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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Apr 04. 2023

안전한 나의 집



 


여기 그림으로 그린 듯한 재미한인 가족이 있다. 197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보란 듯이 성공한 아버지, 아버지처럼 교수가 된 아들, 사랑스러운 손자. 일요일에는 온가족이 교회에 가고, 부엌에는 며느리들만 드나들며, 반드시 남자 앞에 먼저 음식을 차리는 사람들. 주변 한인 사회의 이목에 신경 쓰며 체면과 위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신기한 점은 이 가족이 미국에서 수십 년째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울타리에 갇힌 후에야 알았다. 가장 잔혹한 일들은 집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겉으로 화목해 보이는 이 가족의 한 꺼풀 안을 들춰보면 멍투성이 가족이다. 아버지를 따라 네 살 때 미국에 온 주인공 경은 한인사회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부모의 양육에 반발해 백인 여자와 결혼했지만, 부모와 연을 끊지도 못한 채 애매한 관계를 이어간다. 작가 정윤이 한국인의 마음 깊이 내재한 다층적인 모순에 극적인 사건과 반전을 더해 소설로 써낸 <안전한 나의 집>이다. 제목과 달리 화목한 휴먼 드라마가 아니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적 상황을 다룬다. 


어느 날 부모님 집에 일어난 강도가 들이닥친다. 2008년이었다. 세계적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의 여파는 보스턴 근교의 식민지풍 주택에 사는 이들 가족에게도 닥쳐왔다. 주택담보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카드를 돌려막는 생활에 한계가 온 아들 부부는 집을 팔기로 한다.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집값 폭락으로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듣고 절망하던 순간, 집 뒤뜰에 피투성이에 알몸인 어머니가 나타난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버지가 다치셨어”였다. 하지만 한국어가 서툰 경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렸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대체 왜?” 아들은 외친다. 소설 속에서 아들이 반복해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강도 사건 이후 어쩔 수 없이 부모님과 아들, 손자까지 3대가 한집에 머물게 된다. 불안한 동거 속에서 부모에게 벌어진 끔찍한 범죄는 이제 가족 내부에 도사린 비밀을 들추는 장치가 된다. 


스무 살에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면서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어머니는 친구도 일자리도 없이 고립된다. 이민 1세대 출신 대학교수로, 완벽을 요구하는 미국 사회의 차별적 시선과 편견에 시달렸던 아버지는 똑똑하지 못한 아내를 탓한다. 교수들의 사교모임에서 ‘옷의 상표를 떼지 않아 웃음거리가 돼서’ ‘우울한 표정을 지어서’ 등 갖가지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다. 매 맞은 엄마는 아들을 때린다. 그녀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었던 건 아들뿐이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때렸고, 엄마는 아들을 때렸다. 가족은 그렇게 유지되었다. 


1.5세대 재미동포인 작가 정윤은 서구식 라이프스타일과 한국식 가족문화의 갈등을 잘 보여준다. 아버지는 가난한 백인 노동자 계급인 며느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3대 동거가 시작되자 부모님은 말도 안 되는 구시대적 행동지침을 전달한다. 며느리가 들을 리가 없다. 아들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가족이다. 낳아주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원가정일 뿐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다 같이 가족이라고 주장한다. 


그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그를 속박하고 있는 지구 반대편에서는 무조건 부모가 우선이다.  아이는 두 번째,  그리고 아내는 맨 마지막.  매와 진은 그를 그렇게 키웠다.  그는 그런 부모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그렇다고 질리언에게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  p.133  


소설은 부모 세대의 아메리칸 드림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고 단절되는 모습을 그린다.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수가 되지만,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아버지의 후광이라는 뒷말을 듣는다. 이 땅에서 이민자가 성공하면 아들 역시 성공을 이어갈 거라고. 아니, 후세는 몇 배 더 성공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집은 반대였다. 빚을 제외하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가정폭력의 먹이사슬에서 가장 아래에 있었던 아들에게 집은 안식의 장소가 아닌 무서운 지옥이었다. 하지만 아들마저 무작정 연민할 수는 없다. 아들은 자기연민에 빠져 진정한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법, 책임지는 법을 모른 채 성장한다. 유일한 외부인인 며느리는 남편에게 문제는 당신 자신이며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당신의 집착이 이렇게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한다.  


소설 후반부로 가면 폭력적인 아버지, 무력한 어머니라는 경의 눈에 비친 가족의 실상이 진실을 드러낸다. 소설의 처음 매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가 다치셨어”란 말과 경이 이해한 메시지가 달랐던 것처럼, 가족 안에서 일어난 일은 저마다의 시각에서 재구성된 채 서로 다른 진실의 조각을 품고 있었다. 집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며 핏줄이 사랑을 보장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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