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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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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 케이프 헤이븐. 이곳은 한때 번성했지만 지금은 쇠락한 채, 과거의 상처와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30년 전, 빈센트 킹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간다. 고의로 죽인 것이 아니라 7살 소녀 시시를 괴롭히던 남자아이를 막으려다 일어난 사고였지만 법정은 그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마침내 빈센트는 출소하고,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불편해한다.


크리스 휘타거의 <나의 작은 무법자>는 범죄 소설의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상처와 구원을 깊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범죄 스릴러 장르라기보다는 상실과 희망을 동시에 품은 성장 이야기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13살 소녀 워크이다. 나이는 어려도 이미 세상과 맞서 싸우는 법을 너무 일찍 배운 아이였다. 술과 절망에 빠진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돌보며 어른들의 무책임 속에서 자기 방식대로 살아남으려 한다. 친구도, 보호자도 없는 그녀는 거칠지만 꿋꿋하다. 어린 나이에 무법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슬펐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힘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주인공 치프 워커는 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이다. 마을을 지키는 보안관이자, 과거의 잘못과 죄책감을 짊어진 인물이다. 친구 빈센트 킹이 살인 사건으로 감옥에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무기력하게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서는 새로운 범죄가 발생하면서 과거의 진실과 현재의 비극이 얽히기 시작한다. 빈센트가 출소하자마자 워크의 엄마 스타 래들로가 살해당한다.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빈센트를 의심하고 그는 다시 체포된다. 워크는 엄마를 잃은 충격 속에서도 진실을 밝혀내려 애쓴다. 치프 역시 보안관으로서 사건을 해결해야 하지만, 동시에 오랜 친구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균형을 지켜야 하는 고통스러운 자리에 선다.


조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스타의 죽음은 빈센트가 저지른 것이 아니며, 과거 시시 래들로의 죽음 역시 불가피한 사고였으며, 빈센트는 오랫동안 억울하게 복역해왔다는 점이 뒤늦게 밝혀진다.


진짜 범인은 마을의 또 다른 어른들이었다. 자신들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어리고 힘없는 희생양이 필요했을 뿐이다. 결국 진실이 밝혀지지만, 그 과정에서 보안관 치프 워커는 목숨을 잃는다. 그는 워크를 지키고자 끝까지 싸우다가 죽음을 맞는다. 워크는 '끝까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며 치프의 죽음을 애도한다.


처음에는 범인이 누구일까,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 추리하며 읽다가 이내 포기했다. 작품의 중심은 범죄의 해답보다는 그 속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서로를 지켜내는가에 있었다.


책을 덮고 나면 "쓸쓸하지만 따뜻하다"는 역설적인 감정이 든다. 황량한 미국 서부의 풍경 속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범죄는 쓰라리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의 마음은 강하게 빛난다. 삶은 언제나 불완전의 연속이다. 늘 기대와 상실, 기쁨, 슬픔이 교차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다시 걸어가야 하고, 누군가는 끝까지 곁에 서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 소설을 단순한 범죄극이 아닌 아름다운 인간 드라마로 만들었다.


<나의 작은 무법자>는 범죄 소설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구원, 희생, 세대 간의 이어짐을 담은 성장 서사이자 인간 드라마다. 읽는 동안은 마음이 무거웠다가 결말을 보고 나서는 오히려 묘한 위로를 받았다.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자신의 길을 가는 워크의 모습처럼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작은 무법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에요.” ··· 소녀는 한 손에 소총을 든 채 한 손으로 말에 올라탄 다음, 고삐를 채며 발자국을 따라 달렸다. 소녀는 마음을 놓아버린 자신을,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그렇게 빠져버린 자신을 저주했다. 소녀는 분노를, 뜨거워서 몸이 뒤틀리는 분노를 기억했다. 소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되새겼다. 더치스 데이 래들리. 무법자.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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