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세상이 온통 나와 꼭닮은 사람들로만 채워진다면 어떨까? 생각이나 말, 행동, 생김새까지 나와 너무 다른 사람들 투성이어서 힘들 때가 있다. 서로 같은 상식을 갖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배경을 공유한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이내 그 편안함은 답답함으로 바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못난 구석을 타인이 거울처럼 비춰주니까 부끄러울 것이다. 그러니 세상은 똑같은 사람끼리 지지고 볶으며 사는 것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자극을 주고 받는 게 훨씬 나을지 모르겠다.
임선우 작가의 소설 <유형의 마음으로>를 보면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어느 날, 나와 꼭 닮았지만 나보다 훨씬 정확한 마음을 가진 유령이 나타난다. 내가 일하던 빵집 카운터에 엎드려 자고 있는 나의 유령. 내가 훌쩍이면 유령은 엉엉 울고, 내가 언짢아하면 유령은 버럭 화를 낸다. 유령과 모든 일과를 함께해 가며 나는 유령의 마음과, 그와 똑같이 생긴 나의 마음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유령과 함께하는 일상, 어떻게 흘러갈까?
임선우 작가는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능청스러운 환상으로 표현한다. 이 책의 인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잠시 놀랄 뿐, 대수롭지 않게 수용하고 적응력을 발휘한다. 모두 한결같이 골똘한 얼굴을 하고 있다. 다만, 소설이 시작될 때에는 자신의 막막한 현실에 매몰되어 고민이 가득한 얼굴이었다면, 소설이 끝날 때쯤에는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느라 골똘해진 얼굴이 된다. 이미 현실 속에서 겪어 낸 일들에 비하면 유령 좀 만나는 게 뭐 그리 큰일이겠는가.
인생에 알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정면으로 부딪치거나 재빨리 도망가거나, 대신 가만히 서서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쪽을 택한 인간군상을 한데 모아 놓은 듯 하다. 그게 부딪칠 수 없음, 도망갈 수 없음 때문도 있겠지만 제힘으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고자 하는 신중한 책임감이 더 크다. 바로 내 모습이기도 하고, 주변에서 흔히 보는 우리 가족과 친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익숙하다.
잠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여기까지인 것 같아. 안긴 채로 내가 말했을 때 유령은 그래, 라고 대답해 주었다. - p. 28
이 책은 2019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임선우의 첫 소설집이다. 표제작 <유령의 마음으로>를 비롯한 8편의 단편 소설을 엮었다.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의 ‘나’는 돌풍에 떨어진 중국집 간판에 맞아 즉사한다. 이승에서 허락된 마지막 100시간 동안 나의 소원이 아닌 처음 만난 유령의 꿈을 이뤄 주고자 분투한다. 아이돌이 꿈이었던 그 유령의 노래를 도시 구석구석 울려 퍼지게 하며, 나는 생전 알지 못했던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짐작해 보게 된다.
<빛이 나지 않아요>의 ‘나’는 꿈을 포기하고 얻은 직장에서 해파리로 변해가는 고객을 만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다.
8편의 소설 속 ‘나’들은 상대가 안고 있는 슬픔의 크기를 짐작하고, 자신도 그만큼의 슬픔을 내보일 수 있게 가까워졌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한결같이 ‘중요한 건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 들려온다. 그 다독임이 따스해서 자꾸만 따라 되뇌게 된다.
임선우 작가가 내보이는 적당한 온기의 관계는 현실의 어려움, 잔뜩 엉킨 관계 속에서 휘청거리는 이들에게 정답 같은 장면이 돼 준다. 동화 같은 상상력들 속에서 작가가 전하는 짙고 단단한 위로가 느껴진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나의 마음을 돌아보고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나에게 가장 온전한 이해와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나 자신을 좀 더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책 속 수많은 ‘나’가 슬픔을 통과해 내일로 나아가듯이 때론 울고 때론 주저앉더라도, 흐르는 물처럼 반짝이는 마음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