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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Feb 05. 2023

사각사각


 


어린이와 공포 소설, 이토록 어색한 조합이라니! 왠지 꿈과 희망만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어린이들에게, 소개해도 괜찮을지 잠시 고민했다. 어린이 장르 문학 <사각사각>이다. 밤 11시만 되면 들리는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섭다고? 물론 만인의 취향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분명 어떤 어린이들에게는 충분히 취향 저격일 만하다.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반성과 여운을 남긴다.  


영재네 가족이 이사 간 집은 지어진 지 사십 년을 훌쩍 넘긴 이층집이었다. 큰 대로변 고층 빌딩 맞은편에 이런 집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집. 영재 아빠는 투자에 실패하는 바람에 빚을 갚느라 살던 집을 팔고, 술김에 이층집을 계약했다. 취해서 미처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이 집은 독특한 계약 조건이 있다. 계약 파기 시 계약금의 열 배 보상, 잠겨 있는 벽장 출입 금지, 계단에 있는 백항아리에 매일 쌀을 넣을 것. 다소 황당하고 영문 모를 서약들이 품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엄마는 사십 년 된 낡은 집으로 이사 오면서도 이탈리아 직수입 의자만은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투는 곧 엄마에게 숨과 같은 것이었으니, 네 살 영재가 구구단을 외우고 다섯 살에 미국인과 대화를 하며 영재 기를 내뿜던 시절에 엄마에게 영재는 그 어떤 고급 가구보다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학교 주관 미술 대회를 망치고 시험지에 오(ㅇ)보다 엑스(X)가 많아질 무렵, 급기야 엄마는 영재를 엑스로 지칭했다. 투자에 실패한 뒤 집안이 기운 책임을 엄마에게 돌리는 아빠, 과시욕으로 똘똘 뭉쳐 아들의 교육에 집착하는 엄마의 조합은 마치 우리 옆집 사연처럼 친숙하다.   


영재는 불안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 손가락 끄트머리에 피가 맺힐 때까지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긴장과 부담의 무게를 견뎌 간다. 어느날 영재는 금기를 깨고 벽장에 들어간다. 밤 열한 시만 되면 들리던 사각사각, 끼이익, 쩔꺽 소리의 진실과 마주하는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서로에 대한 불신과 상처로 점철된 이들 셋에게 이층집은 어떤 시간을 허락할까? 과연 영재는 집 구석구석을 점령한 쥐들로부터 가족을 지켜 낼 수 있을까? 생쥐가 되어 버린 진짜 엄마와 웃는 얼굴의 가짜 엄마 중 영재는 누구와의 미래를 꿈꿀 것인가? 읽는 내내 물음표 투성이지만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가족을 가족이게 만드는 것들, 공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쥐를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는 제각각이다. 엄마는 일단 저 쥐들을 죽여 없애야겠다고 말하며 쥐약을 찾는다. 영재는 머리와 몸통의 반이 잘려 흉측하게 죽은 시궁쥐를 흙에 묻고 안녕을 빈다. 엄마에게 쥐는 사람 사는 곳에 범접할 수 없는 불결한 미물이었지만, 영재에겐 자연의 일부였다. 이사 계약서에 적힌 서약, 백항아리에 쌀을 매일 넣는 문제에 대해서도 셋은 입장이 달랐다. 술에 절어 들어온 아빠는 정작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도 백항아리에 쌀을 넣지 않는 엄마를 탓하기 바빴고, 엄마는 임자 없는 항아리에 매일 쌀을 채워 넣을 이유가 없다며 보란 듯이 항아리를 깨버린다. 영재는 남아 있는 항아리 하나를 찾아 가슴에 안고 이 모든 다툼으로부터 분리된 공간, 금지된 벽장 안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영재가 가슴에 품어 지킨 것이 비단 백항아리뿐이었을까? 벽장 안에서 영재는 금세 온 집 안을 덮어 버린 쥐 떼, 쥐신과 맞닥뜨린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쥐가 사람의 손톱을 먹고 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우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사각사각>에 그 쥐가 등장한다.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좀비이야기 버금가는 호러 장르로 변신한다. 영재는 엄마와 아빠가 차례로 쥐에게 육체를 빼앗기고 흰쥐가 되는 광경을 목격하지만, 쥐신의 주문에 걸려 엄마, 아빠의 육체를 입고 온 쥐 가족들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육체를 빼앗겨 영혼만 흰쥐에 옮아간 인간은 서서히 소멸된다. 이층집은 수많은 비밀을 높은 담 안에 가둔 채 쥐의 섬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영재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부족한 부모를 대신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쥐가 부모 역할을 한다면 기쁘지 않을까. 나를 힘들게 하는 부모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아이에게 주어진다는 설정은 결국 가족 완전체의 행복으로 귀결된다. 가족에게 요구되는 모습이 완벽함이 아니듯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면을 쓰지 않은 채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가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각사각>은 그림책이다. 흔치 않은 색감의 조화가 이야기를 한층 미스터리하게 만든다. 애니메이션 <코렐라인:비밀의 문>을 연상시키는 기발하고 오싹한 상상력과 찰떡궁합인 삽화가 극강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사람들은 그들과 다른 것을 표적으로 삼죠. 그게 동물이나 자연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도 그래요. 그러니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완전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죠. 그리고 완전한 사람으로 바뀌더라도, 우리는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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