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주의 시작이다. 일주일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7일의 주기로 돌아가듯 인생에도 반듯한 주기가 있다면 어떨까?
픽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업(UP, 2009)을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5분 가량 압축해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 어느새 결혼을 한다. 부부는 여행을 꿈꾸면서 유리병에 차곡차곡 돈을 모아나간다. 하지만 자동차 타이어가 고장 난다든지, 태풍으로 나무가 지붕을 덮친다든지 하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모아둔 돈을 쓰게 되고 부부의 여행은 자꾸만 미뤄진다. 부부가 계획한 여행은 아내가 죽을 때까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이 영화 초반 5분의 영상이 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삶은 계획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끊임없이 망가지고 흐트러진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어른들이 대단한 이유는 단순히 나이와 연륜 때문만이 아니다. 변화무쌍한 풍파를 겪어내면서 무언가에 열정을 쏟아온 그들의 인생이 대단하다.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1860-1961)는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늦은 나이라고 말할 때 그녀는 어떻게 화가가 될 생각을 했을까? 이소영 작가가 쓴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사진)는 그녀의 삶과 그림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단순하다. 퀼팅 모임, 마을 축제 같은 농장의 모습과 사람들의 일상을 그렸다. 너무 사소해서 생각 없이 흘려버리는 일조차 그녀의 손끝에서는 행복으로 표현된다. 그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을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 묘사가 굉장히 자세하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양을 목욕시키고 비누를 만드는 일상이 지겨울 만도 한데 그림 속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온화하다. 이것이 모지스 할머니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모지스 할머니가 그림을 그렸던 1940년대는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미국 국민들의 몸과 마음 모두 피폐해진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따뜻한 그림들은 국민들에게 응원의 노래가 되었고 그 어떤 유명 화가의 예술작품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후 크리스마스실, 우표, 카드에 그녀의 그림이 사용됐고 93살의 나이로 미국 주간지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다. 100번째 생일을 맞이해 뉴욕시에서는 ‘모지스 할머니의 날’을 지정했다고 하니 ‘국민 화가’로 불릴만하다.
10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모지스 할머니가 한 말은 아직까지도 회자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그럼 그냥 하시면 돼요. 삶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에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이자 이소영 작가가 이 책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75세에 선택한 그림이 이후 남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줬다던 모지스 할머니의 말처럼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이 될 테니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엄청난 작품량에 또 한번 놀랐다. 모두 1,600여 점의 그림을 남겼는데 그 중 250점은 생애 마지막 2년동안 그려졌다. 그녀는 가난한 농장의 10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나 다른 집의 가정부로 일했다. 결혼 후에 낳은 10명의 자녀 중 다섯 아이를 하늘로 보내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진정한 작품은 풍요롭고 따스한 순간이 아닌 참혹하고 절박한 순간에 탄생된다고 했던가. 그녀에게 그림은 마음속 아픔을 토해낼 유일한 통로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쉼 없이 성실하게 작품으로 승화시킨 그녀가 놀랍다.
시작이 힘이고 계속하는 것은 더 큰 힘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깨닫고 나이와 환경 불문하고 주저 없이 열정을 쏟는 삶. 행복하게 살다간 모지스 할머니의 삶이 부럽다.
그럼 이제 칼럼을 시작하면서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인생에도 반듯한 주기가 있다면 어떨까? 계획한 대로 인생이 흘러간다면 재미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적당히 어그러져야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고 사는 재미도 발견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