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헝가리의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종말론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시키는 강렬하고 선구적인 세계”라고 평가하며, 중부 유럽 문학 전통을 잇는 그는 “부조리와 과잉 표현을 넘어선 사색적 어법을 지닌 작가”라고 찬사했다. 한 권의 소설이 얼마나 정확하게 시대와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지를 입증하는 증표이다. 그의 대표작 <사탄탱고>는 작가의 세계관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은 헝가리의 어느 외딴 마을. 국영 농장이 폐쇄되며 삶의 기반을 잃은 주민들은 비에 젖은 진흙탕 속에서 무기력하게 남겨진다. 그들 앞에 어느 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리미아시가 나타난다.
그가 돌아오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기이한 희망을 품는다. 그는 자신을 일종의 지도자 혹은 예언자처럼 포장하며, “우리가 함께라면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다”고 설교한다. 이리미아시는 마을 사람들의 탐욕과 두려움을 교묘히 파고들며 그들을 하나둘 휘어잡는다. 그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설파하며 공동체를 재건하자고 제안한다.
마을의 주점 주인, 부패한 간부, 외로운 여인, 그리고 소외된 아이들 모두가 그의 말에 홀린 듯 따라간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이리미아시가 약속했던 새로운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마을은 다시 폐허로 돌아가고, 그들은 집단이 광적으로 집착했던 구원이 거짓임을 깨닫는다.
그중 가장 비극적인 인물은 에스티케라는 소녀다. 사랑받지 못하고 가정에서 학대받던 소녀는 이리미아시의 환상 속에서 자신만의 구원을 찾지만, 끝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소녀의 죽음은 작품 전체를 감싸는 허무의 정점을 찍는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믿음과 불신, 욕망과 체념 사이를 오가며 혼란스러운 탱고를 춘다. 작가는 인류의 종교적 열망과 사회적 타락, 그리고 인간 내면의 허무를 이 기괴한 리듬 속에 담는다. <사탄탱고>라는 제목이 말하듯, 이는 악마의 춤이며 동시에 인간이 구원을 꿈꾸며 몸부림치는 절망의 춤이다.
작품은 12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6걸음 앞으로, 6걸음 뒤로' 움직이는 탱고의 리듬처럼 앞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후퇴하는 운동감을 내포한다. 전반부가 절망과 유혹의 확산이라면, 후반부는 그 절망이 되풀이되는 순환의 기록이다. 그저 뒤바뀐 관점이 아니라 시간이 멈춘 사회, 변하지 않는 절망을 드러낸다.
라슬로의 문장은 길고 무겁다. 쉼표 하나로 이어진 몇 페이지짜리 문장은 인물들의 의식과 세계의 혼탁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독자는 읽는 내내 진흙탕을 걷는 듯이 기진맥진 지치지만 바로 그 피로감 속에서 작가의 집요한 질문이 울린다.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왜 계속 움직이는가.”
<사탄탱고>는 사회비판소설 외피를 쓰고 있지만, 종말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인간의 자기기만에 대한 기록이다. 이리미아시가 상징하는 것은 사탄이 아니라, 모두에게 내재한 허무맹랑한 희망이다. 이 허망한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작가는 공동체의 붕괴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우리는 그에게 속으면서도 그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이 소설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사탄탱고>가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게 된 지금, 이 작품이 가진 사회적 메시지는 과거 헝가리 사회주의 말기의 맥락을 넘어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날 선 울림을 준다. 특이한 점은 이 작품은 동구 공산권이 해체되기 전인 1985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탄탱고>를 번역한 조원규 시인은 아직 체제가 유지되던 동안에 작가가 그려낸 몰락은 정치적 저항의 표현이었을 거라고 분석한다. 이 작품은 한 시기의 체제 비판을 넘어서 좀 더 항구적인, 희망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한 문학으로 남았다고 덧붙였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한다. 탱고처럼 반복되는 비극은 단순한 문학적 장치를 넘어 사회적 경고다.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고 경계하지 않는 한 또다시 같은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 말이다.
사람들은 난로를 껴안고 앉아 봄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아. 날이 저물 때까지 창가에서 어정거리다가 그다음엔 먹고 마시고 솜털 이불 아래서 껴안고 잠이 들지. 이때쯤 사람들은 인생이 잘못되어간다고 느껴.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싶을 때는 아이들이나 고양이를 때리면서 좀 더 견뎌내지. 그렇게들 사는 거야. - p.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