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소설보다 기괴하다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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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소녀를 납치한 남자는 헛간을 개조한 밀실에 그녀를 가두고 성폭행을 일삼았다. 무려 7년동안이다. 그 사이 그녀는 작은 방안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아 키웠다. 납치, 감금, 성폭행, 임신, 출산까지 모든 일은 방안에서 벌어졌다.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일랜드 작가 엠마 도노휴의 소설 <룸, ROOM>(사진)의 내용이다. 엄마 조이와 다섯살 아들 잭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유일한 통로는 천장에 뚫린 창뿐이다. 갇힌 방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있는 잭은 방안의 사물을 친구 삼아 이야기한다. “안녕, 램프” “ 안녕, 식물”. 조이는 7년동안 꾸준히 바깥세상의 구조를 기다려왔다. 전깃불로 신호를 보내기도 했지만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았다. 그러다 어린 아들 잭만이라도 바깥세상에 내보내기로 결심하고 오랫동안 계획해왔던 탈주를 실행한다.



“우리는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죽은척하기, 트럭, 빠져나오기, 뛰어내리기, 달리기, 사람, 쪽지, 경찰, 토치. 아홉 가지였다. 머릿속에 한꺼번에 다 넣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당연히 할 수 있지. 넌 엄마의 영웅이니까. 다섯 살이니까 라고 했다.”

-엠마 도노휴의 <룸>본문 중-



책의 절반은 잭의 다섯 살 생일 이후부터 탈출하기까지 며칠을 담고 있다. 갇혔던 아들이 성공적으로 탈출해 엄마까지 구해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소설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소설은 조이와 잭이 끔찍한 상황에서 얼마나 극적으로 탈출했는지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7년동안 세상에서 단절됐던 조이, 생애 처음 방밖으로 나온 잭이 어떻게 사회에 적응해가는지 보여주는데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조이의 사건은 금세 큰 화제가 됐고 매일 기자들이 찾아왔다. 조이는 달라진 세상에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시선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도 소통이 어렵다. 특히 조이가 부모님과 재회하는 장면이 가슴아프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만난 딸과 손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외면해버리고 만다. 딸이 낳은 아이이긴 하지만 생물학적 아버지는 ‘그 짐승’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다섯 살 소년 잭의 시선에서 묘사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극적인 단어나 장황한 설명 없이도 사회가 범죄 피해자에게 얼마나 가혹한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잭은 세상에 나오자 마자 ‘악마의 씨앗’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안주거리 취급을 당했다. 그럴 때마다 잭을 지켜준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방안에서나 방밖에서나 잭을 보호해줄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이 소설은 2008년 세상에 알려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프리츨이라는 남자가 24년 동안 친딸 엘리자베스를 지하 밀실에 가둬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다. 엘리자베스는 밀실에서 아버지의 자녀를 7명이나 낳았다. 빛도 들지 않는 토굴 같은 방에서 사육되다시피 키워져 건강이 악화된 그들의 첫째 딸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극악무도한 범죄가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엘리자베스와 아이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파파라치들이 병원에 몰래 잠입하기도 했고 언론사에서는 인터뷰 대가로 15억 6천만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2010년 엠마 도노휴 작가는 이 내용을 소설로 가공했다. 그 과정에서 근친상간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와 상반되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다섯 살 소년 잭을 창조하는 것으로 이 끔찍한 사건은 새로운 매력의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룸>은 절망을 이겨내고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간 엄마와 아들의 사랑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책장을 덮을 때에는 ‘선과 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조이를 납치한 그 남자와 잭을 손가락질하는 세상 사람들 중 누가 더 나쁜가. 누구나 선과 악 어딘가에서 양쪽을 조금씩 다 갖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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