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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Aug 26. 2024

나의 춤바람 연대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정성껏 오래 바라본 적이 있는가. 요가든 필라테스든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어색한 일이 바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수업 내내 바라보는 것이다. 평소에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점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니 나의 얼굴과 움직이는 몸을 마주한다는 것은 흡사 낯선 사람과 한 시간 이상 눈 맞추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자기객관화가 지나치게 뛰어나서인지 거울을 보면 유독 못난 부분만 눈에 띈다. 삐뚜름한 어깨가 거슬리고 딱딱한 입매와 화가 난 듯한 표정도 싫다. 무용수들의 바르고 곧은 자세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거울마사지라는 말이 있다. 연예인들이 방송에 출연하면서 점점 예뻐질 때 카메라 마사지 받아서 그렇다는 말을 하듯 거울을 자주 보면 점점 자세와 표정이 수정된다. 


박지영 작가의 에세이 <나의 춤바람 연대기>는 춤을 사랑하는 30대 여자의 솔직하고 뜨거운 취미생활이야기다. 시작은 뱃살이었다. 뱃살이 쏙 빠진다는 전단지 문구에 혹해 ‘오리엔탈 댄스’ 학원에 발을 들인 작가는 까맣게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꿈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생애 첫 기억은 강렬하고 집요하다. 매일 춤을 추며 뛰어다니던 꼬마, 발레리나가 되겠다고 혼자 연습하며 행복해하던 유년 시절.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작가가 진짜 원하는 삶은 춤추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춤을 제대로 배워보지 못했다. 유년 시절의 스쳐 지나갔던 꿈이 나이 서른이 되도록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줄 몰랐다. 꿈을 꺼내 보지도 못하고 포기한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그래서 작가는 용기를 내 춤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어느덧 춤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 10년. 취미로 배우지만 춤에는 진심이다. 더 잘 추기 위해 해부학을 공부하고, 강사 자격증을 따고, 다양한 강연을 들으러 다니고, 공연 무대에 섰다. 어느 순간 취미로 시작한 춤이 본업을 넘어서는 지경에 이르자 지치고 말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할 때’와 ‘쉴 때’를 구분하며 삶의 균형을 깨지 말아야 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교훈 덕에 이제는 무리하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춤을 즐기고 있다. 오리엔탈 댄스를 시작으로 스윙댄스, K-pop, 발레, 현대무용, 최근에는 한국무용을 배우며 여전히 춤 시식 중이다. 


박지영 작가에게 춤이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것’이고,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고, ‘나다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고, ‘현재의 나의 삶이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임을 가르쳐주는 인생의 스승이다.  


춤을 추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을 세심하게 관찰하게 됐다. 몸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유추하게 한다. 평소 못된 습관들과 삐딱한 태도가 쌓이면 몸에 그대로 박제돼 그 사람의 체형이 된다. 편협한 생각이나 성격마저 몸에 굳어진다. 그렇기에 몸선이 반듯하고 걸음이 당당한 사람은 생활도 건강할 가능성이 높다.  


작가는 춤을 추면서 이 진리를 깨달았다. 더불어 호흡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작은 움직임이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지 춤을 추겠다고 다짐한다. 


살면서 ‘좋아하는 것’과 ‘나다운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이제는 기꺼이 나다운 것을 선택하겠다. 좋아하는 걸 선택하는 것이 늘 좋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다운 걸 선택했을 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 p.78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좀 부끄러워졌다. 진짜 사랑하면 퇴근하고도 달려가고, 주말을 온전히 반납하고, 밤새도록 연습하고, 시간과 열정, 생각과 돈을 아끼지 않게 된다. 나는 과연 그런 열정이 있는가 돌이켜본다. 좋아한다고 말은 하면서 아끼는 것은 하나도 내놓지 않는 깍쟁이 같은 가짜 애정을 가진 사람은 아닐까. 


몸치인 나조차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팔랑거리고 엉덩이가 들썩였다. 누구든 열정에 기름을 붓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유년시절 우리가 꿈꾸던 것, 푸석한 어른이 됐을 때 구원자처럼 찾고 싶었던 그 무엇이 삶의 오아시스처럼 반짝 떠오를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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