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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May 28. 2024

인생은 순간이다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최강야구’를 본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보기 시작했다가 어느새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냥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야구만의 매력이 있다. 야구는 시간 제한이 없다. 9회 말 2아웃, 10점 차이가 나도 역전이 가능하다. 타자들이 죽지 않고 공격을 이어가면, 얼마든지 점수를 낼 수 있으니까.  


야구는 곧잘 인생에 비유된다. 지루하게 진행되다가 갑자기 열정적인 순간이 오고, 패배할 것 같은 순간에 극적으로 승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인생에 휘몰아치는 기회와 좌절, 시련, 승리와 비슷하다. 아무리 약한 팀도 열 번 싸우면 세 번 정도는 승리한다. 선수들의 연봉이 높은 팀이라고 꼭 강팀은 아니다. 똑같은 팀인데 감독만 바뀌어도 순위가 확 달라지곤 한다. 리더가 어느 지점을 보고,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느냐에 따라 같은 선수가 뛰어도 경기력이 달라지는 것이다.  


'최강야구'에서 확인한 83세 김성근 감독의 열정과 야구 철학을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인생은 순간이다>에서 김 감독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지라도 도전하는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간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말한다. 단 한 번이 아니라 매 순간을 그토록 절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의 제목처럼 인생은 순간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인생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되며 아프다거나 한계라거나 하는 의식 없이 쏟아 부어야 한다는 김성근의 인생철학은 소위 말하는 꼰대 잔소리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최강야구’에서 하는 말마다 화제가 되는 이유는 여전히 자신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고, 그 철학이 옮음을 증명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우직한 거북이라고 소개한 것처럼 말이다.  


김 감독의 에세이를 읽고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 김성근 감독은 흔히 ‘야구의 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그는 신이라는 별명에 손을 내젓는다. 야구에는 신 같은 것이 없다고, 자신은 아직 야구를 모른다고. 일본에서 살다 스무 살에 혼자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쪽발이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꽃피우기도 전에 부상으로 이른 나이에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던 비운의 투수, 꼴찌만 거듭하던 약팀의 감독이 그의 이력이다.  


이른 나이에 지도자 인생을 시작했지만 우승을 거머쥐기까지는 무려 25년을 벼려내야 했다. 그런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며 김성근 감독은 ‘거북이 인간’이었다고 회고한다. 토끼처럼 꾀부릴 줄 모르는 우직한 거북이 말이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멈춰 서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숙고하며 오직 내 안에서 답을 찾는 우직한 거북이였다. 


남들보다 소질도 부족했고 속도는 느렸지만 그런 만큼 부지런히 움직였다. 선수 시절 스타플레이어라고 해서 지도자로 꼭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재능으로 성공한 천재들은 노력해도 좀처럼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하는 범재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현역시절 별로 빛나지 않았던 선수들이 지도자로 훨씬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기도 한다.  


쌍방울 감독 시절, 그는 전통적인 야구 방식을 벗어나 혁신적인 전략을 택했다. “살아남는 것이 상식이다.”라는 그의 말은 ‘상식을 쓰면 상식적인 결과밖에 얻을 수 없다’라는 이야기다. 기존의 야구 방식과 다르게, 한 경기에 투수 아홉 명을 사용하고, 도저히 점수를 낼 수 없다면 번트를 대는 등의 전략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접근은 하위 팀이었던 쌍방울을 이끌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야구를 즐겨 보다 보니 강팀의 공통적인 특징이 보인다. 바로 짜임새이다.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는 기본, 백업요원들도 탄탄하다. 긴 레이스 동안 분명 부상당하는 선수가 생기고, 그 자리를 실수 없이 메꾸는 백업요원들이 강한 팀이다. 투수 구성 역시 에이스급 선발투수부터, 경기 마지막에 등판해 흔들림 없이 타자를 잡아낼 강력한 마무리 투수까지 골고루 갖춘 팀이 강팀이다. 김 감독은 스스로가 느린 거북이였기에 선수들이 성장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줄 수 있었다. 그렇게 ‘통산 1000승’ 고지를 한국에서 두 번째로 넘은 감독이 되었다. 


종종 쓸데없는 고민에 잠기곤 한다. 생각이 많다 보니 의욕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들은 스멀스멀 피어난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김성근 감독의 <인생은 순간이다>를 권하고 싶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지, 돈 없는 가정이 행복할 수 있나? 회사가 돈을 벌어야 직원들에게 보너스가 들어오고 연봉이 올라간다. 지는 사람에게는 돈이 오지 않는다. 그러니 리더는 결과를 내기 위해 기꺼이 목숨이라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니, 존경이니 하는 것들을 생각할 새가 없다. - p.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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