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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30. 2023

누가 그래, 평생 공무원한다고?

나를 자르겠다고 협박하는 사람들

  누가 그랬는가, 철밥통 공무원은 평생 한다고.

요즘에는 사직하는 신규직원들이 허다하고 8급 승진을 하고 나서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적은 보수, 잦은 주말근무, 행사 동원 등 지방직 공무원은 피곤하다.


  나 역시 요즘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다.

내가 사회복지공무원을 준비할 때, 같은 학원에 다니던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었다.

 "누가 사회복지공무원을 준비해? 나는 죽기 싫어."

당시 유난히도 많은 사회복지공무원들이 세상을 등지던 시절이기에 나온 말이었지만, 그 말이 상처가 됐다.

성적에 맞춰서 직렬을 선택한 게 아니라 나는 진심으로 사회복지공무원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각오를 하고 들어왔지만,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첫 발령 때는 억 단위 재산을 가지신 분이 20만 원 정도 하는 실버카(노인보행보조기) 무료지원사업에서 자신을 탈락시켰다고 아들과 함께 찾아와서 ㅅㅂㄴ이라고 욕을 했고, 술 취한 기초생활수급자는 매일 같이 찾아와 민원대 넘어와 날 때릴 기세로 술 마시게 내 돈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준 적은 없다. 내가 일해서 피같이 번 돈을 왜 줘야 하는 걸까)


  그리고 어느 날에는 초중고교육비지원사업 신청과 함께 도자체 교육사업을 동시 신청하는 게 있었는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한 사람이 자기가 기한이 지나서 신청을 하지 못했다며 내게 책임을 지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어느 날, 몇 시쯤 왔는지도 기억을 하고 있었고 분명 도자체 교육사업을 총무팀에 가서 신청하라고 안내까지 했다. 그뿐만 아니라 도자체 교육사업 신청 부서인 총무팀에서도 그 분만 신청을 하지 않아서 거의 한 달가량 수십 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도 응답이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그분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문자 그거는 나는 모르겠고.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내가 신청을 못 했으니까 당신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신규직원이었고 퇴근 직전 가장 조용한 시간에 찾아와 사무실이 떠들썩하게, 우리가 한 노력은 '난 모르겠고'라는 막무가내 주장을 펼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심지어 도자체 교육사업 신청은 총무팀 소관이라 사과를 받더라도 총무팀에서 받아야 하는데 왜 내 자리 앞에서 그러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사무실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나서주지 않았다.


  결국 억지주장에 내가 졌다. 죄송하다고 그랬다. 그러자 직원들을 총괄하는 총무계장이 찾아와 직원이 사과를 했으니까 넘어가달라고 부탁을 해서 유야무야 마무리가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우리 지역의 공무직 아내였는지 부부 모두 질이 좋지는 않다고 했다. 승리의 표정. 처음부터 자신의 잘못을 우리의 잘못으로 몰아 사과를 받고 싶어서 방문한 듯했다.


  그래서 그날 깨달았다.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도 나서주지 않는구나. 내가 술 취한 사람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듣고 욕을 들어도 같은 팀에 있는 어느 직원조차 나서지 않았다.


  그 뒤에는 보유하고 있는 주택가격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 되지 않지만 그걸 제외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르신댁을 방문하여 음식이나 물품을 드리고 거동이 힘드신 점을 감안하여 마당에서 집으로 올라오는 길을 기존의 계단에서 안전바를 설치한 경사로로 변경하는 공사까지 해드렸더니, 어느 날 딸과 사위가 사무실을 쫓아와서 왜 이렇게 힘든 사람을 기초생활수급자로 해주지 않냐며 폭언을 퍼부었다. 오직 집 가격이 문제가 되는 것이었는데, 10년 가까이 재산세 납부를 어르신이 하게끔 내버려놓고 이제 와서 그건 사위 재산이다 우기고, 그럼 명의이전을 하시라니까 그러면 1가구 2주택이 돼서 그것도 안된다고 하셨다. "선생님, 두 가지 혜택을 모두 다 누리실 수는 없어요. 둘 중 하나는 생각해서 포기하시고 다시 방문해 주세요."라고 해서 돌려보냈다.


