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좋아한다. 상대방의 마음, 나아가 살아온 삶 전체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뻔한 질문과 안전한 답을 주고받는 회화가 아닌, 선을 넘나들고 갈등이 부글거리는 진짜 대화를 나눌 때 더욱 짜릿하다.
<작가란 무엇인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로 불리는 '파리 리뷰'에 실렸던 작가 인터뷰에서 일부를 추려 수록한 책이다. 물론 단순히 명단을 뽑진 않았다. 작가 선정을 위해 출판사는 인터뷰 기사가 실린 250여명 가운데 국내에 번역, 소개된 작가 79명을 뽑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국내 문예창작학과 대학생 100여명에게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를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등 소설가 36명이 추려졌다.
인터뷰이의 면면이 화려한데, 12명씩 모두 세 권에 나눴다. 신간 소개나 작가 홍보를 넘어서 작가 면면의 삶을 다루고 있어 인터뷰를 하나의 문학 장르로 격상시킨 계기가 된 책이다. 여기에 담긴 작가들의 인터뷰는 무대 밖에서 만난 배우의 술주정 같다. 복잡하고 혼란하지만 36명의 거장들에게서 수백 개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는다.
'파리 리뷰'의 작가 인터뷰는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이상 지속했다. 작가의 성장과 변화를 담기 위해서다. 커트 보네거트 인터뷰는 10년에 걸쳐 진행했고, 4명의 인터뷰어가 만든 4개의 원고를 보네거트가 직접 합쳤다.
책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소설가와 인터뷰어 사이의 질의응답이 인상적이다. 왜 글을 쓰는가, 늘 도입부부터 쓰는가, 섹스 장면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가... 독자들은 작가들의 대답을 통해 그들의 작법과 철학을 만나게 된다. 오랜 시간 관찰하고 내밀하게 분석한 게 아니니 작가들의 삶을 주마간산 수준으로 일별하는 수준인데, 그렇다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아니다. 대가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언제 어떻게 글을 쓰고 자신의 열정을 이어가는지. 또 어떤 이유로 작품에 성공하고 실패하는지. 그동안 궁금했지만 좀처럼 답을 듣기 어려운 질문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하다.
책을 읽으면 작가들이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도, 작업하는 방식도, 문체에 대한 생각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삶에서 반드시 하나의 정답이 있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만든다.
하지만 그 가운데 공통점이 있다.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이다. 캐서린 앤 포터는 일종의 열정, 그러니까 휘몰아치는 열망 외에 그 어떤 것도 없이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같은 질문에 대한 작가들의 답변을 비교해 보는 점도 흥미롭다. 작가들의 전혀 다른 대답, 또는 놀랄 만큼 비슷한 대답을 내놓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토니 모리슨은 매일 새벽 4~5시쯤 일어나 작업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필립 로스와 앨리스 먼로는 1주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하는 워커홀릭이다.
작품 스타일만큼 인터뷰에 임하는 태도도 제각각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별로 흥미롭지 못하다"고 면박을 준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제임스 조이스에 대해 "가르쳐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잭 케루악은 자신의 작품 <길 위에서>처럼 자유로운 발언으로 인터뷰어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빙산의 원칙에 근거하여 글을 쓰려고 애썼습니다. 빙산은 보이는 것의 8분의 7이 물속에 잠겨 있지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안 쓰고 빼버린다 해도, 그것은 빙산의 보이지 않는 잠겨 있는 부분이 되어 빙산을 더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작가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여 안 쓰는 것이라면 이야기에는 구멍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 p. 422 「어니스트 헤밍웨이」 중에서
소설가 김연수는 추천사에서 “삼십대 초반, 우연히 <파리 리뷰_인터뷰>라는 책을 발견하게 됐다. 그제야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어떤 울림이 있었길래 30대 초반 김연수의 등대가 되어줬을까.
책을 읽다보면 묘한 동질감이 생긴다. 한 인간이자 작가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은 점에서 그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 안도하고, 한편으로는 그 정도로 부지런하게 노력해야 노벨문학상 급의 작품이 탄생한다는 점에 좌절한다.
그들의 은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작가란 무엇인가> 시리즈를 탐독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