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몸의 대화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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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진을 한 장 봤다. 미국의 사진작가 매리 앨런 마크가 찍은 테레사 수녀의 손이었다. 나무등걸처럼 주름지고 거친 손등은 평생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산 마더 테레사의 삶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의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녀의 인생이 상상된다.


이렇게 사람의 몸은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인 가장 솔직한 곳이다. 얼굴 표정과 눈빛으로는 순간의 감정을 읽히기 쉽고, 몸으로는 살아온 세월을 들키기 쉽다. 몸이 겪는 다양한 경험과 몸이 말하는 언어에 주목한 책이 있다. 소설가 김중혁이 쓴 에세이 <바디무빙>(사진)이다. 책에는 영화와 스포츠, 드라마, 책 등에서 작가가 느낀 생각이 주제별로 담겨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스톤 박사 역을 맡은 산드라 블록의 종아리를 보고 김중혁 작가는 그녀의 삶을 유추해냈다. 사고로 딸을 잃고 부유하듯 살아가던 스톤 박사는 “일어나서 일하러 가고, 그냥 운전했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몸은 그게 다가 아님을 보여준다. 근무가 없는 어떤 날은 딸을 생각하며 하루 종일 걸었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조금이라도 지우고 싶어서 자책을 그만두고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어서 몇 시간 동안 달렸을지도 모른다. 러닝머신에서 달리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미끄러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스톤 박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녀의 종아리 근육 한 장면만으로 김중혁 작가는 상실과 견딤을 이야기하고 있다.


드라마 ‘유나의 거리’를 해석한 내용이 흥미롭다. 콜라텍은 90년대에 청소년들이 콜라를 마시면서 춤추던 곳이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놀이터가 콜라텍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어르신들은 음악도 듣고, 춤도 춤고, 부킹도 한다. ‘다 늙은 사람들의 불륜을 조장한다’며 싸늘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드라마를 보면 콜라텍을 출입하는 어르신들이 다르게 보인다. 집에 가서도 계속 스텝을 연구하는 할아버지, 멋지게 차려 입고 가방을 카운터에 맡긴 다음 신나게 놀아보려는 ‘여사님들’, 서로 맞잡은 손을 확인하며 지르박을 추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춤이란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신체 부위 중 퇴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는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귀’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꼰대형 청력상실증 환자’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청력이 약해지면서 말이 점점 많아진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렇게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감정을 개인적인 경험과 상식이 그대로 책에 녹아있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한없이 가볍게 접근하고 있어 몸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을 좁혀준다.


어떤 식으로든 삶은 몸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시간이 통과하며 그 흔적을 남기고, 인생의 궤적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바로 몸이다. 신생아로 연약하게 시작해 청년기에 단단해졌다가 다시 쇠락해가는 과정이 사람의 몸 하나에서 모두 이루어진다. 김중혁 작가는 우리의 몸에 대해 ‘소멸의 징후를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전광판’이라고 표현했다.


몸과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순간, 늙어감을 실감하고 절망할 수도 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으며, 몸을 원하는 대로 다스릴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늘 조심스럽게 다뤄도 예기치 않은 곳에서 고장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생사가 모두 그렇겠지만, 몸만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없다.


의학박사가 아닌 소설가가 좌뇌와 우뇌를 논한다고? 잡다한 의학상식은 접어두고 몸이 하는 말이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은 시종일관 온유하다.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다스릴 수도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나의 내면과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몸을 곰곰이 생각해보도록 이끈다. 수십 년간 함께해온 나의 눈, 코, 입, 귀에게 나는 제대로 된 관심을 준 적이 없다. 노트북을 또각거리고 있는 이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10개의 손톱에게 오늘 안부를 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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