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_유성호
여기서 말하는 뒤는 통상적으로 말하는 과거를 뜻하는 것이 아닌,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정의하기로 한다. 심지어 이 책을 읽는 도중, 엄마에게 '엄마, 내가 피치 못할 사고로 만약 생명을 부지할 가망이 없다면 의료 장치를 동원하지는 말아줘.'라고 말했다가 등짝을 맞을 뻔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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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이라고 늘 염원해왔던 교사의 꿈을 이룬 뒤에는, '앞으로 훌륭해지기 위해 무엇무엇을 이뤄내겠다'는 희망찬 다짐보다는 '후회없이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는 철학적 골몰이 내 의식을 지배해왔다. 아직 이십대의 끝자락에도 당도하지 못한 어린 나이지만 나는 이미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일부러 삶의 종말을 택할 것이라는 오해는 하지 않길. 나는 오래 살고 싶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도 죽음에 관해서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책 전반에 걸쳐서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죽음에 관한 극렬한 거부는 오히려 죽음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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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과 우리의 삶을 별개로 떨어뜨려놓고자 하는 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죽음은 병원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타자화시키고 우리는 죽음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조금 더 죽음으로부터 안전한 삶의 공간에 남아 있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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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병원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채로 가족들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죽음이 존엄한 것을 인정한다면, 삶의 끝의 방식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탄생은 의지와 상관이 없지만, 소멸의 방식은 인간이 택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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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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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친숙한 삶'이라는 모순형용은 '소리없는 아우성'만큼이나 진한 울림을 준다. 아쉽지 않게 죽기 위해서, 혹은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지금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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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것은 알 수 없는 영생을 기다리며 환상에 빠져 지내기보다는 우리의 지금 이 순간을 낭비 없이 꽉 채우는 온전한 현재의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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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디엠이라는, 어쩌면 뻔한 상용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말을 마지막으로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현재의 온전한 삶을 살 것을 요청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을 한다고 는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현재의 온전한 삶을 즐기는 방법'들이라고 치환할 수 있는 유쾌한 처방전을 작가는 제시한다. 다음은 저자가 제시한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의 가이드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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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
1.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그리고 자주 한다.
2. 죽기 전까지 자신이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 3. 내가 살아온 기록을 꼼꼼히 남겨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겨줄 자산이 있어야 한다.
4. 장례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모으기 위해 경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한다.
5. 건강을 소중히 여기고 더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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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들에게 부여하는 삼단계 평가(잘함-보통-노력요함)로 나의 활동을 평가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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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 성적표>
1. 가족에게는 자주 못하더라도 우리반 아이들에게만큼은 자주 하고 있으니 '보통'정도.
2.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은 내가 직업으로 삼아 하고 있으니 이것은 '잘함'.
3. 꾸준히는 못하더라도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글을 꾸준히 쓰고 있으니 '보통'.
4. 국가공무원인 이상 나라가 망할 때까지는 계속 할 것 같으니 '잘함'.
5. 아, 이건 애매한데. 영양제 5종을 매일 챙겨먹고 취미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 '보통'정도는 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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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받았다면 꽤나 기분 나빴을 성적표지만, 남은 생에 '잘함'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는 뚜렷한 가이드라인과 지향점이 남았다. 이 책, 어느 자기계발서보다도 괜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