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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Jun 18. 2020

'4현(絃)의 마법,새로운 경지의 음악을 연주'올댓첼로

'4현(絃)의 마법, 새로운 경지의 음악을 연주하다All That Cello  


가장 무서운 게 경험이다. 모를 때에는 막연히 거리감이 느껴지고 불편해 보이던 것이 해보고 나니 빠져든다. 클래식 음악이 그렇다. 딱딱하게 느껴졌던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고혹적인 매력에 쏙 빠져든다. 역시 아는 맛이 무섭다. 일상이 바뀌고 모든 문화 예술적 욕망은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하는 요즘, 상처 입은 우리네 마음을 토닥이는 재료는 뭐니 뭐니 해도 클래식이다.  


왼쪽부터시계방향-김수지.이지현.올리비아.강미성


베테랑들로 구성된 실력파 첼로 앙상블, 올 댓 첼로 

뉴욕 일원에서 결성된 첼로 사중주단 '올 댓 첼로(All That Cello)'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이룬 대표적인 그룹이다. 유럽 고전 음악에 장르를 가두지 않고 80년대 올드팝, 찬송가 등 꾸준히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보인다. 올 댓 첼로는 4월에 열렸어야 할 정기 연주회 일정을 취소하고 네 명의 멤버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멤버 네 명의 음악 이력은 평균 35년을 훌쩍 넘을 정도로 쟁쟁한 경력을 자랑한다. 이른바 그 분야 고수로 불리는 이들이 어떻게 팀을 결성하게 됐을까? 


2015년, 메인 바이올린(Main Violin)에서 주최하는 챔버 온 메인(Chamber on Main) 연주회를 위해 한시적으로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첼리스트 김수지, 이지현, 강미성이 모이게 됐고, 2018년에는 올리비아 김이 합류해 4인조 완전체를 이뤘다. 뜻이 잘 맞아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다른 현악기 없이 첼로로만 구성된 팀은 보기 드물다. 그들이 사현(四絃) 위에서 살아온 삶이 문득 궁금해졌다. 


“오페라 연주자였던 부모님들의 영향으로 6살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졸업직후에 미주리대학교에서 주최한 컴피티션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는 기회를 얻었죠. 그렇게 미국에 오게 됐어요.” (김수지) 


“첼로를 전공하는 큰오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첼로를 사줬어요. 한 번 배워보라고요. 유학도 오빠들이 미국에 먼저 와 있어서 제가 따라온 거죠. 지나고 보니 제 인생은 오빠가 이끌어줬네요.”(이지현) 





4인 4색, 개성 뚜렷한 점이 매력 

악기를 시작하게 된 인연이 제각각이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 또한 제각각이다. 이들의 생김새나 성격은 물론 음악 성향마저 개성이 뚜렷하다. 얼핏 섞이기 어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올 댓 첼로로 뭉쳐 만들어내는 화음은 최고의 호흡을 자랑한다. 


영화 '마지막 4중주'(2012·감독 야론 질버맨)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둔 현악사중주단이 25년 동안 숨기고 억눌러온 감정들을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드러내기 시작하고, 삶과 음악에 있어서 최대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 개성 강한 연주자들이 섬세한 현들의 합을 보여줘야 하는 현악사중주단은 연주 시간뿐 아니라 내밀한 삶까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올 댓 첼로의 농익은 음색은 삶의 모양과 닮아있다. 음악적 기교를 넘어서 삶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는다.    


“저희 팀은 각자 맡은 역할이 있어요. 정말 한명씩의 장점을 잘 살려서 잘 수행해요. 멤버들을 떠올리면 평안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어요. 모두들 주부이면서, 선생님이고, 아이엄마인 공통된 환경이기 때문에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죠.(올리비아 김) 


함께하기에 든든하고 의지돼 

현악기는 피아노 같은 건반 악기와 달리 손가락을 1㎜만 옮겨도 음정과 음색이 달라진다. 덕분에 색채가 풍부하지만, 연주자로서는 긴장의 연속이다. 무대 위 연주자는 청중의 시선을 한 몸으로 받아내며 혹여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외로운 압박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네 명이 함께 무대에 섰을 때는 사정이 다르다. 부족한 점은 채워주고, 자신 있는 부분은 부각시켜 주면서 부담감을 나누어 짊어진다.  


