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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Aug 19. 2024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병원의 중환자실. 매일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며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들고 버거워 이제 그만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으며 죽음은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수많은 이별을 목도한 중환자실 간호사의 이야기다. 


전지은 간호사는 미국 콜로라도 펜로즈 병원 중환자실에서 20년, 환자를 상담하는 케이스 매니저로 11년간 일하다 4년 전 은퇴했다. 그동안 만난 중환자만 5만여 명. 자주 접한다고 감정이 무뎌지지는 않는다. 환자들을 보낼 때마다 늘 같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그때마다 짧게 기록한 일기를 엮어 에세이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를 만들었다.  


제목인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60년 넘게 함께 살았던 아내의 치료를 무리하게 이어가다 끝내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한 남편이 혼자 읊조린 말이다. 20년도 훌쩍 지난 사연인데 전지은 간호사는 아직도 그 말이 귓가에 선명하다. 누군가가 떠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애달픈 사건들 안에 반짝이는 마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한 순간이다. 


전지은 작가는 28살에 미국에 건너왔다. 남편의 유학길에 아들과 함께 따라나섰다. 공부를 마치면 곧 한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지만 언제나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미국 간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종합병원 중환자실 근무를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에 자리 잡게 됐다. 소속 병동 없이 필요한 곳마다 근무를 서는 플롯 풀(float pool) 생활로 시작했다.  


모두가 꺼리는 중환자실 근무를 자처한 이유가 뭘까. 간호사는 늘 환자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펴야 하는데 경력 짧은 간호사에게 이 일은 너무 큰 부담이었다. 불안해서 5분마다 병실을 드나드는 일종의 강박이 생겼다. 하지만 중환자실은 모니터에 환자 상태가 늘 표시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런 이유로 중환자실을 지킨 세월이 34년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장기를 기증해 10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떠난 공군사관생도 청년의 사연이었다. 심한 우울증을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유서에 “이렇게 해주신다면 난 당신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남겼다. 고인의 유지에 따라 장기를 나눠 세상에 사랑을 전했다. 전지은 작가 역시 가장 아픈 기억이라고 꼽았다.  


인생의 마지막 배웅 길에 그들이 남기는 말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이는 사랑을, 어떤 이는 감사를, 어떤 이는 미안함을 남긴다. 그리고 그 곳에 삶과 사랑이 있다.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외롭고 쓸쓸하지만 동시에 절대적 평화이기도 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한다.  


숱한 죽음을 겪었지만, 전지은 작가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정작 은퇴 후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작가를 홀로 키운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면서다. 외동딸의 미국행을 끝까지 반대했고, 공부 마치면 꼭 돌아오겠다는 딸 부부에게 20년간 새해마다 “올해도 안 오니?”라고 묻던 어머니다. 은퇴 후 한국에 들어와 어머니 곁을 지키면서 매일 울었다. 자주 뵙지 못해서 죄송했고, 직접 모시지 못하는 현실에 괴로웠기 때문이다. 지금 삶의 목표는 엄마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훨씬 적어진 나이, 전지은 작가는 퇴직 후 지난 30여 년을 돌아보며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죽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그의 시선으로 전해지는 책 속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셈이다.  


작가는 오래전 죽음을 준비해뒀다. 20여 년 전 남편과 함께 생전유서를 작성했다. 의식을 잃고 일주일이 지나도 회복 기미가 없다면 인공호흡기를 떼어달라는 내용이다. 죽은 후에는  화장해서 태평양에 보내달라고 적었다. 태평양이 동해와 가장 가까우니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모든 장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다 주겠다는 뜻도 담았다. 


책을 읽으며 남은 삶을 더 단단하게 지키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살아있는 동안에 옆에 있는 가족과 이웃을 좀 더 사랑하라고 감사와 용서를 미루지 말라고. 이 책은 우리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나직이 들려준다.  


서서히 온기를 잃어가는 모습에서 평화를 배운다면 너무 모진 말일까? 평화 가운데서 무릎 꿇고 있는 가족들의 숙연함. 그것도 사랑이리라.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죽음 앞의 삶’은 나의 일상이었지만, 그 어느 죽음도 쉽지가 않다. 중환자실의 경험이 길어질수록 만났던 죽음의 모양들도 달랐고 무게도 달랐다. 이쯤엔 죽음에 무뎌질 만도 하건만, 돌아서며 나도 울컥 눈물을 삼켰다. - 3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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