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승은 Jun 02. 2017

하와이 하면 비치[bi:tʃ] ⑪

아빠와의 약속, 알라모아나 비치 파크

아빠와의 약속, 알라모아나 비치 파크


아침에 눈을 뜨면 나를 반기는 풍경, 우리집이면 좋겠지만 아니여도 좋다.


항상 창문 너머 알라모아나 비치가 보였다. 눈만 뜨면 보이는 곳인데도 아직 저기를 가보지 못했다니... 주차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린 나는 이번엔 차를 두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싶었다. 구글맵으로 거리를 찾아보니 집에서 도보로 7분밖에 안 됐다. 오~예스! 그래, 오늘은 걸어서 가 보자. 아이들도 걷는 데는 일가견이 있으시니 수영복을 입으시고 그 위에 가벼운 옷을 하나 걸치고 걷기 시작했다.








집 밖을 나오니 덥긴 덥다. 만날 자동차로 다니다가 보따리를 들고 걷기 시작한 지 5분. 급후회가 됐다. 7분은 어른들 걸음 기준인가. 아이들과 함께 걸으니 대충 20분은 걸린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여 다시 찾아보니 아뿔싸! 구글맵에서 말하는 알라모아나 비치는 우리가 가려던 그곳이 아니었다. 지도를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었다. 어눌한 엄마를 용서해라. 그리하여 걷고 또 걸었다. "엄마, 아직도 더 걸어야 해?"를 세 번 정도 했을까.




“힘들어? 차 가지고 올 껄 그랬나 봐.”


라는 말을 내가 했을까? 나는 독한 구석이 있는 엄마다. 이런 약한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오려고 하는데 꿀꺽 삼켜버렸다. 이것도 다 추억이 될 텐데 말이야, 우리가 언제 알라모아나 비치 파크를 걸어보겠냐. 엄마는 원래 자신의 실수에는 관대한 걸까? 속으로는 미안했지만 또 당연하게 겨우겨우 도착했다. 나는 양 손에 모래놀이 세트와 보냉 가방을 들었고, 물론 보냉 가방 안에는 얼음물 두 병과, 과자, 과일을 담았으니 무게가 좀 나갔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들 타고 놀 튜브와 스위밍 누들을 어깨에 끼고 뙤약볕을 걸어왔다. 그러니 물을 보는 순간 아이들은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만난 낙타처럼 뛰어 들어갈 수밖에...






알라모아나는 비치 파크이다. 즉, 모래사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샤워시설이 있고 화장실도 있다. 물론 샤워기가 있다고 해서 샴푸 풀고 머리 감으면 완전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되는 것이니 간단히 몸에 묻은 모래 정도만 털어 내도록 한다.



물고기가 보이는지 모래놀이 버킷을 들고 들어간다. 둘이 연신 손으로 무언가를 잡는 것 같더니 정말 자잘한 물고기들을 담아왔다. 이렇게 사람들이 노는 곳까지 물고기가 있다니 신기했다.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 잡힐 정도의 물고기라면, 얘네들은 또 얼마나 어설프다는 말인가. 가여워서 모조리 풀어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늘 그렇듯이 모래성도 만들고 수영도 하고 중간중간에 간식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바다에서 노는 스케일이 점점 커졌다.



[우측 사진, 문제의 스위밍 누들]


 한국에서 떠날 때 남편이 아들에게 당부했던 말이 있다.



"바다 수영은 수영장 수영이랑 완전히 달라. 네가 수영 좀 할 줄 안다고 바다로 헤엄쳐 나갔다가 갑자기 발이 땅에 안 닿으면 엄청 당황할 수 있어. 엄마를 믿으면 안 돼. 엄마는 너를 구해 줄 수 없어. 물이 가슴까지 오면 돌아와야 하는 거야. 뭘 잃어버려도 마찬가지야. 그냥 버리고 오는 거야. 약속해!"



아들은 시큰둥했다. 그런데 아빠의 말이 예언이 될 줄이야. 신토불이 사나이가 스위밍 누들을 가지고 놀다가 놓쳐 버린 것이다. 아이는 흘러가는 스위밍 누들을 잡겠다고 한발 한발 걸어 들어갔다. 모래밭에 누워서 책을 보고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서 돌아오라고, 버려도 된다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지 “엄마! 저거 떠내려가!” 하며 아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얼른 물로 뛰어들어갔다. 물속에서는 아무리 빨리 걸으려고 해도 속도가 안 난다. 게다가 빌어먹을 파도가 치면 걸었던 제자리로 돌아왔다. 순간 짜증이 밀려오며 심장이 타 들어가는 거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는 뒤를 돌아보더니 돌아오기 시작했다. 스위밍 누들은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다. 정말 십년감수했다.



