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_마키아벨리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출판 당시 일반적인 도덕관념에 대한 부정과 인간의 본성에 관한 회의적인 시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세상살이에 대한 염세가 만연한 지금에야 읽었을 때 '이게 뭐가 놀라운 이야기야? 맞는 말이구만.'이라는 찬사에 가까운 동조의 언어도 들을 수 있겠건만은, 홉스의 성악설도 출현하지 않은 15세기 유럽에서, 이 책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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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책인데다가 고전이어서, 구태여 내가 줄거리를 되짚으며 리뷰를 할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공화정 국가에서 살고 있는 공화정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 왜 굳이 '군주론'을 교육지침서로 택했냐고 물어보면, 교사로서 조금 더 나쁘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합리화를 하고 싶어서였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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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제 1의 덕목으로 관후함보단 인색함을, 인자함보다는 잔인함을, 사랑보다는 두려움을 꼽는다. 일 대 일의 관계가 아닌, 다수간의 복잡한 관계에서는 의도보다는 결과를 먼저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영역에서는 공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이므로, 군주는 어쩔 수 없이 악역을 자처할 수밖에. 이를 내 삶에 비추어보자면, 경력이 적은 교사로서, 지난날의 학급 경영을 되돌아봤을 때 근본적인 회의와 비판의식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적으로 아이들에게 온정을 베풀어주는 교사였을지는 몰라도, 공적으로 질서를 잡아주는 데는 부족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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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상황에서 일목요연하게 선보다는 악을 택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기지를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인민들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면 지도자는 능숙한 가장과 위선을 보일줄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선을 떠는 자신의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가식적인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는.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런 수식어에 개의치 않아야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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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급을 위해 위선을 가장한 지도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가. 사적인 온정보다 공적인 질서를 우선시할 교사가 될 것인가. 군주론을 보고 나면 그림이 선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생각해봐야할 것이 더 늘었다. 그래, 이게 바로 고전의 묘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