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코로나시대의 수업
코로나 19 관련 확진자 수가 급증함에 따라, 개학 후 4주간 모든 수업이 원격수업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나마 학교에 오던 아이들이 일절 학교에 오지 못하자, 생활지도의 부재로 인한 부수적인 부작용을 우려해 실시간 화상수업이 진행되었다. 물론, 그것이 등교 수업의 수업시간을 모두 채워주지는 못하고 있기에, 이전까지 진행하던 과제 제시형 온라인 수업도 병행하고 있다.
실시간 수업이라고 하니, 처음에는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과제 제시형 온라인 수업을 할 때의 고충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일견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과제 제시형 수업에서는 아이들이 제 때 과제를 하지 않으면 매일 학부모에게 연락을 해서
학부모님, OO이가 오늘 과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내에 제출을 할 수 있도록 독려 부탁드립니다.
라고 해야 하는데, 솔직히 아이의 지각을 전달하는 담임의 입장으로서도 마음이 편치 않고, 그걸 듣는 학부모의 속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것도 늦는 학생이 매일 늦는다고, 매번 연락을 드려야 하는 학부모도 얼추 정해져 있는데, 연락을 받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민망할까 하는 마음도 든다. 이전에는 학교에 보내면 끝이었는데, 이젠 생활 패턴도 망가져, 그나마 있는 과제도 제출하라고 독촉을 해야 하니, 자식과 사이가 좋아지려야 좋아질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연락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건, 참 마음속 돌덩이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실시간 수업이 시작된다니! 아직은 과도기라 과제 제시형과 병행이지만, 곧 과제 제시형이 사라진다면 이런 낯 뜨거운 일은 더 이상 벌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시 실시간 수업 얘기로 넘어가서, 실시간 수업을 시작한 지 3주가 경과한 지금. 이 수업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상당히 의미 있다. 아이들과 내가 마스크를 끼지 않은 상태에서 대면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말이다. 물론 줌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이나 학부모와 같은 경우에 알 수 없는 접속 불량에 시달려 처음 며칠 고생하긴 했지만, 그 모든 고난을 겪고 온라인에 접속하여 얼굴을 마주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이면에는 교사들의 lms 도구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원격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업 도구의 한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교원들의 대다수는 lms와 친하지 않다. 미디어 매체와 비교적 익숙한 젊은 세대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교사들은, 이의 존재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새로 배워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실시간 수업 지연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개학이 미뤄졌을 때만 해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한 스푼이 있었고, 실시간 수업에 대한 여론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에도 원격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한 스푼이 있었다. 그래서 실시간 수업은 이토록 미루고 미뤄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확진자는 늘고 늘어, 적어도 코 앞의 몇 년간은 코로나 상황 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사실이 확실시되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여기서 어렵다는 의미는, 와이파이 하나 구축하지 못한 교실의 물리적인 시스템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시간 수업을 시작하는 학교가 늘어났다. 실제로 몇 주간 수업을 해본 결과, 원격 상황에서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 아이들의 불참에 대해 제재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반의 상황을 보자. 실시간 수업을 위한 기자재가 전부 다 갖춰진 서울 한복판에 있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저학년에 비해 기자재 사용에 능숙한 6학년임에도 불구하고 25명 중 15명만이 정상적으로 실시간 수업에 참석한다. 나머지 10명 중 3명은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수업을 태초에 거부하였고, 4명은 학원 일정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으며, 3명은 기자재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들쑥날쑥한 참석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의 지침 상, 실시간 수업으로 출결을 갈음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고, 평가에 반영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결국 교사는 그 어느 것으로도 이를 강제할 수 없다. 결국 나는 15명을 데리고 수업을 하게 된 것이다. 수업인지, 수업이 아닌지, 교사 조차 혼란스러워하는 이 수업 아닌 수업을 계속할 수는 있는 걸까? 아이들이 없는 수업은 의미가 없는 것. 아이들을 잡을 수 없다면, 실시간 수업의 존재 이유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둘째, 제대로 된 상호작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초등 교육의 대부분은 학생 중심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어, 실제 수업 시간은 교사의 설명 2할, 학생의 과제 수행 5할, 피드백 3할 정도로 배분된다. 그런데 교사의 설명은 그렇다 치고, 학생 과제 수행 독려가 정말.. 어렵다. 일단 학생이 수행하는 모습이 화면에 담기지 않으면 교사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물론 padlet이나, mentimeter와 같은, 학생의 수행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휴대폰으로 줌에 접속하는 아이들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대면 수업에 비해 현저히 초라한 반쪽짜리 피드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격 수업을 대면 수업과 거의 비슷하게 , 잘 수행하고 있는 교실이 있다면, 그것은 교사의 역량뿐만 아니라 학생의 의지, 환경이 뒷받침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서벽지나 산간지역과 같이 교육 지원 여력이 완전하지 않은 곳에서, 완벽한 원격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교사는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만약 실시간 수업이 원격 수업의 전부가 되면, 지역 간 교육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시간 수업이 이루어지는 지금도 과제 제시형 수업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 아이들의 과제에 대한 부담은, 실시간 수업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이중으로 부과될 예정이다.
언제까지나 과거의 수업방식을 그리워하며 버틸 수 없고, 아이들의 무너지고 있는 생활 패턴에 대한 교정을 가정으로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애로사항에 대한 해결방법을 현장과 교육부가 함께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직접 부딪히면서 개선해나가야 한다.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대면 수업과 같은 질의 원격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담임의 역량에만 의존했던 자가진단 시스템이, 2학기가 되어서야 드디어 자동 집계가 가능한 어플로 바뀌었다. 느리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선례이다. 외부의 목소리에 갈대같이 흔들리며 어영부영하는 것은 이제까지만으로도 충분하다. 나 역시 학교를 힐난하는 외부의 목소리에 지치기보다는, 교육이 해야 할 역할을 되새기며 작은 움직임이라도 보탤 수 있는 현장의 일원이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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