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 투 더 퓨처'가 떠오른다. 1985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30년 뒤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미래 모습을 아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어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나 추측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드론이 강아지의 목줄을 대신 끌고 산책한다. 사람들은 개인 휴대전화로 결제를 하고, 집에 들어갈 때 지문 인식으로 문을 연다. 서로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하고, 공중을 나는 스케이트보드를 자전거 타듯 다룬다. 주인공은 평면 벽걸이 TV처럼 얇은 평면 스크린을 통해 화상 대화를 나눈다. 모두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기술들이다.
이번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이 사상 최초로 AI 연구자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앞으로 AI, 인공지능 기술이 사회를 지배할 것이 자명한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
유발 하라리 교수는 <넥서스>에서 인공지능을 단순히 뛰어난 도구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었던 어떤 기술보다도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AI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스스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는 역사상 최초의 기술이다. 앞으로 몇 년 안으로, AI가 비서가 아닌 보스가 될 수 있다. 통제력을 잃기 전에 AI 개발과 활용에 관심 가져야 한다.
하라리 교수가 말하는 AI 혁명의 본질은 한 마디로 주체성이다. 이전의 정보 기술들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업무를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가령 인쇄술은 책을 찍는 기계였지, 어떤 책을 찍어낼지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AI는 인간의 질문에 따라 스스로 창조하는 힘을 지녔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AI 알고리즘도 인간 개발자가 프로그래밍하지 않은 것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고 인간 경영진이 예측하지 못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우리 자신보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더 잘 이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코딩보다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민주적인 토론마저 저해하고 있다면서, 암울한 미래를 막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소셜미디어에서 민주적인 토론이 가능하려면 상대가 로봇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알 수 있어야만 한다. AI의 영향을 관찰할 국제기구가 필요한 이유다.
미래는 물론 잔잔한 일상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는 AI.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점심에 뭘 먹을지, 이 책을 읽어도 될지 말지, 직장에 이 옷을 입고 가도 괜찮은지를 AI에게 물어본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조차 AI에 의지한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존엄은 복잡한 생명 시스템과 지능에 근거한다. 그런데 근거가 AI와 합성 생물학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우리는 노래방 기계에게 노래 가사를 아웃소싱하면서 노래 가사를 기억에서 삭제했다. 얼마 후면 인간의 지능조차도 두뇌 바깥의 AI 클라우드 시스템에게 맡기고 말 것이다. 그때의 인간을 여전히 '호모사피엔스', 지혜로운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여전히 인간은 다른 생물과는 구별되는 존엄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왜 이토록 자기 파괴적일까?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영리한 동물인 동시에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다. 우리는 핵미사일과 초지능 알고리즘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다. 하지만 통제할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고 통제하지 못하면 우리를 파괴할 수 있는 것들을 덮어놓고 생산할 정도로 어리석다.
여기에 대해 하라리는 인간 본성 탓이 아니라 정보 네트워크 탓이라고 주장한다. 진실보다 질서를 우선시한 탓에 인간의 정보 네트워크들은 엄청난 힘을 만들어냈지만 지혜는 거의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목 '넥서스(nexus)'는 사전적으로 결합, 연결을 뜻한다. 수많은 국가와 사람을 연결해 창조성과 생산성을 일으키는 정보 기술의 첨병이 바로 AI다. 인류가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성해내면서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됐으니 이제 인간이 결합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 때이다.
인공지능이 하루하루를 바꿔가고 있는 지금. 새롭게 탄생한 양날의 검을 어떻게 잘 다룰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