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시즌2' 발표 날짜가 드디어 공개됐다. 이제 약 백일 뒤면 넷플릭스에서 새로운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볼 수 있다. 드라마를 하도 재미있게 본 터라 마지막회가 끝나자마자 다음 시리즈가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나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팬들이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고 있다. 딱지치기, 달고나 게임처럼 그 시절 한국에서 유년을 보낸 사람만 알 수 있는 요소가 외국에서도 통한 비결은 뭘까?
게임 자체는 한국적이지만 주제는 가계부채와 가족애 등으로 세계 보편적이다. 영상 곳곳에는 서양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시각적 요소가 등장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도 있지만 비단 한국 특유의 요소가 강한 것만이 성공 요인은 아닌듯하다. 여기에 대해 문화 전문 저널리스트인 문소영 기자는 책 <혼종의 나라>에서 혼종이야말로 혁신적 탄생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오징어 게임'은 세계보편적인 요소와 지역적인 요소, 진부한 요소와 독창적인 요소를 정교하게 잘 배합해서 전 세계 대중에게 어필한 콘텐츠다. 이러한 배합의 기술은 지금까지 그 기술을 주도해온 미국 영화 산업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오징어 게임'은 가장 한국적이라기보다 어떤 면으로 상당히 할리우드적인데, 할리우드가 주로 해오던 일을 더 잘 해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p. 125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것은 가장 한국적인 놀이를 소개해서가 아니다. 이렇게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이 섞인, 그리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어린이 놀이를 목숨 건 데스 게임으로 만들어서 시청자가 더 강하게 몰입하고 잔혹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짬뽕문화가 낳은 결과이다.
문소영 기자는 최근 한국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꿰뚫는 특징을 혼종(hybrid), 이 단어 하나로 정의한다. 끔찍한 혼종이란 말이 있듯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혼종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그러나 페르시아나 로마와 같은 제국의 문화는 혼종이었다. 제국의 영향을 받은 문화식민지는 혼종성을 키움으로써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문화 권력을 전복할 수 있다.
여기서 혼종이라는 단어는 부정적 의미보다는 긍정에 가깝다. 한국처럼 자국과 외국, 전통과 현대 등 여러 가지가 정신없이 뒤섞인 혼종적 환경에서는 무엇이든 역동적이고 적응력이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과 같은 인기 콘텐츠들도 이런 환경의 산물이라는 게 기자의 분석이다.
과거 그도 한국의 미와 정서가 소박함과 한이라고 말하는 방송을 보고 짜증을 내며, 어설프게 그리스 신전을 흉내 낸 기둥을 장식한 예식장에서 현란한 색깔의 뻣뻣한 한복을 입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짬뽕문화가 위트 넘치는 동시대 문화, 흥과 분노, 열기로 가득한 역동성임을 알게 되었다.
영화 '기생충' 속 대사를 보자. “부잔데 착해가 아니라 부자니까 착한 거지”라는 대사를 마주했을 때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면, 정곡을 찔렸기 때문일 것이다. 기생충은 빈부격차와 황금만능주의를 ‘언덕 위 저택-반지하-지하 벙커’라는 공간적 상징과 블랙 유머로 맛깔나게 풀어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자본주의를 택하고 돈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은 현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주제일 수밖에 없다.
책은 혼종이라는 현상 인식에서 출발해 최근 몇 년 새 한국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요소들을 분석해 나간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대표되는 ‘회귀·빙의·환생물’이 대중문화에서 인기를 얻는 이유, BTS를 비롯한 K-POP 아이돌 그룹이 해외 스타가 된 배경 등 문화 현상을 읽어내는 눈이 제법 매섭다.
특히 수십 년 전만 해도 ‘백자대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달항아리가 한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작품이 된 이유가 흥미롭다. 문소영 기자는 정의와 범위가 매우 모호한 전통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던지고, 달항아리처럼 많은 이가 오랜 전통이라고 여기는 것 또한 현대의 산물임을 밝힌다.
홀린 듯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무엇을 시사 하는지 알게 된다. 요지경 속 대한민국의 면면을 살피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역사상 모든 제국의 문화는 혼종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