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끌로이 Nov 22. 2024

어떤 나무들은


 


가을이 짙게 물든 요즘이다. 스산한 날에는 최승자를 읽는다. 차갑고 쓸쓸한 아림에 최승자라는 연고를 바르는 기분이다. 그만큼 최승자 시인의 글은 편안한 친구처럼 정답게 다가온다.  


1994년 8월, 시인은 생애 첫 외국여행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그가 가본 곳이라곤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돌아다니길 싫어했고 돌아다닐 일도 없었던 그가 드디어 처음으로 외국에 간다.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주최하는 '인터내셔널 라이팅 프로그램(IWP)'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어떤 나무들은>은 1994년 8월 26일 일요일부터 1995년 1월 16일 월요일까지의 여정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낸 일기 형식의 산문이다. 앞서 펴낸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가 어머니를 여읜 뒤 죽음에 대한 비장한 감상을 담은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특유의 솔직함과 유머로 무장한 시인의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최승자는 그곳에서 약 30개국에서 참가한 약 30명의 외국 작가들과 떠들고, 파티하고, 춤추고, 낭독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오와에서의 경험은 익숙하게 정형화된 일상을 뒤흔든 변곡점이 된다. 파티에도 청바지를 입고 갔던 시인이 원피스를 입어 룸메이트를 놀라게 하고, 한국 식품가게에서 쌀과 김치, 미역 등을 사며 행복해하는 시인의 모습이 귀엽다. 파티에서 다른 작가들은 다 나가떨어지는데 지치지 않고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은 지금까지 그의 시를 읽으며 혼자 머릿속으로 그려온 최승자의 이미지가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다. 


게다가 책은 시종일관 웃기다. 작정하고 웃기는 개그 프로그램보다 더 웃기다. 한국인들이 대개 그렇듯, 눈 마주치고 방긋 웃는 미국식 인사가 어색한 시인은 때때로 인사할 타이밍을 놓치고 상대방이 저만치 가버린 뒤에야 인사를 하지 않았음을 알아챘다고 고백한다. 한국인에게는 무뚝뚝하게 인사하거나 그냥 지나치는 편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아무튼 이 미소 탈바가지가 내게는 무지무지 무겁게 느껴진다.”라고.  


영어와 문학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특히 인상적이다. 평생 2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을 만큼 탁월한 번역자로도 정평이 난 그지만, 번역본으로 원작의 뜻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늘 걱정한다. 자신의 시 ‘내게 새를 가르쳐주시겠어요?’를 번역하며 난항에 빠진다. 구절 그대로 “Would you teach me a bird?”라고 번역하려 했지만 동료 작가는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지만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또 ‘눈빛’을 ‘eye light’으로 번역했다가 ‘gaze(시선)’로 바꿀 수밖에 없어 아쉬워하다가 ‘물빛’을 ‘water light’로 번역한 후에야 비로소 만족감을 느꼈다. 


영어 단어 안에 담기는 뉘앙스의 비율까지 걱정하며 지냈던 시기이기 때문일까. <어떤 나무들은>은 쉽고 단순한 단어로 편안하게 쓰인 문장들로 가득하다. 멋을 부리지 않았다기보다는 일부러 어설프게 썼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나는 내 시에 나오는 단어 하나가 가진 여러 가지 뉘앙스의 비율까지 느낄 수가 있는데, '아 슬픔이여'라고 썼다면 그 슬픔이라는 단어는 그 컨텍스트 안에서 풍자 30프로, 경멸감 30프로, 진짜 슬픔 30프로 등등으로 그 뉘앙스의 비율이 나누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 비율까지 딱 맞는 영어 단어를 고르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완전한 번역이란 불가능하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 p.17 


1990년대 후반, 정신분열증을 스스로 고백하며 피폐해진 심신을 대중 앞에 드러냈던 최승자 시인의 혼돈의 시작점이 바로 미국 아이오와에서의 생활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산문집은 95년에 초판이 나온 이후 26년 만에 새 옷을 입고 개정판이 나왔다. 그래서인지 시인에게 어떤 계기가 된 듯한 아이오와의 일기는 뒤늦게 도착한 편지처럼 안타까움을 주기도 한다. 


그는 최근 기거하던 경북 포항의 요양병원을 퇴원해 자택에서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산문집 두 권은 모두 말미가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이라고 마무리 짓는다. 그가 적은 끝에서 공교롭게도 시작의 기미가 보인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최승자를 기억하고 있고, 특유의 독하고 강한 언어를 사랑한다. 과거 같은 그의 시어를 기대하는 마음은 없다. 또 밑줄 칠 문장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냥 최승자라는 이름만으로, 그 시인이 좀 더 편안하기를 바라는 바람으로 새 책을 기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전이 답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