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스프에 후추를 톡톡 뿌려 먹고, 돈가스 접시에는 오이와 채 썬 양배추, 옥수수, 깍두기가 함께 올라온다. 주문할 때에는 여지없이 '빵으로 드릴까요, 밥으로 드릴까요?' 같은 질문을 받는다. 돈가스와 크림스프, 밥, 깍두기가 무슨 조화인가 싶지만 막상 먹어보면 최고의 궁합이다. 후식으로는 반드시 커피나 오렌지주스를 먹어야 경양식 정식 코스 완성이다. 지금은 돈가스 전문점, 양식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이 더 흔하지만 한때 경양식은 고급과 낭만의 상징이자 청춘들의 성지였다.
28년 경력의 피아노 조율사 조영권 작가에게는 오랜 취미가 있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출장 다니며 피아노를 조율하고 현지의 오래된 경양식집을 찾아 식사를 하는 일이다. 그 기록을 모은 책이 <경양식집에서>이다. 중식과 경양식 마니아인 조영권 작가는 맛집 탐방을 위해서는 어디에도 정보가 없는 시골 읍내의 가게까지 찾아간다. 한식으로 불러도 손색없는 한국식 경양식 노포와 함께 경양식에서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풀어놓은 만화와 에세이가 실려 있다.
혼밥을 할 때 경양식집은 일반적인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후루룩 먹고 일어설 수 있는 국밥 종류나 가급적 최소한의 자리를 차지하여 무리 속에 묻혀 식사할 수 있는 곳을 고르게 된다. 하지만 조영권 조율사는 한 끼의 식사를 대충 때우듯이 먹지 않는다. 정중한 웨이터가 수프와 샐러드와 본식과 디저트와 커피를 천천히 서빙해오는, 적절한 낡음과 기품이 있는 경양식집에서 그는 삶을 음미한다.
조영권 조율사는 여기에 소주 한 병을 주문한다. 삼겹살에 소주가 제격인 것처럼 바삭한 돈가스에 잘 익은 깍두기를 곁들여 소주를 삼키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 인생의 소음을 조율하고 스스로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이 그리 거창하고 어려운 일만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다.
살다보면 남을 접대하는 일에는 공들이면서 매일 반복되는 나의 끼니는 대충 뭉개기 십상이다. 그러나 피아노 조율사는 전국 경양식집들의 개성과 멋을 즐기면서, 실은 자신의 인생과 취향을 최적의 상태로 조율해내고 있었다.
가게 풍경, 맛과 플레이팅까지 묘사한 한 줄 한 줄을 읽어나가며 활자가 그리는 먹방에 빠져든다. 곳곳에 들어간 만화가 상큼한 샐러드처럼 놓여 있고, 십수 년 경양식집을 운영해온 주인장들의 인터뷰가 진한 소스처럼 올려져 있다. 오래된 경양식집에서는 시금치나물이나 삶은 채소가 접시 위에 종종 보이는데 당근과 완두콩, 옥수수를 섞어 한켠에 놓은 모습이 마치 신호등 같다. 경양식집 깍두기는 왜 유독 작고 달게 만들까? 식궁합을 고려한 것일 텐데 그 이유 또한 책을 읽다보면 납득이 된다.
직업에 대한 에세이를 읽으면 느껴지는 맛이 있다. 이 책에는 직업 에세이의 맛과 음식 에세이의 맛이 붙어있다. 돈가스집에서 김치볶음밥을 팔고, 돈가스집에서 김치찌개를 파는 맛이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이게 된단 말이야?’ 하고 의심부터 드는데 먹어보면 ‘맛있어!’ 하고 감탄하는 느낌이다. 대략의 지도와 가게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이 깨알같이 적힌 낡은 비밀수첩을 엿보고 있노라면 나도 언젠가 반드시 한국 경양식집 탐방에 나서리라 다짐하게 된다.
예스러울수록 좋은 게 있다. 그래서 ‘이것만은 부디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입을수록 부드러워지고 몸에 착 붙는 가죽옷이 그렇고, 들을수록 귀에 감기는 음악이 그렇다. 경양식집에서 파는 다소 오합지졸로 보이는 돈가스 정식도 그렇다.
같은 자리에서 오래 영업한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 청춘의 맛을 다시 일깨우기 위해 수십 년 후에 다시 찾는다는 점이다. 주택담보대출 이율이 올랐고, 회사 진급에서 밀려났고, 탈모가 오기 시작했다는 등의 요즘 고민은 식탁에 오를 자리가 없다. 과거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성질 고약한 학주를 씹어대던 추억을 곱씹기에도 모자라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마들렌 빵을 먹고 잊고 있던 과거 기억을 떠올린다. 옛 시절을 떠올리고 싶은 이에게 경양식을 추천하는 이유다.
꾸준히 30년 동안 영업하고 있는 예전이 있어 다행이다. 테이블마다 책이 한권씩 놓여 있었고 붉은색 양초 때문에 옅은 화장을 한 아내가 예뻐 보였던 기분이 떠오른다. 세월이 많이 흘렀네. 이젠 반백 년 가까이 살아온 우리가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의리로 살고 있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우리 부모님도 이런 농담을 했던 거 같다. -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