“김수지 선생님은 공연의 큰 그림을 제시하고 우리 안에서 중심을 잡아주시는 아빠의 역할을, 이지현 선생님은 홀, 악보, 간식, 회계 같은 살림을 맡은 엄마의 역할을, 올리비아 선생님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연습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저는 연주나 연습에 관한 음악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든든하죠. 많이 의지가 돼요.”(강미성) 

  



각자 자리에서 현업에 매진, 올 댓 첼로 활동은 봉사에 가까워 

올 댓 첼로는 멤버 모두 솔리스트로서 충분한 개성을 갖추고 있다. 김수지는 일찌감치 유수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몽클레어 콰르텟 등 여러 현악팀 연주 경력을 가진 베테랑 첼리스트이다. 현재는 세인트 엘리자베스 대학, 와튼 음악학교, 몽클레어 킴벌리 아카데미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강미성은 한국계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우륵 심포니 오케스트라(U-reuk Symphony)를 비롯해 KRS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에서 수석 첼리스트와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피아노를 치다 바이올린으로 주악기를 바꾼 이지현은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첼로 소리가 좋아 운명처럼 끌렸다고 말한다. 맨해튼 음악학교 학부, 대학원에서 첼로를 전공했다. 칠레 이민 생활 중 첼로를 전공하게 된 올리비아는 그곳에서 대학입시를 치르기가 두려워서 실기만 보는 음악으로 진로를 선택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칠레에서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는 몽클레어 주립 대학교 음대 최고 연주자과정을 마쳤다.  


멤버들에게 올 댓 첼로는 본업이 아니라 부업이나 봉사에 가깝다. 이윤을 내는 활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연주를 이어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올 댓 첼로의 목적은 저희가 가진 이 음악적인 능력을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저희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와 힘을 주고 싶습니다.”(강미성) 


“우리의 연주로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다면 더 없이 기쁘겠죠. 잊고 있었던 추억을 다시 생각나게 해줬다는 감상평을 들었을 때 음악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음악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이지현) 


현악기끼리 함께하는 곡이 한정적이다. 더군다나 첼로 4중주 작품은 거의 없다. 악보가 많지 않아  공연을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올 댓 첼로는 아예 다른 장르로 눈을 넓힌다. 관객 반응이 가장 좋았던 곡은 역시 귀에 익숙한 80, 90년대 팝이다. 멤버들은 네 명이 함께 이뤄낸 결과물이 무대에서 하나의 통일된 소리로 만들어지는 쾌감을 즐긴다. 비슷한 음색을 가진 첼로 선율이 합을 이룰 때 오히려 표현의 폭이 넓어지기도 한다. 



양로원에서 한 첫 정기 연주회가 가장 기억에 남아 

올 댓 첼로(All That Cello). '첼로의 모든 것'이라는 담백한 이름답게 이들의 화음은 단정하면서 유려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가 언제였냐고 묻자 멤버들이 입을 모아 양로원에서 한 첫 정기공연을 꼽았다. 그룹 이름을 정하고 처음 하는 정기연주였다. 이들의 색깔을 대중에 첫 선을 보이는 역사적인 자리이기도 했고, 올 댓 첼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단정한 화음 속에서 묻어나오는 역동적인 파트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실내악 연주의 기품을 증명하는 무대였다. 커다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정적인 선율이 양로원을 가득 메웠다. 무엇보다 양로원 어르신들이 캐럴을 따라 부르며 즐겁게 호응하는 모습에 벅찬 감동을 느꼈다. 첼로 솔리스트 혼자였다면 그 무대를 꽉 채울 수 있었을까. 멤버들은 서로가 있었기에 풍성하고 따뜻한 무대를 꾸밀 수 있었다고 단언한다. 


