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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Jan 28. 2023

일하는 딸




부모님이 아프기 시작했다. 당신은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언젠가 부모가 떠날 것을 막연하게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부모님이 편안하게 돌아가시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려도, 준비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늙고 편찮으신 상태로 여러 해 동안 생존할 수 있다. 점점 더 병약한 모습으로 혼자 지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자식의 지원을 거부하거나 조언을 무시하는 부모도 있다. 돌봄을 받던 입장에서 돌봄을 주는 입장이 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 기둥 같던 부모님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저 멍청하게 바라만 봐야할까.    


마케팅 분야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으며 두 자녀를 키우던 리즈 오도넬 작가는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의 암 선고, 아버지의 치매 선고를 동시에 받게 된다. 암담한 현실 앞에 절망하던 작가는 곧 생각을 바꿔 적극적인 돌봄 제공자로 변신한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사고들이 수시로 터지고, 부모와 갈등하며 일터와 가정, 돌봄 역할까지 병행하는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낸다. 출장지에서 긴급 호출되는가 하면 늦은 밤, 새벽에도 달려가야 할 상황이 반복된다. 부모는 매번 고집을 부리고, 병원이나 요양원은 성에 차지 않고, 다른 가족은 무심한 듯 보이며, 회사는 일에 차질이 생긴다고 눈치를 준다. <일하는 딸>은 돌봄 제공자가 겪게 되는 일상의 민낯과 그 과정을 돌파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담고 있다.  


부모님이 아프기 시작할 때 돌봄과 일을 병행할 수 있을까? 정부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지원이 있지만 여전히 돌봄은 가족의 영역이다. 과거에 비해 많아진 요양시설과 복지 시스템이 있다 해도 이용이 쉽지 않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특히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사는 해외 교민들은 마음의 부담이 더해져 괴롭다.    


부모를 돌보는 문제에 대해 '늘 한 사람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형제자매 중 한 사람, 가족 중 한 사람이 결국 돌봄 제공의 거대한 책임을 혼자 진다는 것이다. 대개는 딸이다. 인생이 가장 덜 복잡한 성인 자녀, 자식이 없거나 업무 스트레스가 적은 사람이 그 역할을 맡는다고들 흔히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현장에서 다양한 사례를 접한 호스피스 간호사는 돌봄 제공자들이 헌신, 두뇌, 능력이라는 세 가지를 갖추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 세 가지를 갖춘 사람은 대개 꽉 찬 삶을 살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돌봄을 떠맡는 '한 사람'까지 되고 만다. <일하는 딸>은 부모를 돌보면서 생기는 성별 불평등을 꼬집는 책은 아니다. 자식들 중 한명이 과업을 짊어져야 하는 현실이라면, 이왕 맡은 일 어떻게 돌파하면 좋을지를 다룬다.  


끓는 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바로 튀어나오지만 물이 미지근해지다가 서서히 끓으면 위험을 인식하지 못한 채 결국 삶아진다는 것이다. 돌봄 제공자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영수증 처리나 집안일을 거드는 소소한 도움으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심부름을 하고 병원에 모시고 가는 일이 더해진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할 일이 계속 늘어나고 어느 순간 깜짝 놀랄 만큼 부담이 커진다. - p.104 


책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던 작가가 부모 돌봄까지 떠맡으며 벌어진 일을 정리한 체험 수기이다. 아픈 부모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치지 않고 돌봄을 완수할 수 있을지 매뉴얼처럼 정리해 알려준다. 매 단계마다 챙겨야 할 질문과 점검표 등을 첨부하고 있다. 질병 진단부터 간병인 구하기, 병원 방문과 입원, 복지사 선택, 형제자매의 갈등, 돌봄 서비스 신청 등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스트레스와 죄책감 같은 정신 건강까지 이야기한다. 


리즈 오도넬 작가는 돌봄이라는 숭고한 터널을 지나며 그저 버티는 것을 넘어 부모 자식이 서로 성장하는 시간을 갖도록 안내한다. 한꺼번에 일이 몰아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우선 우선순위를 정하고, 역할의 경계를 설정한다. 필요하다면 직장에 알리고 상사와 업무 조율을 할 필요가 있다. 돌발 사태에 대비해 미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는 것도 좋다. 험난한 터널을 몸소 겪은 경험자이기에 그가 들려주는 위로와 응원이 유독 따뜻하게 느껴진다.    


병약한 부모를 돌보는 일이 마냥 고통스러운 시간은 아니다. 돌봄이 '나를 내어주는 과정'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깨달음일 수 있다. 결국 준비한 만큼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라진다. 그리고 선택한 후에는 마음을 굳게 먹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선택지는 어차피 없으니까. 


부모가 살아있는 모두에게 이 책은 '남 일이 아니다'는 심정으로 읽힌다. 이미 닥쳤거나 곧 다가올 미래이다. 작가는 아직 부모님이 건강하고, 자식들이 적극적으로 돌볼 필요까지는 없을 때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한다. 막상 닥쳐서 벼락치기 하듯이 공부하는 것과 미리 염두에 두는 것은 천지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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