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되게 반(反)환경적인 생활보다, 비일관된 친(親)환경 생활이 낫다.” 야생학자 김산하 작가가 한 말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끊임없이 비움과 채움을 반복하는 한 인간은 지구에 유해할 수밖에 없다. 다만 최대한 덜 유해하게 노력할 수는 있다. 환경 보호가 중요하다고는 하는데 막상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는 막막하다. 그렇다면 적게 쓰는 짠테크 전략부터 실천해보자.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는 최다혜, 이준수 부부의 소비 패턴 변화를 기록한 책이다. 부부는 임대 아파트 월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8년 뒤 자가를 마련하고 2년 후에는 대출을 정리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어떻게 가계를 꾸려나갔냐는 질문에 부부의 대답은 하나다. "친환경 생활을 했습니다.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를 쓰면서 신축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집안 가계부와 지구 환경 사이에 무슨 연결 고리가 있을까.
신혼때 집 근처에 시멘트 공장과 화력 발전소가 집었다. 거실 베란다에는 검은 먼지가 끼었고, 물에서는 부연 석회질이 섞여 있었다. 아토피를 앓았던 큰 아이에게는 가혹한 환경이었다. 이웃 도시에서는 석탄 화력발전소가 건설되고 있었다. 중국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자 아파트 분리수거장은 폐기물로 가득 차 악취가 났다. 고탄소 과소비 생활이 우리 문명을 파괴하고 지구를 망치고 있었다.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저탄소 저소비 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부부는 희생하고 손해 보는 느낌의 '친환경' 대신 '이득'에 초점을 맞췄다. 결국 지구와 인류의 위기는 소비에서 비롯됐는데,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 과잉 폐기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개인의 방법은 간단하다. 욕망을 줄여 돈을 덜 쓰는 것이다. 절제와 절약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가계부이다. 하루에 쓸 식비와 생활비를 정해두면 괴물 같은 지름신과 충동을 다스릴 수 있었다.
욕심을 버리면 누구나 부자고, 생활 규모를 줄이면 적은 소득으로도 살 수 있다. 이건 의도하든 아니든 일상을 단단하게 지킬 수 있는 기술에 가깝다. 나는 최근 부모님 세대를 재발견하면서 ‘제로 웨이스트’ 같은 언어로 정립되어 있지는 않지만, 몸에 내재되어 있는 절약의 기술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p.175
부부가 말하는 환경실천의 기본은 절약이다. 이 중심에는 가계부가 있다. 부부의 의류 예산은 6개월에 10만 원입니다. 10만 원보다 더 많이 옷이나 신발을 사려면, 개인 용돈을 주고 사야 한다. 그리고 2024년 기준 하루 식비 2만 원, 하루 생활비 2만 원으로 생활한다. 여기에는 두 아이의 옷, 의료, 기름값, 여가비 등이 포함된다.
반찬통을 들고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김밥을 담아오는 ‘용기내!’를 실천하고, 마트에 갈 때는 천 가방을 챙겨서 비닐봉투 대신 사용한다. 또 락토오보까지는 못해도 일단 식탁에서 붉은 고기는 뺐다. 이유는 간단했다. 붉은 고기의 탄소 배출량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딱 1년만 해보기로 약속하고 닭고기랑 생선만 먹으면서 다짐을 지켜냈다. 이렇게 부부는 극단적인 절제 대신 견딜 수 있을 정도의 행동으로 일상을 살았다.
우리는 상품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뚝딱 구할 수 있다. 쉽고 빠른 구매는 편리한 장점이 있지만 독 또한 만만치 않다. 우리 뇌의 도파민 시스템은 적응이 빨라서 충동 소비, 폭음, 도박 같은 자극을 줄이면 약한 자극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돈 한 푼 쓰지 않고 산책, 명상으로도 충분히 기쁠 수 있다. 절제를 통해 지갑을 지키고 환경에도 기여할 수 있다니 얼마나 효율적인가.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는 절제를 통한 욕망의 디톡스이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기 위해 24시간 동안 핸드폰을 잠금 장치에 넣어두곤 하듯이 같은 방식을 가정 경제에도 적용한 것이다.
부부의 바람은 하나이다. 친환경 생활을 하면서 희생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다고 한다. 사람은 여러 동기로 움직이지만, 이익 동기도 굉장히 크다. 가계부로 자가를 마련하고, 환경을 지키는 가족도 있다고 담백하게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