“크리스마스 때 뉴저지 놀스버겐에 있는 한 양로원에서 했던 음악회가 기억에 남습니다. 관중과의 교감이 가장 가깝게 느껴진 순간이었죠.”(김수지) 


4년째 올 댓 첼로가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이자 오래 이어질 원동력은 조화로움이다. 네 명 중 한 명만 욕심을 부려도 뭔가 어그러지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들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음폭을 넓혀가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이 좋아져요. 어릴 때는 사실 안 좋아했어요. 입시와 경연에 치이다보니 제대로 즐길 여유가 없었죠. 그런데 올 댓 첼로 활동을 하면서 배우는 점이 많아요. 제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있었어요. 감동이란 서로 주고받는 선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올리비아 김) 


올 댓 첼로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결성 초기에 관객을 찾아가는 모양새였다가 지금은 관객이 이들을 찾는 모양새이다. 연주자들에게 계속 불림을 받은 것만큼 뿌듯한 일이 어디 있을까.          


코로나 영향으로 올 봄 정기연주회 취소해 

올 댓 첼로는 일 년에 두 번 정기연주를 하고 있다. 보통 봄에 한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한번이다. 그리고 중간 중간 기획연주나 초청연주를 한다. 그 흐름이 올해 처음으로 깨졌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의 영향이다. 아직 이른 줄 알면서도 앞으로 계획에 대해 물었다. 


“지금은 모두의 안전을 우선해야 하는 시점이죠. 팀 활동은 못하고 개인적인 음악 활동은 하고 있어요. 제가 피아노, 첼로 연주를 녹음해서 화음으로 편집하는 작업인데요. 요즘은 가까운 지인들과 그렇게 음악으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연주자로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있어요. 처음 하는 편집이라 어렵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죠.”(강미성) 
“이번 일을 계기로 음악을 소통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는 대면 공연만 해왔고, 이 방식이 익숙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 같은 새로운 방식이 자리 잡겠죠. 접촉은 줄이고 접속은 늘리는 비대면 사회로 변화할 거라고 예상해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지고 관객들과 밀도 높은 콘텐츠를 공유한다는 장점이 있어요. 연주자 입장에서는 이런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과제입니다.”(올리비아 김) 



달라질 공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비대면 공연 방식 연구할 것 

갑작스럽게 달라진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곧바로 대안을 궁리하는 모습이다. 비대면 문화로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될 테니 빠르게 인정하고 따라가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먼저 대비하는 자가 열매를 딸 테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공연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리고 올 댓 첼로는 어떤 새로운 연주를 들려주게 될까?   


“구체적인 모델이나 목표를 정하지 않고 우선은 연습에 매진할 거예요. 정해놓으면 오히려 생각을 가둘 수 있으니까요. 저는 정확하고 꼼꼼한 연주 스타일이 특징인데요, 그래서 바흐, 하이든 곡이 잘 맞아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열정적인 곡을 좋아해요.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를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연주를 들려주고 싶어요.”(이지현) 


“시간에 떠밀려 앞으로만 가는 우리 인생도 중간에 조율할 틈 없이 흘러가죠. 그 과정에서 부조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지금은 조율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팀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로의 의견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있어요. 나이가 많고 어리고는 상관없어요. 지적과 조언, 칭찬에 관대합니다. 이런 젊은 활력이 연주력으로 이어지죠. 첼로 앙상블의 다양한 음악 장르로 듣는 분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요.”(김수지) 


이들이 어렵고 고단한 사현 위의 삶을 계속하는 원동력은 아마도 '열정'인지 모르겠다.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음역대가 비슷하다는 첼로는 굵고 묵직한 선율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듣는 사람은 편할지언정 첼로는 굉장히 예민하고 까다로운 악기이다. 첼로를 향한 무한한 열정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 현악 연주자들은 악기를 공부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말한다. 너무 어려워서 수련의 심정으로 대하기 때문에 첼로가 매력적인 것 아닐까.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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