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_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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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vr 휴먼다큐멘터리를 보고 답지 않게 새벽녘에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다. 죽은 딸에 대한 남은 기록을 바탕으로 그를 vr로 재현해 만나보는 설정인데, 망자에 대한 후회와 그리움은 만국 공통인지라, 이를 보고 어머니에게 감정이입한 시청자들이 상당했다고 들었다.
그 이유와 상황이 어떠했던간에 그에 대한 그리움을 아예 지울 수는 없다. 혹자는 잊혀질 권리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던데, 남겨진 사람의 상실감과 부채감을 생각하면 남겨진 사람에게도 '잊혀진 권리'가 꽤 달갑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최근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던터라 그 때 읽었던 '관내분실'이라는 단편과 엮어 생각해보았다.
'관내분실'은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어머니의 기억을 좇아 그녀의 생애를 추적하는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인드를 되돌릴 수 있었던 열쇠는 그녀의 아들이나 딸들에 얽힌 기억도 아니오, 남편과 함께한 추억들도 아니었다. 그녀가 그녀만의 가정을 갖기 전, 애정을 갖고 일하여 만들어낸 책들 속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가정을 갖게 되면서 자신이 원래 구축하고 애정을 갖고 있었던 세계와 어쩔 수 없이 한발짝씩 떨어지게 된다. 새로 생긴 보금자리, 그리고 나를 닮은 아이를 보면서 새로운 행복을 찾기도 하지만, 불가피하게 분리된 예전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스물 네살에 결혼을 하게 된 내 친구를 기억한다. 그 친구의 인생 전체가 결혼으로 인해 불행해졌다고 함부로 예단하고 싶지도 않고 실제로 그러지도 아니할 것이지만, 새로운 도전을 향한 발걸음, 그리고 열망들이 한풀 꺾여서 아쉽다고 스쳐지나가듯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친구로서 그리고 같은 여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지민의 어머니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즐거움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지만,'전 세계'에서 그 다음 세계로 옮겨질 때,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해 어쩌면 삶 자체가 전 세계에서 떠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현세계에 남아있는 인덱스를 지워달라고 부탁했겠지. 나는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지민은 어머니의 마인드를 찾아, 그녀의 영혼과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이제는 엄마를 이해한다고.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지민의 어머니를 이해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저 먼 세상에서는 경력 단절으로 슬퍼하는 어머니상을 보고 싶지 않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도래하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망자를 다시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이 왔는데도 세상의 부조리한 일면은 한치도 나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우리와 같은 독자들을 조금 더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닐까. ⠀ (다른 얘기로, 잊혀지고 싶어했던 사람을 구태여 찾으려고 하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있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딸의 모습을 새로이 보게된 엄마의 마음은, 살아있을 적의 그녀 본인 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아주 좋은 감정이었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