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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Sep 27. 2021

꾸준히 오르는 것

나의 생애  주식 투자는 소심함 덕에 화는 면했다. 큰돈 바랐으면 큰돈을 투자했을 텐데, 큰돈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정도는 잃어도 괜찮아. 어떤 회사인지도  모르면서  몇몇의 주식은 계속 꾸준히 떨어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계속 내려가는 수험생의 안타까운 성적표 같다.


내 인생에서 꾸준히 오르는 게 뭐가 있나 생각해 봤다. 꾸준히 상승하는 거? 딱히 없다. 눈 뜨고 일어나면 어제보다 한 눈금이라도 올라가 있는 건 나의 꼰대력 뿐이다. 나의 꼰대력은 내가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매일매일 조금씩 올라간다. 세월에 비례해 쌓이는 먼지처럼. 내려가거나 줄어드는 법이 없다.


요즘 모든 대화가 <내가 얼마나 꼰대인지> 증명하는 것으로 흘러간다. 꼰대면 꼰대답게 꼰대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가끔 <그래도 아직 그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시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예외의 지점을 고민하다 발목 접질리듯 대화도 접질린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은 일관되게 일관성이 없다.


꼰대력 인증 #1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돈을 주제로 대화를 한다. 돈이 안 모인다, 사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라는 투정에 "허허 나도 그랬지" 라며 공감의 멍석을 일단 깐 뒤 결혼해서 애 낳고 살다 보면 어찌어찌 싱글 때보단 돈이 모이더라, 나도 그렇다, 하며 나의 절약과 저축 일화를 늘어놓는다. 결혼하면 돈 모인다로 귀결되는 꼰대의 노잼 토크다. "나 다 아는데, 그거 다 해봤는데, 결국 (소비는) 부질없어"하고 모든 것에 해탈한 사람처럼 소비의 욕망에 초를 친다. 이래 놓고 정작 본인은 까르띠에 시계가 너무 갖고 싶어서 몇 날 며칠을 구매대행 사이트부터 당근마켓까지 뒤지다가 결국 빈티지 시계를 할부로 사버렸다는 이야기… 다 부질없다며? 까르띠에는 부질없는 소비가 아닌가...


꼰대력 인증 #2


결혼 안 한 지인과 집 얘기를 한다. 집이 꼭 있어야 할까? 집은 있어야지. 부동산만큼 확실한 노후가 없으니깐... 어쩌고 저쩌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인데 내가 하는 말 같지 않다. 꼭 그렇진 않아. 집 안 사고 잘 사는 사람들도 많아. 그래 그렇겠지, 근데 그래도 애가 있으면~~ 또 시작이다. 내 경험의 우물 안에서 내린 판단에 근거해 상대를 설득시키려 든다. 내 상황에서 나 같은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음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애쓴다. 대체 왜?? 그것이 뭣이 중헌디.


꼰대력 인증 #3


살면서 많은 이성을 만났다. 그들과 데이트하고 사귀었고 차였고 차 버렸다. 이성 취향도 참 일관성 없어서 옷으로 치면 보세, 빈티지, 스파 브랜드 등 가리지 않고 그냥 나에게 어울렸으면(어울리는 게 아니다) 하고 별생각 없이 걸쳐보듯 그렇게 많은 이성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남자 보는 눈? 그게 있었음 10년 가까운 시간을 답 없는 연애에 허비하진 않았겠지. 노답 연애 경험 때문일까. 누가 구남친 1~5번과 비슷한 이성을 만난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또 내 좁은 경험에 비추어 "안돼, 안돼리 안돼~"를 외치다가 "그래도 사랑하는데 어떡해!"라는 반응을 마주하면 너무 과거의 나 같아서 그래 당할 만큼 당해보고 결정해라, 하고 손을 놔버린다. 그냥 공감만 해주면 될 것을, 몇 수 앞서 상황을 예견하고 판단하며 스스로 마음 정리까지 해버린다. 이것도 참 꼰대 같다...


꼰대력 인증 #4


육아는 여성에게 형벌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임(신) 출(산) 육(아). 줄여서 임출육은 고통이고 고난이며 형벌이다. 여자로 태어나서 여자로 살아가며 겪는 일이다. 이걸 누가 하겠다고 하면 아이고 어쩌나, 할 것이고 이걸 누가 안 한다고 하면 그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래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꼰대력에 기반한 생각을 한다(소름! 소오름!!). 왓더...? 왜? 내가 해봤으니깐? 내가 해봤으니 남들도 해봐야 한다는 거? 이게 무슨 개그지 같은 논리야… (결론은 자신없음 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


꼰대력 인증 #5


육아가 너무 힘들 때, 가족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의심스러울 때, 먹고사는 일에 치여 아이고 되다 하며  주저앉고 싶을 때. 내 안의 꼰대가 나에게 회초리를 든다. 떽!! 누구나 겪는 일이니까, 너만 그런 것처럼 징징대지 말라고. 남들도 그 정도는 다 참으며 산다고. 불평할 에너지를 다른 데 쏟으라고!!


내가 힘들다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나를 좀 다독여주면 안 될까. 내가 내 불평을 좀 들어주면 안 될까. 넌 충분히 그래도 된다고 받아주면 안 될까. 내 안의 꼰대는 나를 참아주지 않는다. 기승전꼰대력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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