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에서의 무례
뭔가 구전설화처럼 선배 교사에게만 들었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고, 그 말을 듣는 대상이 우리 반 아이의 학부모라는 사실도 얼떨떨했다. 길게 이어지는 담임에 대한 불만 토로에 반박할 기력을 잃었다. 아니, 사실은 애초부터 나에게 반박할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매년 있어왔다. 무례한 학부모에게서 받는 상처 말이다.
말의 골자를 들어보면 사실 별거 아니다. 그냥 우리 아이를 좀 더 신경 쓰고, 예뻐해 달라는 것. 그것이 학교 수업 체계에 대한 불만이든, 교실 운영 정책에 대한 불만이든 말이다. 그러한 불만을 토로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어쩌면 가장 타격이 심한 것은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유선으로 들었을 뿐인데 삿대질이 통화음을 뚫고 보이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모쪼록 제가 더 주의 깊게 살피겠습니다, 학부모님.
놓을 뻔한 정신줄을 붙잡고 꺼낸 말은 공격력 0에 수렴하는 꼬리 내리기다. 사실 학부모의 민원에 담임이 이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을 때가 많아 그렇다. 학부모는 나에게 막말을 할 수 있어도, 나는 학부모에게 똑같이 맞받아칠 수 없다. 학부모는 학교에 민원을 넣을 수 있어도, 나는 그에게 민원을 넣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맞받아칠 말을 삼키고 조용히 혼자 상처 받는 것으로 끝낸다.
민원이 더 커질 우려가 있으므로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학년부장님께도 사안에 대해 말씀드린다. 선배 교사들은 하나같이 제법 따뜻한 토닥임을 건넨다. 방금 들은 말은 참 무례한 것이었고, 듣는 사람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나의 출산 이력과 당신의 불만과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이다.
말의 종류만 다를 뿐이지 다들 이런 경험이 있다고 했다. 사실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더 심한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 앞으로 마주치게 될 불특정 타인을 제어하느니 내 마음에 방어막이 생기도록 단단히 운동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사무치게 억울하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