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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Oct 12. 2020

52년생 김재영 씨

52년생 김재영 씨. 우리 아빠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이다. 아빠를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의 빗장이 열린 뒤 아빠를 소설 속 캐릭터라 생각하고 곰곰이 뜯어 봤다. 이만큼 인과 관계가 딱 들어맞으면서 입체적인 캐릭터가 없었다.


아빠는 애초에 딸을 키우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네가 얼마나 귀한 존재이며, 부모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내 귀에 캔디> 수준으로 반복 주입시켜야 자존감이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데 우리 아빠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아들이든 딸이든 무조건 냉정하게 평가했고, 자신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쪽팔리는" 포트폴리오 취급을 했다.


아빠는 이기적이었다. 자식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하는 건 고사하고 맛있는 게 있으면 "살찌니까 아빠가 도와줄게"하며 (대체 뭘 도와준단 말인가...) 당신 입에 넣기 바빴다. 아빠는 자상하지 않았다. 다른 애들은 아빠 무릎에 앉기도 하고 아빠가 백화점 가서 코트도 사주고 하는데. 내 외모가 예쁘다고 한 적도, 성적이 올랐을 때 크게 기뻐하며 칭찬해준 적도 없었다. 아빠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의 팔 할은 어느 한 부분이 몹시 맘에 들지 않아 입을까 말까 망설여지는 옷을 볼 때 같았다. 나는 아빠 맘에 쏙 든 적이 없었다.


사춘기 시절 아빠와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둘 다 예민하고 직설적인 성격이라 한 번 싸우면 지구 종말의 날이 펼쳐졌다. 중2병 발발 시점엔 가뜩이나 매순간 엇나가려고 스탠바이 중인데,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언제나 날 비난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때마다 옆구리 걷어차인 맹견처럼 대들었다. 한 공간에 있기 싫어 가출도 여러 번 생각했었다. 난 아빠가 벌레보다 더 싫어! 죽었으면 좋겠어! 당신 딸로 태어난 운명을 저주해! 할 수 있는 온갖 독한 말을 다 쏟아냈다. 말로 토하고, 글로 토했다.


아빠가 날 때렸나? 경제적으로 무능했나? 엄마를 무시하고 모욕했나? 오빠를 티 나게 편애했나?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큼 인성이 개차반인 사람이었나? 아니었다. 아빠는 나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 없고(신문지로 머리 맞은 적은 있지만 이건 폭력의 범주에 넣지 않기로 한다), 욕을 한 적도 없으며, 경제적으로 매우 성실한 분이었다. 엄마를 끔찍이 위했고 엄마를 괴롭히는 것(=주로 나였다)은 척결 대상이었다.  오빠를 더 예뻐한 것도 아니었다. 아빠는 오빠랑도 어색했으니까.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고, 경제관념 철저하고, 자기 관리도 잘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아빠는.


서른이 넘어서야 아빠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게 됐다.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열심히 노력해 남들만큼 살게 되었다, 라는 건 그 시대 아버지들의 보편적인 서사였다. 내가 아는 아빠의 서사는 두꺼운 고전을 석줄 요약한 수준이었다. 내가 몰랐던 아빠의 인생은, 아빠가 나의 아빠가 되기 이전에 겪은 일들은 함부로 공감하기 힘든 영역이었다.


어릴 때 흙집에 살았을 만큼 찢어지게 가난했고, 아빠의 엄마는 한글을 몰랐다. 먹고살기 힘든데 자식을 넷이나 놓았으니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유년기의 행복? 부모의 사랑? 형제간의 우애? 아빠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가난해도 서로 위하고 사랑하는 집도 많은데 아빠네는 가족 간의 정이 없었다.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거나 부모를 사랑한다고 느낀 적도 없고, 형제는 썩어가는 신체 부위 같아 잘라내고 싶었다. 차마 그럴 수 없어 평생을 가족이라는 짐을 지고 살아왔다.


그런 사람이 가족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일구겠다는 의지로 선택한 사람이 엄마였다. 탄탄한 직업이 있고, 기댈 수 있는 부모와 형제가 있고, 자신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사랑받고' 자란 사람.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역할을 반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 번듯한 가정을 꾸리고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는 사다리가 되어줄 여자, 그게 엄마였다.


내가 뭘 알았겠어? 그걸 왜 내 탓처럼 말해? 요즘도 사춘기 시절 아빠와의 갈등을 종종 끄집어내는 엄마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내가 무슨 잘못이람. 그때 내가 뭘 알았겠냐고. 아빠 속사정을 내가 어떻게 헤아려. 아빠는 막 되게 좋은 아빠는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나쁜 아빠도 아니었어. 그걸 서른 넘어 알았지.


아빠는 내심 오빠를 질투했는데 자신은 누리지 못했던 걸 아들이 다 누리고 살면서 그걸 호사라고 느끼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아빠는 자식의 교육과 미래에 아낌없이 투자하면서도 정작 자식을 예뻐할 줄 몰랐다. 오빠가 살면서 성취한 많은 것들은 오빠가 마침내 아빠의 기준을 충족시켰을 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꿈꿨던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되었을 때, 내가 쓴 글이 지면에 실렸을 때, 남들 다 아는 큰 회사에 들어갔을 때,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을 펴냈을 때, 남들 다 하는 결혼을 했을 때. 무탈하게 아이를 낳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요즘, 아빠는 더 이상 나를 맘에 안 드는 옷 바라보듯 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명품까진 아녀도 품질과 디자인이 썩 나쁘지 않아 자주 손이 가는 옷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나도 아빠도 서로를 맘에 들어한 세월이 그렇지 않은 세월에 비해 참 짧다. 나 이젠 아빠가 좀 좋은데. 아빠도 날 좀 맘에 들어하는데. 지지고 볶고 서로를 미워하며 지낸 30년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현재의 사이좋은 우리가 되기까지 참 오래 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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