"엄마, 저거 잡으러 가는데 아빠가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그냥 돌아왔어."



아빠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았는데 위급한 상황에서 아빠의 당부를 기억했다. 정말 기특했다.


“그깟 수수깡(스위밍 누들) 얼마 안 한다. 엄마가 다시 사 줄게. 정말 잘했어.”






우리는 둥둥 떠내려가는 수수깡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멀리 잘도 흘러가더니 이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이들은 저 수수깡이 어디까지 갈까 아빠한테까지 갈까 하면서 아쉬워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들을 꼭 안아줬다.  



한참을 놀며 이제 수수깡 따위는 잊어버렸을 때 멀리서 카약을 타던 아줌마가 한 손에 집 나간 수수깡을 소환해서 오고 있었다. 오예~ 우리는 마치 SOS를 치는 사람들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수수깡은 바다 구경 실컷 하시고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너무나 감사해서 고맙다는 말을 연신하고는 멋있다며 재미있냐며 무섭지 않냐며 주책스럽게 말을 건넸다. 탄탄한 근육을 가진 아줌마는 아들을 한번 보더니 “Does he swim?"이라고 물었다. 내가 "Yes"라고 답하자 아이를 카약에 태워준다. 와우~ 카약은 햇살을 받으며 여유 있게 바다로 나아갔다. 멀어지는 아들을 보면서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이 마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아들의 모습 같아서 뭉클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내 눈에, 마음속에 마구 찍어 담았다.



구글맵을 믿고 한 번 걸어 가 본 다음에는 다시는 비치에 걸어 가지 않기로 했다. 비치에 갈 때는 신나는 마음에 어떻게 걸어갔지만 돌아오는 길은 힘들었다. 물에 젖은 수영복과 장난감들 그리고 물놀이 후 피로를 계산했어야 했다. 이후에 차를 가지고 몇 차례 더 갔지만 갈 때마다 어렵지 않게 주차를 했고 훨씬 덜 피곤했다. 샤워 시설 가까운 곳에 주차가 가능하면 비치에서 철수할 때 씻고 바로 차에 탈 수 있어 편리했다.



그렇게 힘든 게 싫어서 이것저것 따질 거면 왜 하와이까지 갔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통 엄마들은 이해되는 시츄에이션이지만 그 밖에 행인들은 왜 사서 고생하냐며 나를 질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엄마가 피곤한 건 괜한 엄살이 아니다. 엄마의 일이라는 게 비치에 갔다 오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이들을 바닷가에서 집까지 데리고 오면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모래 범벅의 아이들을 화장실로 보내 샤워를 시키고 그 사이에 나는 쌀을 올려놓고, 식사 준비를 했다. 아이들이 샤워를 하고 나오면 김치찌개를 끓여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너무 힘들 때는 라면을 끓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돌이켜 보면 스스로 참 애썼다는 생각이 든다.






beach는 엄연히 [bi:tʃ]로 길게 빼서 읽어야 해요. 남의 나라 말이 부끄럽다고 담백하게 발음했다가는 하와이를 온통 bitch [bɪtʃ]의 천국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지도에 나와 있는  beach와 beach park에는 차이점이 있는데요.  beach는 그야말로 해변을 뜻하는 것이고 beach park에는 화장실, 간단한 샤워시설 등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려면 당연히 beach park로 가셔야겠죠.  






알라모아나 비치를 처음 갔을 때, 아이들이랑 어디서 놀아야 할지 막막했어요. 알라모아나 비치파크의 가운데를 기준으로 와이키키 방향으로는 바다가 얕고 잔잔하더라고요. 모래도 곱고 분위기도 조용해서 어린아이들과 광합성을 즐기며 책 읽을 어른들이 머무르기 좋아요. 그리고 반대 방향인 서쪽으로는 파도가 철썩거리고 커다란 바위들이 많으니 바다에서 좀 놀 줄 아는 어른들이나 도전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실제로 몇 번을 가 봐도 그쪽에는 하와이안 아이들이 노는 모습만 봤는데 바위 위에서 거침없이 점프하고 아주 익스트림하게 놀더라고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동쪽은 관광객, 서쪽은 현지인 구역처럼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