  이제 지겹겠지만 더 있다. 우리 사회복지공무원들의 썰은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다.  


  어떤 날에는 자살시도자를 구해주고 났더니, 이튿날 남편이 손에 끼고 있던 금반지가 없어졌다며 우리더러 혹시 봤느냐고 하면서 찾아오라고 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식. 다행히 구조 후 순찰차로 이동할 때 찍어놨던 사진 속에는 손에 반지가 있음을 확인했고 병원에 확인해 보실 것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로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아마도 병원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는 것 같다.


  최근에는 한 민원인이 전화를 받자마자 ㅅㅂㄴ이라고 욕을 쏟았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전화를 받았는데 욕설부터 날아들어 황당하던 차에 "선생님~ 죄송하지만 정확히 못 들어서요. 다시 한번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라는 말이 그렇게 기분 나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돌아온 말은 '넌 한국말도 못 알아듣냐 씨발년아'였다. 지원이 필요하신 사유가 어떻게 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오지랖 떨지 마라고 욕을 하고, 난 그날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욕을 먹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다시 전화를 걸어온 그는 이번에도 ㅅㅂㄴ 소리를 이어갔다. 이전보다 더 심해졌다. 급여지급을 우리 지역에서 하는 게 아닌데도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 욕을 퍼부었다. 본인이 지급받고 있는 타 시의 담당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대행자가 업무를 진행 중인데 업무를 잘 몰라서 지침을 알려준 게 논란이 된 것이다. 2주 전에 한 달 치 생계비를 받았지만 급한 일이 생겨서 다음 달 생계비를 가불 해달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는데, 129(보건복지부콜센터)와 지침, Q&A 모음집을 아무리 찾아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양 지자체에 서로 다른 말을 전하며 우리를 이간질하던 그는 나의 공무원 자질에 대해 욕을 퍼붓고 작은 지역에서 일하는 너네 공무원들은 철밥통처럼 앉아서 일이나 한다며 나는 너한테 소송을 걸어서 공무원을 잘리게 할 거고 그게 안되면 피켓시위라도 해서 네가 꼭 해고되게 할 거라고 한참을 퍼부었다. 말려도 안될 걸 알기에 그러시라고 했다.


  지난번, 내가 잠시 화를 식히러 간 사이에 나의 팀장님과 전화통화를 한 그는 우리가 폭언에 대해 녹음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번에는 욕설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주된 내용은 나의 사회복지공무원으로서의 자자질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저기요. 다른 도의 시군에 전화했더니 거기는 내 얘기 듣자마자 눈물이 나서 바로 지급해 주겠다고 하던데, 이다씨는 그런 공감 능력이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프다 이런 게 없고 그냥 사무적이기만 하다고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번에도 본인이 하고픈 말만 쏟아냈다. 그리고 전화를 할 때마다 주장하는 바가 달라지는데 아마도 그걸 잊었나 보다. 내게 전화하자마자 쏟아낸 말이 '씨발년아' 였다는 걸. 그런 욕을 듣고 시작한 전화통화를 듣고 어느 누가 눈물이 나겠는가. 그리고 지급을 못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타 시에서 지급을 받고 있는 중인데. 


  그러면서 통화 말미에 "우리 사촌누나가 이다씨를 잘 알더라고요? 왜냐면 같은 지역 공무원이거든?" 이 말이 위협처럼 느껴졌다면 오버일까.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SNS를 닫고 폐쇄적인 생활에 들어갔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나면 나를 공무원에서 자르겠다고 한다.

민원인들이 부당하게 욕을 해도 손해를 보는 건 공무원이기에 학연, 지연, 혈연에 얽히기 싫어해서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아 소위 말하는 가방(빽)도 없는 나는 언제까지 내가 이 직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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