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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Mar 12. 2023

우리, 편하게 말해요





말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 말로 마음을 달래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위로는 언제나 어설플 수밖에 없다. 나와 남이 다르니까.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 마음을 100퍼센트 알 수는 없듯이 말이다. 말과 말 사이에서 지지고 볶는 우리의 일상이지만 하는 수 없이 또 말로써 위로와 지혜를 얻을 수밖에 없다.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말하기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평생의 과제이기도 하다. 


마음을 다해 듣고 할 말은 놓치지 않는 세련된 기술을 원한다면 이금희 아나운서의 조언을 들어보자. 33년 방송 일을 하며 쌓아온 경험과 22년 동안 겸임 교수로 강의를 하며 알게 된 노하우가 미래의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우리, 편하게 말해요>를 썼다. 이금희 아나운서는 강의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젊은이들에게는 늘 빚진 마음이라고 말한다. 기성세대로서 열심히 살아오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지만,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세상을 살아가게 한 것만 같아서. 강단을 떠나며 젊은이들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기억을 더듬어 이 책을 썼다.  


“오늘도 부장님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요. 왜 한번 말하면 못 알아듣냐며 화를 내십니다. 제가 정말 무능한 걸까요.” 퇴근길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금희 아나운서는 직장 생활의 고충을 호소하는 사연을 자주 접한다. 특히 상사와 직원 간의 불통은 흔한 일이다. 왜 부장님은 답답해하고 우리는 못 알아들어 속상한 걸까. 이유는 ‘누구에게 말을 하느냐’를 놓쳤기 때문이다. 말하기에서 제일 중요한 주체는 듣는 사람이다. 말하기란 내 의견을 상대에게 전달하여 이해시키는 것.  


말하기에는 화자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화자의 에너지는 곧바로 청자에게 연결됩니다. 몰두와 흥미를 부르죠. 그러다 말하는 사람의 기운과 에너지가 조금씩 떨어지면 듣는 이의 집중과 재미도 조금씩 떨어집니다. 그만큼 말하기에는 크고도 지속적인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p.242


말하기가 어렵고 말할 때 자신감이 사라지는 건 당연하다.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으니까. 배운 적이 없으니까. 발표할래, 자료조사 백 장 할래 물으면 당연히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자료 조사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발표가 잡히면 그 전날부터 배가 아프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은 최고의 불안이다. 차라리 자이로드롭 열 번을 타겠다. 


하지만 배워본 적 없는 말하기가 사회생활에는 꼭 필요하다. 1장에 나오는 '원체험'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원체험이란 '어떤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아 어떤 식으로든 구애를 받게 되는 유년 시절의 경험'이라고 한다. 이금희 작가의 어머니는 재미있을 것도 없는 어린 금희의 이야기를 항상 흥미진진하게 들어줬다고 한다. 덕분에 엄마처럼 사람들도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을 거라는 믿음과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제대로 된 말하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듣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듣기는 관계의 시작이자 끝이다. 


대중이 이금희 아나운서를 보며 느끼는 안정감과 따뜻함은 사실 수십 년간 치열하게 연습해온 결과물이다. 청중 앞에서 말을 자기 페이스대로 이야기하려면 무엇보다 기 싸움이 필요하다. 이금희 아나운서는 '발표는 기 싸움'이라고 단언하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기에 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 자신감은 물론 충분한 준비와 연습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뮤지컬 배우가 노래 한 곡을 1만 번 연습하듯이, 코미디언이 5분 남짓한 「개그콘서트」 코너를 위해 100-200번 반복하며 무대를 준비하듯이.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하면 어찌 될까. 대사를 잊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할 겨를도 없이 조건반사처럼 입에서 대사가 술술 나온다. 뇌에 저장하는 게 아니라 세포에 새기는 느낌이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건 남들을 웃게 하는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남들을 웃게 하려고 수백 번씩 준비한 노력이었던 셈이다. 노력만이 기 싸움에서 승기를 잡게 한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이야기하는 비법은 사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자신감 있게 말하는 방법이나 신뢰를 주는 목소리 톤에 대해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마치 살을 빼려면 적게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조언처럼 말이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이 어려워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특별한 비책이 아니어도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습관을 틈틈이 재인식하면서 스스로를 단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가슴이 몽글몽글해졌다. 인간관계의 고민과 그 상황에 맞는 잔잔한 위로,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두려움과 그에 대응할 용기,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우는 노력 등 여러 감정이 밀려온다. 글로 만나는 이금희 아나운서의 문장에서 인생 선배의 진심 어린 조언과 위로가 들리는 듯했다. 그것이 이 작가의 힘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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