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어지러움증 때문에 수업시간에 별안간 주저앉아 머리를 움켜쥐는 나의 모습에 아이들은 너도나도 모여들어 걱정의 말을 건넸다.
"선생님, 괜찮아요?"
"많이 아파요? 아프면 안 돼요…."
당연히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열한 살짜리 꼬맹이의 마음에 더한 걱정을 얹고 싶지는 않아서 괜찮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옆 반 선생님께 보결을 부탁드렸다. 평소에는 잘 안 타는 교내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건실로 달려갔다. 일단 수업을 마무리지어야 했기에 보건 선생님께 '어지러움증을 멈추는 약'을 달라고 부탁드리기 위해서였다.
"선생님, 빨리 병원 가보셔야겠는데요."
삼 남매 중 둘째라는 형제 서열에서 비롯된 것인지, 타고나길 공정한 것에 큰 가치를 두는 성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명백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과 다르게 대하는 것에 분개했다. 어떤 일이 나의 일신에 영향을 미쳤다면, 바로 그 지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교 관리자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부당하게 대했다. 정확하게는, '젊은 사람들'을 향해 공평하지 않은 잣대를 기울였다. 주변 선생님 중 반은 부당함에 대해 공식적으로 절차를 밟으라 했고, 반은 그냥 참으라고 하셨다. 겁이 많은 나는 이도저도 하지 못했다. 고민은 결국 내 몸의 병으로 나타났다.
"이석증이네요."
쉽게 말해서 귀 안에 돌덩어리가 있는데, 그게 움직이면서 균형감각을 상실하는 병이에요. 쉽게 안 나을 수도 있어요.
일주일 내내 하루 두 시간씩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승진이라는 것에 대해 부쩍 고민을 많이 했던 1년이었다. 또 주변에 승진을 포기한 많은 선생님들을 보면서 '왜 일찌감치 승진 생각을 접으셨을까?' 끊임없이 궁금해하던 지난날들이다. 각각의 사연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해진 건,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부당함을 참으면서 안온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 일이 그리 나쁘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보다 더 가벼운 증상이었다면 애써 무시하고 애매하게 승진 가도를 달렸을지도 모를 일이었을 것. 그렇게 생각하면 더 큰 병으로 오지 않고 이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할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겁 많고, 소심하고,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 교실에 있을 아이들과 내 행복을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승진은 전자이고, 건강은 후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