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꾸준히 질문을 들으며 성장한다. 생애 첫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였고, 대학 입시를 앞둔 19살에는 "갈만한 대학은 정했고?", 대학 졸업반인 24살에는 "취직 준비는 하고 있고?"라며 시기에 맞아 떨어지는 오지랖 질문들을 받아낸다. 대학을 졸업했더니 "취직 준비는 하고 있느냐",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었더니 "연봉은 얼마니" 묻는다. 30대가 되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주변에서 결혼과 출산 시기를 알아서 정해준다. 사회가 정한 생애 주기의 틀을 벗어나면 곧바로 이단아 취급을 하면서.
남들처럼 살지 않는다해서 그 삶이 비정상인가.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는 백수는 아니지만 백수를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는 작가 이크종의 일상을 위트있게 그려낸 책이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주위의 예상을 깨고 모 건설회사에 취업했으나 역시나 예상대로 98일 만에 사직서를 내고 백수의 삶으로 들어섰다. 평소의 걸음걸이처럼 느리게 터벅터벅 걷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선택한 길이었다. 그 후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카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그가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은 “이제 뭐 할 거야?”이다. 이제 막 중요한 결단을 내린 사람에게 곧바로 묻는 질문치고는 가혹하게 들린다. 이크종 작가는 “잘은 모르겠지만 회사원 시절보다는 즐겁게 살아주마!”라고 응수한다.
그의 일상은 그다지 특별한 게 없다. 느긋하게 정오쯤 일어나 홍대 앞 단골 카페를 작업실 삼아 일을 하고, 아니면 집에 틀어박힌 채 텅 빈 밥통을 바라보며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있거나 이제는 하루라도 안 보면 서운하도록 친근해진 우체국 택배 아저씨를 기다린다. 저녁이면 으레 술 약속이 있다. 가끔 여행을 가고 야구도 보러 가고 여전히 취업과 결혼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않는 부모님도 설득하기도 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건져 올린 현재의 즐거움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경쟁사회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삶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호흡으로 느리게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직장인이라면 조금은 부러워할, 비슷한 처지의 백수나 프리랜서라면 매우 공감할 이크종의 일상은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매력적이다. 그의 유머는 자조적이며 그림 역시 소박하지만 묘하게 짠한 구석이 있다.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책을 덮고 나면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부스스한 머리에 흰 팬티 하나만 걸친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보니 다른 것은 다 잊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이 가는 이유는 자신을 가감 없이 사랑하는 인간적 내음이 짙기 때문이다.
이크종 작가의 크고 작은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현실에서 갖고 있던 걱정과 불안을 잊게 된다. 단순하고 쉽게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고 싶어진다. 작가는 백수지향인생을 꿈꾸지만 밥벌이는 해야겠기에 닥쳐오는 마감 독촉에 괴롭기도 하다. 허둥지둥 사는 우리네와는 달리 자신만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활용 개척하여 정신적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즐기는 삶처럼 보인다.
우리의 삶은 정해진 각본대로 흘러간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단계별 퀘스트를 달성하지 못하면 왠지 나만 낙오자가 된 것 같은 패배감이 든다. 취업을 준비할 때는 그렇게 절실하게 회사원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정작 직장인이 되면 백수가 되고 싶어지는 모순적인 삶. 그 틀에 당당히 반기를 들고 스스로 행복을 좇아가는 이크종 작가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 때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조금 더 즐겁게, 조금 더 행복하게 살리라는 작가의 결심을 응원하고 싶다.
스티븐 M. 샤피로가 쓴 <31% 인간형>을 보면 사회 구성원 중 31%는 목표가 없는 삶을 산다고 한다. 나머지 69%의 사람들 역시 목표달성의 성취감을 맛보며 행복하게 살지는 않는다. 대부분 그 과정 중에 치이고, 경쟁에 상처받고, 부대끼면서 불행해한다. 목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31%의 인생비법 중 하나가 “오늘의 내 모습에 감사하라”였다. 이크종 작가의 메시지와 비슷하다.
아무리 자본주의 경쟁사회라고는 하나 남과 비교하느라 일상 속 행복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 돌이켜보자. 지금 이 순간 나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나만의 잣대로 삶을 터벅터벅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