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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Sep 14. 2021

교사가 이십 대를 벗어던진다는 것

아이들의 맹목적인 사랑을 서서히 포기할 나이





올해가 이십 대의 마지막 해인데, 뭐라도 해야지.


2021년에 들어서자마자 귀에 인이 박히게 들은 말이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회는 '20'이라는 숫자에 지나친 호감을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고. 100세 시대가 된 지가 언제인데,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너무 이른 나이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 나머지 인생은 모두 빛나는 20대를 추억하며 쓸쓸히 늙어가라는 거야 뭐야. 나는 아직 젊다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조차 현실 부정으로 여겨질 것 같아 입밖에 내기 어려운 나는 지금, 20대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교사이다.








처음 발령받았을 때 

선배교사가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아이들은 '젊은' 교사면 무조건 좋아하니까 걱정 말라고 말이다. 그것이 비록 풋내기 어리숙한 교사에게는 일말의 위로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6년 후의 나에게는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다. '젊은' 교사면 좋아한다는 말의 반대급부는, '나이 든' 교사는 여간해서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거든. 요즘 들어 부쩍 아이들이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는 투정에 선배교사는 또 말씀하신다. 다들 승진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 아무튼 교실 밖의 일에 집중하다 보면, 아이들의 무조건적인 온정이 나를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처 받을 시간도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승진도, 결혼도, 육아도 모두 인생 계획에 없는 사람인데요? 


이십 대를 벗어난다는 것에 대한 허탈감, 혹은 외로움은 교사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직업도, 돈도, 스펙도,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났던 스무 살 언저리의 패기로움을 뒤로 하고 '나이 듦'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만국 공통인지라. 오죽하면 '생일이 지나지 않으면 아직 이십 대야!' '한국 나이로는 아직 29이야!'라면서 '삼십 대 진입'을 애써 지연시키는 행태까지 …. 그러자 나는 궁금해졌다. 30이라는 숫자가 주는 기쁨은 정말 없는 걸까?




딱 20대 때 할 수 있는 연애가 생각나는 프로그램.



사실대로 말하자면, 20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지하철 역사를 지나다 보면 보이는 맑고 밝은 20대 초반의 대학생들, 「환승 연애」 프로그램에서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려는 볼 빨간 청춘들의 모습이 예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20대 초반을 돌이켜 보면 가진 에너지만큼이나 많이 서투르고, 불안해하고, 작은 바람에도 속절없이 흔들렸다. 지금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철학이나 방향성, 가치관이 전혀 정립되어있지 않은 날 것의 나에게 내가 무슨 다른 삶을 줄 수가 있을까. 삶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모든 것들, 내가 나로 살게 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20대 초로 돌아간들, 뭐가 달라질까.





삶을 경험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은 소중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반수 할 때 친하게 지내던 학원 선생님도 말씀하셨다. 무슨 일이 있어도 20대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소중한 20살의 몇 개월을 학원 끄트머리 구석에 틀어박혀 앉아 공부만 해야 했던 내 귀에는 '그저 나를 위로하는 말이겠거나' 싶었는데, 이제와서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한 건지 알 것 같다. 20살의 나보다 29살의 내가 삶의 진리를 조금 더 알게 된 사람인 것처럼, 올해의 나보다 분명 내년의 내가 나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경험치'라고 부른다. 이십 대의 끝에 서 있는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경험치'없이 천둥벌거숭이 같던 여러분을, 다시 한번 겪고 싶으신 건가요. 








아이들의 애정이 나의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직업인으로서의 나의 자존감을 형성할 때는 유용하다. 하여 자기부정으로 이어질게 뻔한 '아이들의 애정'따위는 필요 없어!라고 외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정으로 점철된 20대 풋내기 교사 시절을 뒤로하고 노련한 30대 교사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내가 그렇게 슬프지 않은 것은, 그것을 모두 잃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애정은 내 손아귀를 떠날 수는 있지만 이유 있는 애정은 나를 떠나지 않지. 그 이유를 아이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 우리는, 경험치 를 쌓아가고 있는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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