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지도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머리를 숙인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두 차례나 사과를 했지만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든다’는 유행어만 남겼을 뿐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과거 음담패설이 불거졌을 때에는 그의 딸 이반카가 나서서 사과했다. ‘논란→ 사과→후속대책’은 전형적인 위기관리 3단계이다. 그런데 어쩐 이유에서인지 논란은 흔한데 마음에 드는 사과나 후속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기호 작가의 소설 ‘사과는 잘해요’(사진)가 떠오른다. 사과를 하기 위해 죄를 지어내야만 하는 모순을 꼬집는 블랙 코미디이다. 복지시설에 강제로 갇혀 살다 뜻하지 않게 사회로 나오게 된 모자란 청년, 진만과 시봉이 시설에서 배운 유일한 기술은 ‘사과하기’이다. 그들은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재주로 돈을 벌기로 한다.
“파라솔 의자에 먼저 앉은 것도 죄가 될 수 있고요. 캔맥주를 더 빨리 마신 것도 죄가 될 수 있어요. 죄는요, 사실은 아저씨하곤 아무 상관없는 거거든요. 아저씨가 생각하는 거, 모두가 다 죄가 될 수 있어요. 그걸 우리가 아저씨 대신 사과해 드린다는 거예요.” 진만과 시봉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사과를 강요하고 급기야 ‘사과대행’으로 사업을 하기로 한다. 죄를 지은 사람의 당연한 의무이자 생존 방법인 사과가 산업화하는 소설 속 촌극이 낯설지 않다.
특히 사과가 사과를 불러오는 과정이 재미있다. 시설에서 상습적인 폭력에 길들여진 진만과 시봉은 “네 죄가 뭔지 아냐”고 묻는 복지사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매일 새로운 죄를 생각해내야 했다. 복지사는 자신의 매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은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 죄를 지어냈다. 거짓말로 일단 사과부터 하고 나서 그들은 꼭 거짓말로 고백했던 그 죄를 저지른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복지사들은 그들에게 다른 원생들의 죄를 찾아내 대신 사과하기를 담당하는 ‘반장’의 임무까지 맡긴다. 폭력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고 그들은 서서히 죄의식을 잃어갔다.
과연 누가 그 모자란 사람들에게 사과 의뢰를 맡길까 의아했지만 예상 외로 사과대행업은 승승장구한다. 죄 많은 세상에서 죄지은 사람을 찾아 죄를 들추는 일이 이렇게 성업할 줄이야. 죄는 길바닥의 자갈 같은 것이었다. 사소할수록 더 큰 죄가 된다.
‘사과는 잘해요’는 가상의 지옥도 이야기다. 현실과 비슷하지만 현실과는 한 뼘 거리를 두고 있는 우화 세계. 그 속에서 ‘원죄’로 대표되는 죄와 죄의식을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내 죄는 없는가”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죄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 ‘사과’와 ‘책임’이다. 책임지는 방법은 여럿인데 소설에서는 사과를 하기 위해 진만이 시봉을 배신함으로써 죄와 사과가 반복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기호 작가는 죽을 죄를 짓고도 가책 없이 사는 철면의 시대에 여러분은 안녕하시냐고 안부를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폭력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인 시봉과 진만은 사과라도 잘하지. 정작 사과할 일 투성이인 당사자는 침묵과 회피로 무언의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다.
옷깃만 닿아도 “sorry”라고 말하는 이곳에서 “I’m sorry”는 흔한 인사말과 같다. 죄송할 때도, 유감일 때도, 거절할 때도 “sorry”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진정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혼 없는 “sorry”라 할지라도 그 말은 많은 것을 정리하게 한다. 때로는 그 어떤 기가 막힌 후속대책보다 당사자의 “sorry”가 더 속시원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