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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Aug 11. 2020

내가 교실 앞문을 개방하는 이유

그럴듯한 관행 뒤집기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을 한 글이며, 모든 선생님 및 학교를 일반화 하는 글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많은 초등학교 교실은 앞문을 학생들에게 허용하지 않는다.

나 역시 초등학생 시절, 심부름할 때를 제외하고는 앞문으로 통행했던 적이 없으며, 교생 실습을 다닐 때 겪었던 수많은 교실들의 앞문은 대부분 교사 전용으로만 쓰였다. 발령받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첫 학기가 시작하기 전, 교실 정리를 할 때 동학년 선생님들 전부 앞문에 '앞문 통행금지'라고 써붙이셨다. 딱히 앞문 통행에 대해 제제를 가할 생각은 없었는데. 모두가 그렇게 하시는 것을 보니 별다른 이유가 있을까 싶어 옆 반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선생님, 왜 아이들의 앞문 통행을 제한하시는 거예요?
어휴, 선생님 겪어보면 알아요. 아이들이 앞문으로 드나들면 얼마나 정신없게요? 쉬는 시간에 업무 하는데 애들이 앞문으로 뛰어다닌다고 생각해봐요. 일이 손에 안 잡힌다니까요. 그리고 심부름하는 애들 전용 통로가 있는 게 애들한테도, 저한테도 편해요.



 개방하는 건 뒤늦게 해도 괜찮으니 일단 통행을 제한해보라는 조언에 하루 정도 고민하다가, 다음날 나 역시 종이에 크게 출력해서 앞문에 붙여버렸다. 'OOO반 어린이는 뒷문으로 다닙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아이들은 당연히 뒷문으로만 다니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나도 그런대로 익숙해져서 3년 내내 나의 교실은 '학생들은 앞문 통행금지'였다. 그러다가 내 뼈를 때리는 글을 읽게 되었다.


 평소 좋아하는 유시민 작가의 글이었다. 학생 인권에 대해 다룬 글이었는데, 교사가 학생을 때리는 행태, 언어폭력을 가하는 행태와 함께 '교실 앞문을 개방하지 않는 행태'가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로 열거된 것이다. 순간 머리에 돌을 맞은 것처럼 띵했다. 학생에게 체벌을 하는 것과 언어폭력을 가하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학생 인권 침해가 맞다. 하지만 '교실 앞문을 개방하지 않는 것'이 그와 비견될 정도의 사례란 말인가? 그럼 나는 그동안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한 교사였단 말인가?



 처음에는 강한 반발심이 들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님이어도 그렇지, 학교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시고 막 쓰신 거 아닌가. 그리고 같이 열거한 사례가 너무나 극단적이잖아! 읽던 책을 덮고 한참을 씩씩거렸는데, 열기가 한 김 식고 나니 조금 부끄러워졌다. 자신의 잘잘못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혼나기만 하면 눈물짓는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한 듯했으니까.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정말로 내가 합리적인 이유에 의해 앞문 통행을 금지했던 걸까?



 당연히 앞문 통행금지하면 교사 입장에서는 편하다. 막말로 앞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나에게 용건이 있어서 찾아온 사람들뿐이니까, 앞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돌아보면 된다. 그리고 교사 귀에 꽂히는 소음의 크기 자체도 다르다. 앞문이 허용되지 않으면, 아이들은 앞쪽에서 잘 놀지 않으니까. 그래, 솔직히 인정하자. 그동안 내가 앞문을 아이들에게 허용하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나의 편의를 위해서였던 것이었다.



 나의 잘못된 판단을 인정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한 적 없었고, 읽었던 글이야 모른 체하면 되니까.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고 정정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적 본보기 일 것이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행태를 나의 편의만을 위해서 그대로 지속시키는 것 또한 교육자가 할 일이 아니었다. 다음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가서 앞문에 내내 붙어있던 'OOO반 어린이는 뒷문으로 다닙니다.' 딱지를 떼어냈다.



 아이들은 당연히 낯설어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해졌던 습관을 단박에 버리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 아이들에게 '이제 앞문으로 다녀도 된다'라고 말할 때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그리고 그 이유를 묻는 아이들에게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한 명이고 너희는 24명인데, 선생님만 앞문을 쓰는 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이제까지 한 번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앞문 통행금지가, 본인들에게 불공평한 처사였을 수도 있음에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우리 반은 앞, 뒷문 모두 학생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말썽꾸러기인 우리 아이들은 그 날 이후로 앞문을 두 번이나 깨부수었고, 나는 그때마다 잠-깐, 정말 아주 잠---깐 앞문 개방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앞문을 다시 개방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우리 반 앞문은 늘 열려있을 것이다. 덧붙여, 관행이라는 명목 하에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제한은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학교 교실의 구태의연함을 비판하는 글은 언제나 환영해야 한다는 반성도 남았다. 유시민 작가님, 처음에 발끈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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