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족해서 좌절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백인이 아니기 때문일까?” 한국계 미국인 2세대 작가 캐시 박 홍은 미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지워내는 경험 앞에서 이 질문을 던진다. <마이너 필링스>는 바로 그 물음에서 출발한 에세이다.
자신이 겪은 ‘소수적 감정(minor feelings)’에 대해 일곱 개 장으로 나누어 차분하게 서술한다. 저자가 말하듯 통으로 쓸 수 없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인 여성으로 살아온 그의 경험은 단선적인 서사가 될 수 없었다. 대신 파편적이면서도 예리한 장면들이 켜켜이 쌓여 차별의 역사로 기록된다.
작가는 아버지의 성 홍과 어머니 성 박을 합쳐 이름을 캐시 박 홍으로 지었다. 이름에 두 성을 다 넣는 행위는 자신이 어느 한 쪽으로만 환원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한국적 뿌리와 미국 사회 속 삶, 이민 1세대 부모의 역사와 2세대 본인의 경험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혼종적 정체성을 선명하게 상징하고 있다. 아버지의 성만 이어지는 관습 속에서 뒤로 밀려난 어머니의 흔적을 되살리려는 저항의 뜻이기도 하다.
첫 장에서는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이 다뤄진다.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며 미국 문화에 젖어 살았지만, 학교와 사회 어디에서도 완전한 미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친구의 집에서 놀다 문득 마주친 부모의 시선, 동네 수영장에서 “너희는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외침, 쇼핑몰에서 “중국인한테는 절대 문 안 잡아준다”는 모욕.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당하는 현실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어서 가슴 아프다.
중반부에서는 문학 활동 속에서 겪은 모순을 짚는다. 인종 이야기를 쓰면 “또 그 얘기냐”며 무시당하고, 자본주의·환경·세계화 같은 보편적 주제를 다루면 “비백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여기서 캐시는 소수자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이중적 잣대를 폭로한다.
또한 그는 아시아인 공동체 내부의 문제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백인 사회가 성실하고 얌전한 아시아인을 칭찬하며 동시에 배제하는 구조 속에서, 아시아인들조차 흑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공유해온 역사를 되짚는다. 그러면서 “내가 받은 상처뿐 아니라, 내가 남에게 준 상처까지 쓸 수 있을까?”라는 곤혹스러운 질문을 내놓는다.
뒤로 갈수록 야기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집단적인 성찰로 넓어진다. 식민지의 기억, 원주민이 겪은 상처, 기후 재난 속 난민, 성소수자와 장애인까지. 사회적 소수자로 불려온 이들이 느끼는 불안, 짜증, 수치심, 우울을 캐시는 ‘소수적 감정’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낸다. 그는 이 감정을 하찮은 것이 아니라, 사회를 꿰뚫는 진실의 언어로 내놓는다.
<마이너 필링스>를 단순히 이민 2세대의 자전적 기록으로만 읽는다면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코로나 시기에는 아시아인을 '저것' 아니면 '중국인', '바이러스'라고 조롱했던 것처럼 소수자에 대한 단순화와 낙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여성, 장애인, 소수 인종, 혹은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며 별것 아닌 감정이라 치부당했던 말에 침묵하지 않으려는 선언이다.
캐시는 책의 끝에서 “보편성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은 분열의 선언이 아니라, 지워진 이들의 목소리를 모아 새로운 보편을 만들자는 호소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억압과 차별을 당하는 모두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애초에 시인으로 활동했다. 시 세계는 이중 언어 화자로서 활동하기에 조금 더 안전했다. 적은 단어로 짧게, 골치 아픈 서사 없이 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 필링스>를 시가 아닌 자서전 형식으로 쓰는 것은 작가로서 스스로 약점을 드러낸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책을 두어 번 읽은 후에야 그 답을 찾았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도 누군가의 경험을 ‘그건 그냥 피해의식이야’라며 무시해온 적이 많지 않은가. 하지만 소수자의 감정은 결코 작은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어디가 금이 가 있는지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신호다. 이제는 그 목소리에 진짜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