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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Aug 24. 2020

낭만은 글로 완성된다.

아이들이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





 선율이나 심상이 주는 여운보다 더 큰 위로를 텍스트에게서 받을 때가 있다.

사실 그럴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매번 그렇다. 나의 경우는, 글의 힘에 기대어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뭣도 몰랐던 중학교 시절, 학교 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1년당 100여 편의 시를 외워야 하는 학교를 다녔다. 거기에 더해 일주일에 1편 이상 서평을 읽고 느낀 점을 공책에 정리해야 했다. 전교생이 말이다. 소위 말하는 '일진'들도 우리 학교에 있었기에, 모든 학생이 그걸 꾸준히 실천했을 리는 없고, 아마 나같이 '하라는 건 꼬박꼬박 다 하는'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하긴 했을 것이다. 그렇게 수백 편의 시와, 수십 편의 서평이 내 가슴속에 남았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늘 텍스트를 찾았다. 초등학생 시절 강아지를 너무나 키우고 싶어서 우연히 강아지를 기르게 되는 '헨리와 말라깽이'나 '내 친구 상하'와 같은 동화책을 수십 번은 더 보았다. 중학생 시절에는 친구 관계가 너무 힘들어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나 '유진과 유진'과 같은 우정과 관련된 글을 그렇게 열심히 찾아 읽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짝사랑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든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같은 유명하고도 있어 보이는 책들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만의 글을 적게 되었다. 글로 스트레스 해소를 하다 보니, 입력 대신 출력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먹방을 보는 것보다는 직접 시켜먹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더 직빵! 인 것처럼 말이다. 사실 성적이 생각만큼 잘 안 나온다거나, 살이 안 빠진다는 것과 같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글을 적을 필요가 없다. 그건 공부를 더 하거나, 운동을 더 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웬만한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글로 분출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었다. 나의 글쓰기의 시작은, '감정 배설'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순간도 글로 남기고 싶어 졌다. 더불어, 그의 유용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가령, 연애 초기의 몽글몽글한 감정을 글로 써내리면, 나중에 그 감정은 사라진다 하더라도 (혹은 당시 연인과 헤어진다고 하더라도) 글은 여전해서, 호시절의 풋풋했던 나를 조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인간인지라, 대상에 대한 감정이 한결같을 순 없기에 순간이 지나가버리고 나면 다시 돌아보기 쉽지 않다. 오죽하면, 친구들과 추억팔이 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내가 그랬었나?'이니까. 우리가 그래서 그토록 사진과, SNS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니던가. 지나가버릴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기 위해서. 하지만 사진이나 SNS보다 더 확실하고, 더 개성 있고, 더 정확하게 순간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글이다.







 나는 아이들도 이와 같은 유용성을 경험하길 바란다.

'일기 쓰기는 사생활 침해다'와 같은 명제를 나 역시 들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이를 놓아버리기엔 일기 쓰기로 얻게 되는 부속물들이 너무나 많다. 기록하기 싫은 순간은 기록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 그보다는 지나가버리면 다시 오지 않을 어린 시절의 맑은 감정들, 가족들과의 화합의 시간들, 친구들과의 소소한 추억 쌓기와 같은 것을 기록하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보물들은, 잡아두지 않으면 실시간으로 낡아서 저 어딘가로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그것을 조금씩 붙잡아놓는 동시에, 붙잡아 놓을 만한 능력을 같이 함양할 수 있는 과정이 바로 일기 쓰기인 것이다. 글은 쓰면 쓸수록 느는 것이고, 늘면 늘 수록 쉬워지는 법. 모든 사람들이 입 모아 말하는 참인 명제이다.



얘들아, 나중에 글을 쓰고 싶을 때 정말 잘 쓰려면, 미리 많이 써봐야 하지 않겠니?



 모든 배움을 실용으로 치환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법이지만, 일기 쓰기만큼은 아이들의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필요한 능력을 함양하는 과정이다. 고민이 있을 때 글로 뱉어내며 마음의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자신에게 더없이 소중한 순간을 맞았을 때 낭만을 붙들어두는 가장 쉽고도 흔한 방법이 바로 '글'로 남기는 것이니까. 그것이 좋은 순간이든, 나쁜 순간이든, 되돌아보면 모두 웃음이 나는 너희들 인생의 조각이 아니겠니?


 늘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보다는, 그 날, 혹은 그 주의 특별했던 경험을 적는 것부터 일기는 시작된다. 꼭 남들이 보기에 보란 듯이 특별하지 않아도 좋다. 어느 날 목욕을 하고 나왔는데, 바람이 선선한 거야. 벌써 가을이 오나 싶었지. 가을을 맞으면 뭐가 좋을까? 체육 대회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곶감도 먹을 수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께 용돈도 받는 추석도 있으니 좋지. 이렇게 뻗어나가는 생각을 적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을 붙잡아둘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면 앞으로 매년 가을바람이 불 때마다, 6학년 이 시절이 생각날 테니까.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볼 때, 나는 예감한다. 우리 반의 추억 잡기는 지금 바로, 시작되었다. 자, 그럼 오늘부터 우리, 일기를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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