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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May 23. 2023

친밀한 범죄자


 


당신의 옆집엔 누가 살고 있나? 알아서 뭐하냐고? 밤늦은 시간에 자주 불이 켜지고 혼자 사는 사람 같은데 쓰레기는 매일 큰 꾸러미로 내놓는다. 이상한 이웃이 있다고 말할 때 보통 주변에서는 신경 끄라고 말한다. 어느 집이나 저마다 사정은 있으니까. 흔히들 이런 말로 옆집의 수상한 기미를 사생활 침해로 덮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때로는 쓸데없는 일에 고개를 들이밀어 의외의 발견을 할 수도 있다.  


직장 성희롱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짓을 하는 남성들 일부가 자신의 행동이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정말로 모른다는 점이다. 혐의가 드러난 뒤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여자들도 매력적이라고 하면 기분 좋잖아요', '상사가 데이트하자는데 어느 여자가 마다합니까?' 남자들은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권력을 끝없이 과시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 p.102  


<친밀한 범죄자>는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스토킹, 성희롱, 데이트 폭력 등 우리가 믿었던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의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사건이 벌어진 뒤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평범한 얼굴로 친절을 베풀던 내 이웃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는 알 길이 없다. 현직 샌디에이고 카운티 검찰청 지방 검사이자 성범죄·스토킹 부서 팀장인 웬디 패트릭은 강력 범죄는 주변인이 가해자인 경우가 매우 많다고 강조한다.  


어떠한 경우가 되었든 위험한 관계에 일단 발을 담그면 자의든 타의든 가해자에게서 벗어나기 힘들다. 웬디 패트릭 검사는 자신이 기소한 수많은 사건들은 이미 가해자가 무고한 피해자를 희생시킨 뒤에야 알려지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 중 일부는 법정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이용하여 배심원을 현혹시켜 감형을 받거나 심지어 무죄 판결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그 사람이 어필하는 매력의 요소에 깔린 의도, 즉 그 사람의 본모습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이들은 피해자를 범죄의 희생양이 되도록 조종한다. 우리는 범죄를 보며 가해자들이 칼을 들이밀거나 폭력을 행사해 피해자를 조종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가해자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때는 이미 피해자가 스스로 가해자의 속임수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굴레에 빠져들고 난 뒤다.  


당하는 사람들은 화려한 것만 추구하거나 순진하게 감언이설에 속는 멍청이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패트릭 검사는 상대의 심리를 파고드는 범죄자은 묘한 자신감이 있다고 말한다. 상대의 불안이나 외로움 같은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줌으로써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바람과 폭력을 일삼는 나쁜 남자를 사귀고 있으면서도 그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는 여자가 있다. 고민을 상담하는 친구를 보며 ‘그냥 헤어지면 되지’라고 속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험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한참 늦은 때일 수도 있다. 이별하고 싶으나 안전하게 이별할 방법을 몰라 계속 끌려 다니는 것이다. 패트릭 검사는 위험한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심리는 ‘희망적 행동 기억’이라는 욕구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연인 또는 배우자와 유대감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 욕구는 상대의 행동을 왜곡해서 기억하고 의도적으로 상대의 나쁜 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한다. 연인이 나쁜 사람이라는 정보를 애써 외면하고 사실을 직시했을 때 느낄 수치심과 분노를 회피하려는 심리다. 관계에 익숙해져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어떠한 경우가 되었든 위험한 관계에 일단 발을 담그면 자의든 타의든 가해자에게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다면 시작하기 전에 위험을 알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네 가지 요소, ‘플래그(FLAG)’를 통해서다. 관심사(Focus), 생활방식(Life Style), 주변인(Association), 목표(Goal)이다.   


남자친구가 즐겨 보는 텔레비전은 무엇인가? 아이가 가입한 SNS 사이트를 알고 있는가? 이웃이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신문이나 잡지를 알고 있는가? 대답을 할 수 없었다면 나와 내 가족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우선 상대가 어디에 관심을 보이는지를 살펴보자.  


생활방식은 상대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시간을 보내는지 등 생활에 관련된 정보를 살펴보면서 상대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과 숨기고 싶어 하는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다. 주변인은 상대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며 관계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는지, 모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범죄 성향을 보이는 사람일수록 재산, 지위와 같은 유형의 목표를 추구한다. 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평범하게 노력해서 정당한 방법으로 쟁취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 행위도 서슴지 않는지도 살펴본다.  


이웃을 잠재적 범죄자로 단정하고 냉랭한 감시 속에 살아야 하는 걸까?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오늘도 뉴스에는 이별한 전 애인을 살해하고 가족을 폭행하며 친구에게 사기를 치는 '이웃의 살인마'가 주를 이룬다. 관심을 끊기에는 불안 요소가 너무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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