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세상을 꼬집다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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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면을 펼치면 온통 최순실 이름 세 글자만 보인다. 이 깜깜하고 답답한 때에 굳이 나까지 최씨 이름을 입에 올릴 필요가 있나 싶어 애써 밝고 따뜻한 이야기책을 소개해왔었다. 하지만 이제 그 어떤 활기찬 희망찬가도 위로가 되지 않는 요즘이다. 움베르토 에코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말해야 할 것을 다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의 근원이 된다.” 그의 책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사진)에 실린 말이다.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 작가가 이탈리아 문학 잡지 ‘일 베리 Il Verri’지에 ‘아주 작은 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칼럼을 엮은 책이다. 세상을 유쾌하게 비꼬는 에코식의 촌철살인 유머를 보고 있노라면 속이 뻥 뚫리는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의 ‘인생론’이 재미있다. “이미 판이 벌어진 뒤에 들어왔다가 남들이 어떻게 될지를 알지 못한 채 판을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는 바로 그 인생처럼 연극을 경험한 셈이다. 혹시 우리도 그런 특권을 누린 자의 풋풋함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어른들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누가 무언가를 공짜로 주겠다고 하거든 경찰을 불러야 한다고.” 앞 뒤 단락을 잘라낸 토막 문장으로도 그가 얼마나 시원한 직설가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축구사랑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축구 경기가 열리는 일요일은 범죄율도 뚝 떨어진다고 한다. 도둑, 강도 할 것 없이 모두 축구를 관람하기 때문에. 그런 이탈리아를 향해 움베르토 에코는 “나는 축구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축구팬을 싫어할 뿐이다”라고 외쳤다. 사실은 축구가 아니라 막무가내인 축구광을 싫어한다는 뜻이다. 남 생각하지 않고 줄곧 자기 얘기만 늘어놓으며 흥분하는 사람들을 그는 축구팬에 비유했다. ‘내가 좋고 다수가 좋아하면 분명히 당신도 좋아할 것이다’고 성급하게 일반화시켜 버리고 경청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꼬집는다.


책 사이사이에서 에코의 유머코드를 마주할 때마다 피식 웃음이 터진다. ‘어떻게 지내십니까’가 대표적이다. 이 질문에 각계의 인물들이 어떻게 대답할지를 상상해 만든 답이다.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를 작곡한 안토니오 비발디는 “계절에 따라 다르지요.” 라고,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은 뉴턴은 “제때 맞아떨어지는 질문을 하시는군요”라고 대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걸작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어떻게 대답할까? “그는 같은 질문에 그저 뜻이 분명치 않은 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라고 책에 적었다. 이렇게 재치있고 박식한 철학자가 또 있을까. 지식계의 티라노사우르스라는 별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렇게 일기인 듯 짧은 메모인 듯 자유로운 형식으로 써 내려간 그의 글은 언뜻 보면 가벼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정수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묵직한 울림을 준다. 유머 작가로 80년대 최불암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개그를 선보여 어이없는 실소를 하게 만든다. 때로는 분석적인 논객이 되어 상대방의 얼을 빼놓기도 한다.


이 책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웃음 코드로 풀어가는 비평 에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삶의 실상과 빠른 속도 변화에 상처받지 않고 중심을 지키기 위한 실용 처세법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라 하면 <장미의 이름>이 더 대표적이고 쉽게 읽힌다. 그런데 그 유명한 소설책을 놔두고 이 자리에서 굳이 비평 에세이를 소개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을 재확인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야말로 ‘터질 게 터진’ 사건이었다. 당장 미국 땅에서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의 문제가 더 크다. 정권과 함께 집권 세력이 바뀌었으니 어떤 정책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그렇다면 한인들에게는 무엇이 더 불리해졌는지를 계산해야 할 시점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글들을 새기면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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