 생활한데 대한 값진 보람도 있었다. 그가 학생들과 함께 공연한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 뮤지컬 공연이 ‘2017~18 아메리칸 프라이즈’(The American Prize) 뮤지컬 감독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 아메리칸 프라이즈는 미 전역에서 열리는 연주회들 중에서 성악, 피아노, 작곡, 지휘, 오케스트라, 오페라, 합창, 뮤지컬 등 부문별로 심사해 시상한다. 지휘로 상을 받는다는 것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감독의 호흡이 완벽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학생들과 함께 십여 년을 공들여 키운 오케스트라가 이만큼 성장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교편을 내려놓고 직접 공연계로 뛰어든 이유가 뭘까? 문호선은 학생을 지도하면서 얻는 기쁨도 크지만 더 늦기 전에 현장에 뛰어들어야겠다는 목마름이 더 컸다고 말한다. 그가 프로페셔널 음악감독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첫 작품이 '크리스마스 스토리'였다.
롱아일랜드 명문 극단에 데뷔한 비결은 '약속'과 '신뢰'
더군다나 이 작품을 공연하는 게이트웨이 플레이하우스 프로덕션(The Gateway Playhouse)은 7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극단으로 로버트 듀발, 진 해크먼 등 숱한 연기파 스타들을 배출했다. 또 '크리스마스 스토리' 공연을 올린 패처그 씨어터는 1923년 개관한 이후 뮤지컬과 영화, 각종 공연이 이뤄진 롱아일랜드 지역 최대 규모 극장이다. 2004년 보수공사를 거쳐 세계적인 음향, 조명 시설을 갖추고부터는 수준 높은 작품들을 엄선해 공연하고 있다. 학교를 나와 처음 맞닥뜨린 야생의 뮤지컬 정글 숲이 이 정도면 꽤 안락한 착륙이다. 문호선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음악계의 대부로 알려진 조셉 처치(Joseph Church) 감독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어 가능했다고 회고한다.
“14년 동안 학교에만 있었기 때문에 제 극장 이력은 전무한 상태였죠. 무명의 예술가에게 음악을 선뜻 맡길 연출자는 없어요. 뮤지컬계에서는 그래서 인맥이 굉장히 중요하죠. 조셉 처치 선생님이 쓴 책을 보면 이 부분을 크게 강조했어요. 어떤 순간, 어떤 사람을 아는지가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고.”
단순히 황금 인맥 한줄기만으로 이 자리에 오를 수는 없으리라. 실력과 운, 노력, 신뢰, 평판 모든 것이 균형 있게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셨냐 묻자 문호선의 목소리가 높고 빨라졌다. 남들은 황새인줄 알지만 스스로는 뱁새라고 생각한다며, 열심히라도 하지 않으면 현상유지가 안 되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실력이 갖춰지지 않은 채 섣부르게 나선 사람들은 현장에서 금방 배제됩니다. 앙상블은 절대 혼자 튀어서도 안 되고 뒤쳐져서도 안 되거든요.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평가와 인맥이 생명이죠. 타고난 음악가 또는 음악 외길인생이라는 수식어는 저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고 긴장해요.”
내 자존감의 8할은 남편이 세워준 것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문호선 음악감독은 자존감이 무척 높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격려하며 힘을 낼 수 있도록 이끄는 연습에 단련된 사람 같다.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존감은 철저하게 홈메이드이다. 어디 가서 돈 주고 사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이 든든하게 지탱해 줄 때 뿌리내릴 수 있는 내공이다.
문호선의 자존감 메이커는 남편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공연계롤 뛰어들 때도, 교회 뮤직 디렉터의 자리에 지원을 할 때도, 4개월짜리 대형 투어 공연을 시작할 때도. 고민하는 순간마다 현명한 답을 준 존재가 남편이다.
“내가 과연 뮤직 디렉터 자격이 있을까 고민할 때 일단 해보라고 전폭적으로 밀어줬죠. 무엇보다 남편은 저를 아내이자 음악감독으로 인정을 해줘요. 공연이나 연주를 마치고 나면 아쉬움이 크게 남아요.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커서 그렇겠죠? 그런 아쉬움을 견디지 못해서 음악을 그만두려고 했던 때가 있었어요. 저는 특별히 음악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고비마다 힘이 되어 주는 버팀목 같은 존재가 남편이죠.”
나는 잘하는 사람 아니라 열심히 하는 사람..계속 음악 열심히 하고파
뮤지컬 지휘자는 관객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을 함께 하지만 관객의 자리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위치이다. 관객과 직접적인 소통을 나누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 음악을 연주하는 내내 기다렸다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이 있다. 이런 진정한 교감의 순간이 문호선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음악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잘하지 못하니까'라는 그 평범하고 정직한 말이 왜 이토록 위로가 되는 걸까. 부족한 걸 알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그의 인생론이 유난히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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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선 음악감독
연세대 음악대학 교회음악과를 졸업하고 1990년 뉴욕으로 건너왔다. 맨해튼 스쿨에서 반주 전공으로 석사,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 롱아일랜드 파이브타운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롱아일랜드 헌팅턴에 위치한 센트럴 프레스테리안 교회에서 음악 책임자이자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노스컨트리 리폼 템플에서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부터 '크리스마스 스토리', '코러스 라인', '카바레', '레미제라블', '사운드 오브 뮤직' 등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며 본격적인 프로페셔널 음악 감독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2020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