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두고 내년 목표를 세운다. 십여 가지 목록 중 첫 줄에 '무리하게 효도하지 말고 나답게 관계 맺기'를 적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 생각이 더 복잡해진다. 잘 지내는지 걱정되다가도, 한편으로는 달갑지 않은 전화를 받느니 이대로 고요한 상태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과 부모만 떠올려도 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이 있지만, 살짝 답답해지는 이들도 있다. 부모님께 잘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현실은 언제나 교과서처럼 흘러가진 않으니 말이다. <전국불효자랑>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제목부터가 이미 반칙이다. 불효를 자랑하겠다니.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 책이 결코 불온한 선언문이 아님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에세이를 공동 집필한 열세 명의 작가들은 대단한 반항아가 아니다. 오히려 “나도 사람인데…”라고 속으로만 읊조리던 평범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살기 위해 부모와 잠시 거리를 둬야 했던 이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 어떻게 해야 하지?’를 하루에도 열두 번 고민하는 이들. 불효자라는 이름표 뒤에 숨은 건 단순한 무심함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평소에 가족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적이다, 가족드라마, 끈끈한 가족애 같은 말도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희생하는 어머니상과 든든한 아버지상, 믿음직한 가장이 정답이며 우리 모두 이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존재하는데 TV 매체에서 다루는 가족의 모습은 너무 뻔하고 고리타분하다. 누군가가 참고 누군가가 희생해서 완성되는 가족의 행복이라면 그 가족은 이제 해체 수순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책 속에는 다양한 부모들이 등장한다. 자녀를 수시로 두드려 패고, 살 빼라고 압박하고, 늘 취해있으며, 자식을 감정쓰레기통으로 쓰는 자격미달 부모들. 오죽하면 인연을 끊고 지내던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경찰에게 무연고 처리해 달라고 말했을까.
가장 마음 아팠던 부분은 주폭 엄마 밑에서 평생 당하고 살아오면서도 연민 때문에 쉽게 마음을 잡지 못하는 딸의 사연이었다. 엄마가 결혼에 실패한 것도, 빚더미에 앉은 채 자식 둘을 혼자 키워야 했던 것도, 그러다 술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게 된 것도 작가 탓이 아니었다. 그토록 닮기 싫은 그녀를 여전히 엄마라고 부르면서 작가는 괴로워한다.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싶을 때마다 그놈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고 키워냈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는 탓이다.
잘 웃다가도 주머니 속에서 휴대 전화벨 소리가 울릴 때마다 조건반사처럼 가슴이 벌렁거렸다. 오늘 우리 집에는 또 어떤 모양의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면서.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 p.164
이 책은 가족 흉보기나 동정받기가 아니다. 열세 명의 작가들은 모두 가족을 끊어내고 자발적 고아가 되는 방법을 택했다. 다소 충격적인 결말이지만 읽다보면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뜨끔하고, 때로는 내가 겪은 일과 닮아 있어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효’라는 단어에 눌려 살던 우리에게 “괜찮아, 모두들 완벽하진 않아”라고 가볍게 말 걸어주는 책이라고 할까.
효도는 등수 매기는 경연대회가 아니고, 가족 관계도 시험 문제처럼 정답이 하나일 필요는 없다. 가끔은 거리 두기가 필요하고, 가끔은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게 더 큰 효일 수도 있다. 고국에 부모를 두고 해외에 나와 지내고 있는 자체가 불효일 수 있다. 늘 마음을 짓누르던 무게가 책을 읽고 나서 조금은 덜어진 기분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각자의 사정과 사연으로 돌아가는 만큼 효도 역시 한 가지 방식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전국불효자랑>은 웃음과 공감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를 슬며시 건드린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인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자기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며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