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_한강
페미니즘의 대표 서적이라고 불리우고 있는 '82년생 김지영'의 대표 슬로건은 '우리 모두 김지영이었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우리가 지난날 여성이기 때문에 받았던 차별과 부조리함을 수면 위로 띄웠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가 아닌' 뭇 사람들의 공격을 많이 받기도 하였던 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해서는 공격하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다. 왜일까? 내가 보기에는 이의 대표 슬로건도 '우리 모두 영혜가 될 수 있다'로 삼을 수 있는데.
영혜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이자, 가부장제 안에서 무색무취로 살아야만 했던 평범한 여성이다. 영혜의 남편은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에 반해서 결혼을 결심했고, 가부장적인 가정에 충실하여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는 영혜에 대한 그 어떠한 연민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영혜의 남편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1부는 과거에 한국현대문학에서 그려지던 감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영혜가 왜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는지, 왜 브래지어를 차지 않는지, 이상한 꿈을 꾸게 된 전말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그의 관심사는 딱 하나, 그녀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 오는 것. 그녀가 채식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얼만큼의 피해가 왔는지 자기연민의 시선으로 자기자신을 바라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영혜가 얼마나 소외되고 있는지에 관해 주목해야 한다.
2부는 더 가관이다. 형부라는 사람이 영혜를 대하는 태도는 역겹기 이루말할 데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2부를 넘기지 못하고 하차하기도 하고, 이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2부의 불편함이 3부로 향하기 위한 다리이며, 필요한 문학적 장치라는 생각을 하며 참아내기로 했다.
3부에서는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시선에서 영혜를 그린다. 여기에서 영혜가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 이유 혹은 계기가 일부나마 비춰진다. 여기에서 독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뭐야, 그렇게 특별한 이유가 아니네? 독자가 기대했던 '잔혹하리만치 처참한 과거'가 있었다기 보단, 우리의 과거 한국 문학에서 숱하게 다뤄졌던 가정 폭력 혹은 관습으로서의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 의식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는 영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혜도 아들이 없었더라면, 그녀가 책임져야 할 무언가가 없었더라면 영혜처럼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번 더 깨닫게 된다. 우리는 한 번이라도 피해자의 내상에 관한 문학을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었는가.
흔히 말하는 '노란 장판 감성'을, 한국 현대 문학을 비하하기 위한 말이라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현대 문학의 의의를 전면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 '노란 장판'에서 살고 있었던 등장인물들이 영혜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서사도 이제는 만들어볼 때가 되었다. 문학에서도, 현실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