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 p.7
소설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가 어떤 인생을 살아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 인간의 생애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이념적 상처를 직시하고 있다.
작가는 해방이라는 단어가 지닌 역설과,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인간의 존엄을 세밀하게 탐구한다. 해방은 분명 ‘나라의 자유’를 의미하지만 개인에게는 새로운 억압의 이름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결국 죽은 후에야 진정 해방될 수 있었다.
이야기는 딸의 시선으로 흐른다. 딸은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며 과거의 조각들을 더듬는다. 아버지는 해방 직후 인민의 세상을 꿈꾸며 산으로 들어간 빨치산 출신이다. 빨치산이란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san)에서 유래한 단어로 게릴라 부대를 의미한다. 아버지는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의 지도자였고, 확고한 자기 신념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 후 세월을 거치며 소박한 농부로, 평범한 노인으로 늙어간다.
이념의 대가는 혹독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인민의 해방을 위해 싸웠으나 결국 그 이상은 국가권력의 탄압 속에서 붕괴했고, 가족들에게조차 빨갱이의 그림자로 남았다. 딸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성장했다. 아버지의 과거 때문에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가족은 가난과 감시 속에 살았다.
소설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장례를 치르는 사흘 동안의 여정을 그린다. 딸은 아버지가 떠난 후 다양한 손님을 만난 후에야 아버지의 새로운 얼굴을 보게 된다. 아버지는 이념의 패배자이기 전에 가족을 지키려 애썼던 한 인간이었다. 전쟁이 만든 이념의 이분법 속에서 그는 결코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세대의 상징이었다.
작가는 여기서 이념의 문제를 단순히 선악의 대립으로 보지 않는다. 딸은 아버지를 패배한 이념의 잔존자로 묘사하기보다 그 시대를 통과한 한 인간으로 복원한다. 젊은 시절 그는 이상을 믿고 산에 올랐지만, 세월이 흘러 농부로 늙어가며 삶의 해방이란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이 과정에서 딸은 아버지를 원망하는 동시에 이해하게 된다.
역사의 거대한 서사 속에 묻힌 한 가족의 삶을 훔쳐보면서 가슴이 아려온다. 해방이 누구에게는 자유였고 또 누구에게는 또 다른 속박이었다. ‘해방일지’라는 제목은 역설적이다. 나라의 해방이 개인의 구속으로 이어졌고 이념의 이름으로 삶이 파괴된 시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정지아 작가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첫 작품 빨치산의 딸>은 금기의 시대에 가족사를 폭로함으로써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이후 작품들은 그 상처를 내면의 윤리로 전환해왔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 궤도의 연장선이자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더 이상 아버지를 죄의 상징으로 두지 않는다. 역사의 희생자이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았던 한 인간으로서 존엄의 자리에 놓는다.
독특한 점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온도다. 정지아 작가의 문장은 냉철할 정도로 차갑다. 감정의 폭발 대신 절제된 서술로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분노나 한탄보다 이해와 연민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불러낸다.
또한 이 소설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부터 군사정권기까지, 1953년부터 1980년대까지의 시대상을 섬세하게 반영한다. 전쟁과 이데올로기, 냉전 체제 속에서 수많은 개인이 침묵을 강요받았고, 가족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마저 국가 권력의 그림자 아래 놓였다.
소설 속 아버지와 가족의 삶은 국가폭력과 사회적 낙인의 미시사다. 작가는 아버지를 용서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썼다고 밝혔다. 기억을 회복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인간의 노력을 알기에 “나는 이제야,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마지막 문장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조용히 되뇌어본다. “당신의 해방은 누구의 속박 위에 세워졌는가?” 그리고 “여전히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진짜 해방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