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저경력 교사의 숙명이여
츄리닝 입고 출근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투피스 정장을 쫙 빼입고, 칠판에 최대한 바른 글씨로 학습 목표를 적어 넣고, 아이들에게 경어를 쓰며 친절하게 수업하던 낯선 풍경을 겪은 일이. 앞뒷문이 활짝 열려있는 건 보너스다. 왜? 공개수업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도 어렴풋하게나마 '참 힘들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나에게 이렇게 무겁게 다가올 일인 줄 알았다면,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보통의 초등 교사는 학부모 공개수업, 동료 장학 이렇게 굵직하게 연 2회 이상은 공개수업을 해야 한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 덕에 대면 공개수업은 대부분의 학교가 면하게 되었고, 나 역시도 위의 두 공개수업은 원격수업으로 대체하였다. 그렇지만 복병이 하나 숨어 있었다.
바로 저경력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장학'이라는 것이다. 우리 학교에 저경력 교사는 나를 포함해서 딱 두 명뿐이었고, 교장선생님은 이 장학은 반드시 대면으로 하고 싶다는 뜻을 강력하게 내비치셨다.
즉, 저경력 교사가 수업을 계획해오면 그것을 검토해주는 부장 교사가 짝을 지어 공개수업을 만들어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올해로 임상장학 4년차, 그런데 특이하게 멘토 부장님이 딱 두 분이셨고 (1,2년차 때와 3,4년차 때의 학년부장님이 같았기 때문이다.) 두 분 다 나의 수업권을 크게 존중해주셔서, 과정안을 고치느라 힘들어본 기억이 없다. 작년 임상장학 때도 그랬기 때문에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나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올해는 작년과는 아주 다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두 멘토 부장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멘토 부장님 두 분이 사이가 안 좋으시다. 그래서, 요상한 경쟁구도가 만들어졌다. 아아,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것이 바로 이런 말일까? 나는 과정안을 수정하느라 이례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말 그대로 모두에게 공개-될 수업이기 때문일까? 상대방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대놓고 하시기도 하시는 걸 보며, 우와 , 이게 뭐지? 가엾은 저경력 교사 두 명은 얼빵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교생 시절, 전교생 앞에서 대표수업을 해야 했을 때도 이렇게 수정에 공들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과연 무엇을 위한 고생이었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과정안은 완성되었고, 공개수업은 다음 주 월요일이다. 방역 지침을 우려해서 개별 활동으로 조심스럽게 구성한 수업은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무조건 보여주기 좋은 수업으로 변경하라는 미명 하에 우리 둘은 코로나 걱정일랑 저 멀리 던져두고 각종 모둠활동과 게임을 집어넣은 수업을 구성했다. 어쨌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좋은-' 수업을 해야 하니 교실 청소를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게 하고 온 것은 물론이다. (2월에 갓 이사를 왔을 때보다 더.)
과연 두 멘토 분 중에 나중에 웃으실 분은 누구일까?
그것이 나로 인해 (혹은 내 동료로 인해) 결정지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 못내 아쉽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 분은 무지하게 억울하실 테니까. (내가 그렇게 잘 가르쳤는데, 이 정도밖에 못 해?!) 그리고 어쩐지 주객전도가 된 것 같은 이 상황이 나의 마지막 임상장학이 될 것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제일- 안타깝다.
* 본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절대로 학교 전반을 일반화하는 글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